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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혜정 변호사 Mar 14. 2023

결국엔 되는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이켜보면 내 가장 큰 경쟁력은 ‘한 번에 되지 않는다’는 거였다. 무엇을 하더라도 한 번에 되지 않았기에 한 번 더 고민할 수 있었고, 한 번 더 준비할 수 있었으며, 한 번 더 숙성시킬 수 있었다. 그 속에서 단단해진 내공과 깊어진 공감 능력은 좀 늦게 도착한 목적지에서 어렵게 찾아오는 기회들을 놓치지 않을 수 있는 힘을 길러주었다.

- 김경호, <한 번에 되지 않는 사람>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고부터 내 생활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아침마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출근하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추가된 나의 루틴은 매일 오후 키즈노트(어린이집, 유치원과 부모가 소통하는 플랫폼)를 확인하는 것이다. 키즈노트 알람이 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바로 알림장을 들여다본다.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울던 아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밝게 웃으며 신나게 놀고 있는 아이의 모습만이 오롯이 담겨있다. 차츰 적응하고 있나 싶어 흐뭇해하며 안심하곤 한다.     


오늘의 키즈노트 알림장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었다. 발레 수업시간에 아이가 처음엔 “저는 못해요”라고 했지만, 선생님이 할 수 있다고 격려해 주니 용기 내서 수업을 아주 잘했단다. 아마도 처음 해보는 동작이었나 보다. 아이는 낯선 것을 두려워하는 나의 성격을 빼다 박았다. 성격도 유전자의 영향이 미치는 영역인 걸까. 겁 많고 소심하고 익숙한 것을 추구하는 나를 어쩜 이리도 닮았는지. 나는 아이의 성격을 묻는 선생님에게 “처음 하는 걸 많이 낯설어하고 두려워해요”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선생님도 이런 아이의 성격을 간파한 건지 아이에게 용기를 많이 불어넣어 주는 듯하다. 아이가 곧잘 따라 하고 수업도 열심히 한다고 하니 엄마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나 역시 낯선 상황, 처음 해보는 일들 앞에서 지레 겁먹기 일쑤다. 이런 성격 때문에 남들보다 더 철저히 준비란 것을 한다. 혼자 시뮬레이션도 해보고 연습을 거듭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안 될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래도 그 시간이 헛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김경호 작가는 대학에 간 것도, 취업을 한 것도, 작가가 된 것도, 앵커가 된 것도 모든 게 한 번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속도로만 본다면 자신은 패배자라고 했다. 남들보다 늦게 도착해서 ‘한 번에 되지 않는 사람’으로 보였겠지만 ‘결국엔 되는 사람’이었다. 기다림의 끝에서 결국엔 해냈고 그 과정에서 더 단단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름대로 정한 몇 가지 원칙 중 하나는 ‘서툴다고 다그치지 말자’였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기다려주자고 마음먹었다. 한 번에 되지 않을 뿐이지 결국엔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한 번에 되지 않는다고 포기만 하지 말았으면 한다. 한 번에 되지 않는다고 자신은 안 되는 사람이라고 단정 짓지 않기를 바란다. 자신만의 속도로 한 발 한 발 내딛기를. 묵묵히 기다림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기를. 그러면 되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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