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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Mar 13. 2023

남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사람들은 당신이 얼마나 그들에게 신경 쓰는지 확인할 때까지는 당신이 얼마나 많이 아는지를 신경 쓰지 않는다."


책 <그렇게 물어보면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없습니다>, 김호



지난주 금요일에 파트 2가 공개된 드라마 <더 글로리>를 보면 학교폭력 가해자 친구들끼리 모이거나 단톡방에서 대화할 때 이들이 '찐친'이라는 게 느껴지는 장면이 나온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제3자 입장에서 보면 서로 대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본인 할 말만 한다. 그렇다고 할 말만 하면 그게 대화라고 불리기 그러니 '진짜?', '그래?'와 같은 영혼 없는 리액션이 대화의 명맥을 이어간다. 꼭 친구들 뿐만 아니라 회의, 회식, 모임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독서모임을 5년 넘게 운영하면서 모임 중에 가장 신경이 쓰였던 건 균형이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만큼 모두가 똑같을 수는 없다. 이제 막 책을 읽은 사람들도 있고, 꽤 오랜 시간 책을 읽어온 사람도 있다. 그중에서는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듣는 게 편한 사람도 있다.


모두가 공평하게 말할 수 없다면 이왕이면 꽤 오랜 시간 책을 읽고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발언권을 많이 주는 편이다. 아는 것도 많고 독서모임에 취지에 가장 부합하니까.


하지만 모든 게 내 마음처럼 흘러가지는 않는다. 종종 '뻥카' 같은 사람들이 있다. 조금 순화하자면 물경력이라고 해야 할까. 말하는 걸 좋아해서 독서모임에 왔을 뿐이다. 실제로 책을 좋아하기도 한다. 문제는 함께 읽기로 한 책을 읽지 않고 오는 데 있다. 그래도 읽은 경력이 있으니 모임에서 어떻게든 때운다. 그게 문제다.


말하다 보면 뭔가 이상하다. 읽고 말하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몇 마디 더 듣고 의심은 확신이 된다. 안 읽었다. 발언을 제한한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말하면 좋지만 그 외 사람들은 듣는 데 익숙하다 보니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자신의 순서가 오거나 관심 있는 주제일 때만 집중하고 그 외에는 집중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어쩔 수 없다. 사람이 한 시간 내내 집중할 수 없으니.


모임이 끝나고 밥을 먹으러 가는 순간 몇몇 사람들이 '오늘 모임 재밌었어요'라고 말한다. 그래도 재밌어서 다행인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스스로는 만족하지 못할 모임이 돼서 영 찜찜하다.


듣는 데 익숙한 사람들은 '도움이 되는 정보들을 들어서' 만족하고,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이 말할 수 있어서 만족한다. 모두가 "대만족"할 수는 없어도 적당히 만족할 수 있기 때문에 모임이 계속 유지될 수 있다.


문제는 적당한 만족이 어느 순간 매너리즘이 되어버린다. 좋으니까 계속하는 게 아니라 이 정도면 나쁘지 않으니까 계속한다는 마인드가 습관이 되면 좀처럼 좋아지는 쪽으로 에너지를 쓰려고 하지 않는다. 직장 생활에서도 그렇지 않은가. 지금 다니는 곳이 만족스럽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이 월급이 낮지만 출퇴근 거리도 괜찮고 사람들도 둥글둥글하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처럼 느끼지 않을 때, 회사가 나를 챙겨준다는 느낌이 없을 때 우린 그들에게 신경 쓰지 않는다. 반대로 말하면 내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 때 회사를 생각해주지 않을 때도 그들은 나를 신경 써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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