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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혜정 변호사 Feb 16. 2022

의뢰인과 소통을 위한 글쓰기

나는 1인 변호사로 일하고 있지만, 혼자 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변호사 혼자 사건을 해결하는 게 아니라, 의뢰인과 함께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건을 가장 잘 아는 의뢰인이 사건 해결의 열쇠라고 믿는다. 그만큼 의뢰인과의 소통은 중요하다. 나는 의뢰인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전화, 이메일(e-mail), 문자나 카카오톡 메시지 등으로 소통한다.    


대면이나 전화가 아니라면 의뢰인과 ‘글’로 소통하는 셈이다. 문자나 카카오톡 메시지보다는 이메일을 많이 활용한다. 질문의 내용이 길어지고 검토해야 할 사항이 많으면 의뢰인에게 이메일로 보내줄 것을 요청한다. 간단하게 답을 줄 수 있는 사안이라면 문자나 카카오톡으로 짧게 답을 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변호사 업무와 관련해서 이메일로 주로 하는 것은 상담, 의뢰인과 서면이나 자료 주고받기, 상대방 변호사와의 연락이다.      


나는 잘 쓴 이메일을 받아볼 때면 적극적으로 참고한다. 이메일의 구조라던가, 제목, 인사말 등을 보고 배운다. 상대방 변호사로부터 정갈한 문체에 잘 정리된 이메일을 받았을 때 그 변호사님이 달리 보이기도 했다. 배울 점은 무엇인지 찾아보고 내 이메일을 다시 다듬는다. 지금의 이메일 쓰기는 그런 과정을 거친 것이다.    


이메일 기본 세팅부터 신경 쓰자.     


우선 이메일을 사용하려면 이메일 계정이 있어야 한다. 업무를 위한 이메일은 회사 계정을 쓰는 게 아무래도 전문적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업무의 효율성도 무시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포털사이트의 이메일을 사용하고 있다. 블로그, 캘린더, 메모장을 함께 이용하기 때문에 다루기 편하다는 지극히 단순한 이유도 있다. 대신 업무용으로 쓰는 계정을 새로 만들었고, 주소를 ‘lawyer4us’로, 보내는 사람 이름을 ‘문혜정 변호사’로 설정해 직업적인 정체성을 드러냈다. 변호사들 중에는 사무실 계정이나 지메일(gmail)을 사용하기도 하고 나처럼 포털사이트를 이용하는 이들도 있다. 이메일 계정은 용도에 따라 구분해서 사용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업무용으로 주고받는 메일임에도 보내는 사람 이름에 별명을 쓰는 이들이 간혹 있다. 업무의 연장으로 이메일을 쓰는 거라면 다른 건 몰라도 보내는 사람 이름은 본명 그대로 쓰거나 직함을 붙여 사용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도착한 메일함을 보고 누가 보냈는지 정도는 바로 알 수 있도록 말이다.     


이메일 제목에는 메일을 쓴 목적이 드러나야 한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통의 이메일을 받는다. 그중에는 중요한 메일도 있지만, 광고성 메일도 있다. 보통 업무상 주고받는 이메일은 요청사항을 담고 있기 때문에 메일 확인과 동시에 할 일 목록이 추가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바쁜 와중에 어떤 메일을 먼저 열어볼까. 대부분은 제목을 보고 결정한다. 이메일 제목을 잘 써야 하는 이유는 다른 이메일에 내 이메일이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메일 속에서 내가 보낸 이메일을 클릭해서 보게 하려면 클릭을 부르는 제목이어야 한다. 따라서 제목에는 인사말이나 자기소개보다는 이메일을 보낸 목적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게 좋다.      


나 역시 같은 상담 요청 메일이라도 ‘변호사님, 안녕하세요’라는 제목보다는 ‘상담 요청드립니다’처럼 원하는 바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메일을 먼저 열어본다. 상대방의 메일함에서 눈에 띄려면 원하는 바를 분명하게 전달하는 게 좋다.     


이메일 본문에는 핵심을 정확하게 써야 한다.     


이메일, 문자는 글이지만 소통이 전제된 글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말이 아닌 글로 나누는 대화라고 생각하면 된다. 인사말이나 마무리 멘트 없이 본문만 달랑 있는 것보다는 형식을 제대로 갖춘 메일이 예의를 갖춘 느낌이 든다. 인사말로는 날씨나 안부를 간단히 언급하고, 마무리는 ‘감사합니다’로 끝맺는 게 무난하다. 처음 이메일을 주고받는 사이라면, 인사말과 함께 자기소개를 간단히 할 필요도 있다.      


나는 본문의 내용이 길어지면 123으로 번호를 매겨 전달한다. 이러면 시각적으로 보기에도 좋지만, 빠뜨린 사항은 없는지 확인하기에도 좋다. 또한 이메일을 모바일 앱으로 확인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길게 늘여 쓰지 않고 줄 바꿈을 해서 쓴다. 소제목을 달고 중요한 사항에는 밑줄을 긋거나 문장을 굵게 표시해 강조하기도 한다. 본문의 내용을 다 쓴 후에는 <맞춤법 검사기>를 돌려 오탈자가 없는지를 확인해본다. 이메일도 글쓰기이고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퇴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에게 보내야 할 파일이 있다면 첨부파일을 먼저 넣고 본문을 쓰면 파일을 빠트리고 보내는 실수를 줄일 수 있다. 첨부파일의 파일명 역시 상대방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작성한다. 파일명은 ‘소송 종류, 서면 이름, 의뢰인 이름, 날짜, 문서 형태’의 형식으로 한다. 예를 들어, 의뢰인에게 보내야 할 문서가 <변호인 의견서> 초안이라면, 파일명은 ‘[형사] 변호인 의견서_의뢰인 이름(2021.07.23.)_초안’이 된다. 첨부파일이 많다면, 본문에 별도로 목록을 나열해서 어떤 파일을 보내는지 상대방에게 알린다. 상대방은 내가 어떤 파일을 보내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실수로 파일을 누락한 채 보냈다면 이를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의뢰인에게 서면 확인을 부탁할 때는 정확한 날짜를 언급한다. ‘다음 주 중’처럼 애매모호하게 말하기보다는 ‘다음 주 금요일까지 확인 부탁드립니다’라고 명확하게 전달한다. 나 역시 서면을 언제까지 써서 전달하겠다는 의사를 정확하게 날짜로 명시한다. 변호사와 의뢰인처럼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관계일수록 상대방의 불편과 불안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메일을 여러 사람에게 보낼 때는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메일을 받는 사람이 서로 모르는 사이라면 개인별 발송이나 숨은 참조를 활용하는 게 좋다. 내가 사용하는 네이버 메일의 경우, ‘개인별’에 체크해서 보내면 여러 명의 수신자에게 개별로 보낸 것과 같아진다. 한 번에 여러 사람에게 같은 내용의 메일을 보낼 일이 있다면 이렇게 활용하면 된다. 언젠가 한 기관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은 적이 있다. 참조로 달려온 수십 개의 주소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메일 주소도 개인정보에 해당하므로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이메일 상담은 의견서와 다를 바 없다.     


나는 상담 이메일을 쓸 때 의견서를 작성한다는 생각으로 임한다. 상담 이메일은 변호사의 의견을 담은 글쓰기이다. 글을 쓸 때는 항상 읽는 이가 누구인지를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소송서류의 독자는 검사나 판사이기 때문에 법률용어를 풀어서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의견서의 독자는 법률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의뢰인이다. 이메일로 보내준 자료를 분석해서 그들이 원하는 답을 제시해야 한다. 법률용어를 가급적 알기 쉽게 설명해야 하고 의뢰인의 이해를 돕는 글이어야 한다.      


나는 의견을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결론부터 쓰는 방식을 택한다. 결론을 먼저 쓰고 왜 그런 결론이 도출됐는지를 설명한다. 상담을 원하는 이는 답을 구하기 위함이고 그러니 답이 제일 궁금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이메일 상담을 요청하는 이들 중에는 이메일을 정말 잘 쓰는 이들이 있다. 인사말부터 자기소개, 사건 요약, 질문을 잘 정리해서 보내준다. 반면 두서없이 길게 쓴 상담 요청 이메일은 해독부터 힘들 때가 있다. 그렇더라도 상대방이 보낸 내용을 요약하고 궁금한 사항을 정리해서 그에 맞게 보낸다.      


요즘에는 대면 상담을 하기에 앞서 온라인 상담을 먼저 받기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메일 상담도 대면이나 전화 상담 못지않게 품이 들어가는 일이지만 수박 겉핥기 식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상담이 사건 수임으로 100% 연결되는 게 아니듯 이메일 상담 역시 마찬가지다. 변호사에게 원하는 것만 취하려는 이도 있고, 심지어 이메일 확인도 하지 않는 이도 있다. 사안을 열심히 검토해서 보낸 이메일을 확인조차 하지 않는 걸 볼 때면 힘이 빠지기도 하지만, 도움이 됐다며 감사해하는 이들을 볼 때면 보람을 느낀다. 그래서 제대로 된 답을 주지 않은 채 변호사 선임만이 해답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사건 수임으로 반드시 연결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을 때 오히려 수임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의뢰인과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사건 해결은 힘들 수밖에 없다. 소통이 잘 된다는 건 서로 간에 오해가 없어야 한다는 말과도 같다. 상대방의 뜻을 잘못 이해하지 않으려면 내가 이해한 내용을 확실히 전달해야 하고, 내가 쓴 글의 정확한 이해를 구하려면 명확하게 써야 한다. 말보다 글이 좋은 이유는 다듬을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점이다. 변호사가 사건에 최선을 다한다는 진심은 의뢰인과의 소통을 통해서 전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말이 아닌 글로도 상대방에게 진심을 전할 수 있다.



※ 이 글은 출간 예정인 《변호사의 글쓰기 습관》(가제)의 일부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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