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 – 이름
속상한 일이 생길 때, 혹은 무엇인가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느낄 때, 또는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 자신을 중심으로 기쁘고 좋은 일만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슬픔과 좌절, 고통 등은 인생을 살면서 한 번씩은 꼭 겪는 감정이고, 사건이기도 합니다.
이십 대 초반의 저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나름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친구가 저에게 해준 말이 지금도 위로가 되고, 기억에 남습니다.
“어떻게 늘 좋은 일만 있을 수가 있어.”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말 같지만, 그와 같은 이치를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저는 지금도 가끔 곤란한 일을 겪을 때면 ‘늘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지’라고 생각하고는 합니다. 그래야 커다란 스트레스 없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넘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일어난 일은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시간을 과거로 되돌릴 수는 없으며, 나의 영역 내라면 후회해도 늦은 일이고, 나의 영역 밖의 일이라면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결국, 받아들여야 합니다.
저는 이를 수용(受容)이라고 말합니다. 그 일이라는 것이 짧은 경우도 있고, 긴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길고 짧건 간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인생이 완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완벽할 수 없습니다. 완벽한 인생이란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인생이 완벽해 보인다면, 그것은 반짝이는 유리병을 본 것과 같습니다. 눈부시게 반짝이기 때문에 유리병 안에 무엇이 채워졌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 안에 가치있는 것이 있을 수도 있고, 빈병일 수도 있으며, 쓰레기가 채워졌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이는 것에 현혹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완벽하지 않은 가운데 벌어지는 어떠한 사건, 그것은 이미 피할 수 없고 때로는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받아들이고, 헤쳐나가는 것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제가 경험했던 좋지 않았던 일들에 대하여 공유하고 싶습니다.
Episode 1 – 이름
성인인 지금이야 특이하고도 특별한 저의 이름을 사랑하지만, 어린 시절 제 이름은 곤욕 그 자체였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잘 모를 수도 있는데, 〈갑돌이와 갑순이〉라는 곡은 어린 시절 제게 절망감을 안겨 주기에 충분한 노래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곤란했습니다. 아이들은 제게 ‘갑돌이’, ‘갑순이‘라고 불렀습니다. 제가 느끼는 감정은 ’놀림‘이었습니다. 이름 때문에 많이 싸우기도 했습니다. 사촌은 더 심했습니다. 짓궂은 사촌 형들은 제게 ’갑뽕이‘라고 놀렸습니다. 너무 괴로웠습니다. 한 번은 보다 못한 아버지가 사촌들에게 크게 화낸 적도 있었는데, 그뿐이었습니다.
원래 제 이름은 ’정훈‘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고향에서 이름을 잘 지어주시는 어른이 ’갑철‘로 바꾸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아명은 ’정훈‘이었는데, 신고할 때에는 ’갑철‘로 된 것입니다.
아이들의 놀림에 얼마나 괴로워했던지, 한 번은 부모님께서 개명에 대해서도 물어봐 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의 대답은 “아니오,”였습니다. ‘갑철’이 저라는 인식이 어린 나이에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의 이름에 대한 인식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도 좋지 않았습니다. 그저 촌스러운 특이한 이름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성인이 되어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그 친구는 제게 이렇게 말해줬습니다.
“난, 네 이름이 좋아. 이름이 갑(甲)이잖아. 갑(甲).”
“무슨 말이야?”
“아니, 갑을을병(甲乙丙丁)할 때 제일 앞에 있잖아.”
당시만 해도 ‘갑질’이라는 말이 폭넓게 사용되기 전이었습니다.
“좋다.”
제 이름은 ‘갑(甲) 철(哲)’인데, 여태 ‘갑(甲)’자를 ‘갑옷 갑’자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 순간부터 ‘갑(甲)’자를 ‘첫째 갑’으로 여겼습니다. 제 이름을 그렇게 생각하면, ‘첫 번째로 밝은’ 더 좋게 해석하면 ‘가장 밝은’이라는 뜻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저의 이름을 새롭게 받아들였던 이 시기가 제 인생에 있어서 또 다른 전환점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저에게 곤란함을 안겨줬던 그 이름, 이제는 최고의 이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