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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혜정 변호사 Feb 15. 2022

상대방의 주장에는 주장과 근거로 반박하기

누군가와 논쟁을 해본 적이 있는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각각 자기의 주장을 말이나 글로 논하여 다투는 것을 논쟁이라고 한다(표준국어대사전). 쉽게 말하면 논쟁은 말이나 글을 무기로 싸우는 것이다. 재판에서는 논쟁을 한다. 법원은 구체적인 사건에서 누가 옳고 그른지를 따져 판단을 내린다. 특히 민사소송은 서면 싸움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상대방과 서면을 주거니 받거니 한다.      


변호사들은 서면을 쓰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판사를 글로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논리적인 생각을 해냈다고 하더라도 글로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면 안 된다. 증거가 명백해서 승소가 확실한 사건이라면 서면을 어떻게 쓰든 상관없지 않으냐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사건은 생물(生物)과도 같아서 결과를 함부로 속단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게 법조계의 암묵적 진리이다. 서면에 쟁점을 어떻게 부각하는지에 따라 결론을 이끌어내는 방향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서면을 쓸 때는 어떻게 하면 주장에 설득력을 높일지를 고민한다. 서면에서는 내 주장이 옳다는 내용이 주가 되지만,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해야 한다.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 반박을 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반박할 근거를 찾지 못해서이거나 반박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상대방의 주장에 대한 반박을 빼놓아서는 안 된다. 상대방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판사를 설득하는 것 역시 변호사의 역할이다.


상대방의 주장은 그 요지를 파악해서 반박한다.  

   

임대인이 임차인의 계약위반을 이유로 상가임대차 계약을 해지하고 건물인도를 구하는 사건을 맡은 적이 있다. 나는 임대인을 대리해 임대차 계약이 종료됐다는 주장을 했다. 상가임대차 계약에서 업종을 제한하는 약정은 흔하게 일어난다. 업종 제한 약정은 임차인의 독점적인 영업을 보장해주는데 의미가 있다. 임대차 계약 중간에 업종을 변경할 시에는 임대인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조항 역시 계약서에 있었다. 임대인은 케이크 전문점이라는 임차인의 말에 업종변경에 동의했던 사안이다. 그런데 임대인은 가게 인테리어가 끝날 무렵 누가 봐도 커피전문점임을 알 수 있는 간판과 현수막을 보게 됐다.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공사 중지를 요청했지만 임차인은 계속 공사를 진행했고 임대인은 끝내 소송을 제기했다.      


상가 내 같은 층에는 이미 커피전문점이 있었기 때문에 임차인은 동종 업종 제한을 위반했다. 상대방은 커피전문점이 아니고 빵을 주로 파는 곳이라면서 임대인의 동의가 있었기 때문에 계약 위반이 아니라는 주장을 했다. 상호도 그렇고 업체 홈페이지에는 커피전문점이라고 버젓이 쓰여 있었는데도 말이다.      


상대방의 주장은 억지라고 하면서 그냥 넘겨야 할까. 내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내 주장에 대한 근거만 대서는 안 된다. 내 주장에 대한 근거와 함께 상대방의 주장이 왜 부당한지도 이야기해야 한다. 상대방이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더라도 그 주장이 왜 말이 되지 않는지를 조목조목 따져 반박해야 한다.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주장을 이해하고 요약하는 게 먼저다. 당연한 말이지만 상대방의 주장에 대한 반박에는 반드시 근거가 있어야 한다. 상대방의 주장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반박을 할 수 없다. 이때 주장의 타당성을 먼저 살펴보고 근거의 타당성을 따져본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근거로 들고 있는 판례의 사실관계와 주장하고 있는 사실에 다른 부분이 있다면 어떤 점에서 다른지를 분석해서 서면을 써야 한다. 상대방의 주장에 대한 반박 없이 자신의 주장만을 늘어놓는다면 상대방의 공격에 대해 제대로 방어하지 못한 격이다. 판사를 설득하는 데에는 상대방의 주장이 부당하다는 근거와 내 주장이 합당하다는 근거 모두 필요하다.


논점을 일탈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의 주장에는 논점에 맞는 주장과 근거로 반박해야 한다. 일관된 주장이 설득력이 강하다. 즉, 주장과 근거는 결론을 이끌어내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서면은 명확하고 간결하게 쓰는 게 좋다. 중언부언하거나 불필요한 사실을 언급한다면 논점이 흐트러질 수 있다.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들 중에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면서 피해자의 행실을 지적하는 이들이 있다.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거나 피해자의 평소 행실이 문란했다는 점을 주장한다면 명백한 논점 일탈이다. 행실이 문란하면 성폭력의 피해자가 아닌가라고 반문해보면 답이 나온다. 피고인이 무죄라는 근거를 피해자다움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 논점을 벗어난 주장으로는 판사를 설득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건과 관련도 없고 굳이 서면에 담으면 오히려 쟁점이 흐트러질만한 이야기도 적어달라고 하는 의뢰인도 가끔 있다. 사실 이런 경우 난감하다. 변호사는 의뢰인의 대리인이니까 의뢰인의 말대로 해야 하는 게 맞을까. 아니면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서는 거절하는 게 맞을까. 변호사들마다 나름의 기준이 있겠지만, 나는 서면의 말미에 별도의 제목으로 따로 쓰거나 참고자료로 제출할 때도 있다. 논점을 일탈하는 정도가 심하지 않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주장의 근거는 자료 조사에서 나온다.     


나는 서면을 쓸 때 자료 조사부터 시작한다. 물론 그전에 의뢰인으로부터 관련 자료를 건네받고 사실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히 나눈다. 내가 모르는 영역의 사건이라면 더욱이 의뢰인의 말에 귀 기울인다. 그렇다고 의뢰인이 제공한 자료만을 가지고 서면을 쓰지는 않는다. 더 필요한 자료가 무엇인지, 의뢰인에게 요청할 자료가 있다면 요청하고, 그렇지 않다면 스스로 찾아낸다. 

     

법리(주장)에는 법조문, 판례, 학설 등의 근거가 있어야 하고,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폭넓은 배경지식은 사안에 대한 깊이 있는 검토를 도와준다. 배경지식을 알기 위해 관련 기사, 서적, 논문이나 연구보고서 등의 자료를 수집하기도 한다. 주장에 흔들리지 않는 근거를 대기 위해서 변호사들은 리서치를 많이 한다. 변호사들이라고 특별한 자료 검색 노하우가 있는 것은 아니다. 흔히 말하는 구글링(구글로 정보를 검색한다는 뜻)이라는 것도 하지만, 나는 인터넷 상에 있는 정보보다는 문서화된 정보 즉 서적이나 논문, 판결문을 더 신뢰하는 편이다. 검색을 통해 신뢰할만한 자료의 단초를 찾아낸다고 볼 수 있겠다. 참고로 판례를 검색할 수 있는 곳으로는 대법원 종합법률정보사이트, 로앤비, 케이스노트, 엘박스 등이 있는데 나는 주로 엘박스(https://lbox.kr/)를 이용한다. 하급심 판례가 많고, 등록되지 않은 판례는 신청만 하면 판결문을 입수해준다.

     

또한 생소한 분야라면 그 분야에 대해 잘 아는 동료 법조인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배경지식을 잘 아는 이에게 필요한 지식을 물어보기도 한다. 나 또한 내가 잘 아는 분야에 대해서 동료 변호사들에게 질문을 받기도 한다. 타인의 지식과 경험을 직접 들어보는 것만큼 값진 정보도 없다.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할 때 감정적으로 대립할 필요는 없다.     


가끔 서면에 ‘상대방의 주장은 천인공노할 일이다’라거나 ‘이런 주장을 하다니 변호사의 자질이 의심스럽다’라는 등 인신공격에 가까운 표현을 하는 이들이 있다. 나 역시도 받아본 적이 있는데,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변호사가 쓰는 서면은 의뢰인의 이름이 아닌 변호사의 이름으로 제출된다. 민사소송에서 법원에 제출하는 서면은 ‘원고의 대리인은 다음과 같이 준비서면을 제출합니다.’라고 시작한다. 형사소송 역시 ‘변호인 의견서’나 ‘변론요지서’라는 이름하에 변호사는 피고인의 변호인으로 의견을 개진한다. 변호사가 쓰는 서면은 변호사의 얼굴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더욱 조심하고 신중해야 한다. 

    

의뢰인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건 좋지만 서로 예의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더라도 무시하는 표현을 하기보다는 왜 말이 안 되는 주장인지를 보여주면 된다. 판사를 설득하는 게 목적이지, 상대방이 틀렸다고 비난하기 위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주장에는 주장과 근거로 반박하면 그만이다. 그래야 주장에 힘이 실리고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 이 글은 출간 예정인 《변호사의 글쓰기 습관》(가제)의 일부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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