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 – 초등학교
① 묻지마 폭행
이제는 너무 오래됐기에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저학년 때의 일임은 확실합니다. 그땐 아이들이 많아서 저 때의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1학년, 2학년 학생들은 오전반, 오후반으로 반을 나눠 수업을 들을 때입니다.
오전반의 경우 바로 교실로 들어갔지만, 오후반의 경우 운동장 한쪽에 대기 장소가 따로 있었습니다. 대기 장소에서 담임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는 그때,
“퍽”
저는 불의의 일격을 당해 넘어졌고, 범인은 형이었습니다. 저희 반 혹은 다른 반 아이의 형이었는데, 당시 제가 덩치가 크니까 저에게 힘으로는 못 해보고 형에게 저를 때려 달라고 부탁한 것 같습니다.
다행히도 담임 선생님께서 그 장면을 보셔서, 그 형은 그 자리에서 호되게 혼났고, 일러바친 다른 녀석도 혼났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의 초등학교 저학년 때 상급생으로부터 묻지마 폭행을 당하다니…….
쉽지 않은 인생이 시작됐습니다.
② 선행상 받은 자(者)와 선생님의 편지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입니다. 저는 반장이었고, 제 뒤에 앉은 아이가 저를 괴롭혔습니다. 당연히, 그 이름도 잊을 수 없습니다.
이젠 너무 오래 되어 그 친구가 저를 어떻게 괴롭혔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그 친구, 학기 초에 선행상도 탔던 아이인데 참 영악한 친구였습니다. 그러니, 남들을 괴롭히고 다녔겠지요.
지금은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는데, 당시만 하더라도 담임선생님께서 아이들 일기를 검사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린 마음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답답한 마음에 그 아이가 저를 괴롭힌다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실수하신 거죠. 그 친구가 제 뒤에 서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제 일기장을 보시고, 제가 자리에 들어가는 순간 그 친구에게,
“너, 갑철이 괴롭히니?”
“아니요.”
아직도 그 순간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자기 자리인 제 뒷자리로 가면서, 웃으며 제게 말했습니다
“야, 내가 언제 너 괴롭혔어,”
거기에서 괴롭힘이 끝났으면 좋으련만 저에 대한 괴롭힘은 지속됐고, 저는 구두 헤라를 엄마 몰래 가방에 숨기고 학교에 가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쉽게 그 물건을 꺼낼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터질 게 터졌습니다. 하굣길에도 저를 괴롭혀서, 제가 그 친구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고 울면서 울분을 토했습니다.
“야,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괴로운지 알아!”
하지만, 제가 먼저 때렸기 때문에 이를 지켜본 주변의 어른들은 저를 비난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 그 친구 하는 말이 가관이었습니다.
“내가 집에 가서 생각해 봤는데, 네가 힘들었을 것 같아. 그리고, 우리 엄마도 힘쓰지 말고 머리로 이기래.”
지금까지도 기억나는 것을 보면, 사회생활의 첫걸음인 학교에서부터 쉽지 않은 인생을 시작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 그 담임선생님은 그때의 일이 미안했던지 제가 자필 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③ 서울에서 전학 온 아이
저는 초등학교 4학년 가을 무렵 서울에서 광주로 전학 갔습니다. 서울에서 전학하다 보니 반 친구들은 물론 옆 반에서도 관심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 번은 야구부원 녀석이 슬슬 저를 건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두 번 정도 제가 참고 넘어간 것 같은데, 마지막 발단은 세 번째였습니다. 그 애는 자신의 자리로 가면서 제 교과서를 구겼고 ‘씨익’ 웃었습니다. 어디서 못된 것만 배운 아이였습니다. 저희 부모님께서는 제가 욱하는 성격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최소한 세 번 참을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세 번이 됐습니다. 그 친구가 야구부원인 것은 상관없었습니다. 저 역시 한 덩치하고, 한 성깔 했었기 때문입니다. 단번에 그 녀석을 제압했고, 담임선생님이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이가 잘못 했고만.”
그다음부터 그 녀석은 저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습니다. 옆 반 놈입니다. 그놈은 저만 보면 시비를 걸었습니다. 저보다 키도 훨씬 컸기 때문에, 한 덩치 하는 저 역시 느끼는 위압감도 상당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저의 반 반장이 저를 많이 보호해줬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그 녀석과 다른 한 놈은 그렇게도 저를 건드렸으니까요. 그 꼬마 녀석들이 ‘패드립’한 것까지 생각하면, 정말 저는 잘 참아냈습니다.
키 큰 놈은 저랑 같은 아파트 살아서, 원래 밖에 나가기 싫어했던 저이지만 어머니를 따라 나가는 것도 싫었습니다. 한 번은 어머니가, “너 내가 창피하니?”라고 물은 적도 있으신데,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걔 싸움 못 한다던데”라고 말씀하시며 저한테 화내시던 게 기억납니다. 지나가는 길에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한테 물어봤던 것입니다.
아마도 이때의 일 이후로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집에다 잘 이야기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일은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 시기를 잘 넘긴 제가 대견합니다.
④ 태양이 두 개일 수는 없다
서울에서 광주로 전학 간 이듬해, 5학년 때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반장 아이는, 제가 서울에서 전학 온 것을 시기하고 질투했던 것 같습니다. 그 감정이 씨가 되어 저를 괴롭혔습니다.
반장인 아이인 만큼 굉장히 영악했습니다. 청소를 같이 하는데, 선생님이 안 보실 때에는 뺀질거리다가도, 선생님이 보이면 굉장히 열심히 하는 척하는 아이였습니다.
반칙도 잘하는 아이였습니다. 체력 검정을 하는데, 정해진 자세에서 벗어나 윗몸 일으키기를 하는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좋게 말하면 승부욕이 강한 건데, 반칙은 반칙입니다.
결정적인 사건은 축구였습니다. 편을 가르는데, 대놓고 “얘는 축구 못해.”라고 면박을 주고, 따돌리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서러웠는지 모릅니다. 저도 서울에서 2, 3, 4학년 연속으로 반장을 계속하던 아이였는데요, 그 녀석 때문에 참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나중에는 길바닥에서 한바탕했는데, 한바탕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그놈 친구가 뒤에서 저를 밀어서 넘어뜨려 분통해서 눈물 흘린 기억도 있네요.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 어린 나이에 ‘그냥 병원에나 입원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까지 했을까요. 그런데, 정말 말이 씨가 된다고 그해 봄 저는 맹장염으로 입원하고 수술을 받았습니다.
퇴원 후에는 제가 독자적인 노선을 타기보다는, 그 녀석과 친해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학교생활이 조금 나아지기는 했는데, 아직도 그 녀석이 한 말이 기억납니다.
한번은 제가 백과사전을 들고 와서 본 적이 있는데,
“참 많이 발전했다.”라고 말하더라고요.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대학을 한 번에 가지는 못하고 재수했다고까지만 들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잘 모릅니다.
과거의 그 녀석에게 한 마디 해주고 싶습니다.
“감히? 네가?”
⑤ 도둑놈
6학년 때의 일입니다. 그 녀석과 한 반이 되었습니다. 한 살 더 많은 초등학교 짱과 같은 반이 되었습니다.
어린 나이니까, 생일 파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녀석은 초대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녀석은 학기 초에 “너 생일 파티할 거지?”라고 물어봤습니다. 사실 그때 싸함을 느꼈습니다. 그때 멈췄어야 했는데, 조금은 그 녀석 때문에 친구들을 초대한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제 방에서 제 지갑에 든 돈 5만 원을 확인하고, 비디오를 보자고 유인했습니다. 그놈이 나간 이후 5만 원이 사라진 것을 확인했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수소문했고, 그놈이 바로 금방에서 뭘 사 갔다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장물 처리까지 아주 훌륭한 녀석이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 와서는 “너 돈 누가 훔쳐 갔다며?”라고 말하면서, 지금도 저와 가장 친한 친구를 모함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수학부장이었는데, 짝꿍이던 제가 지 책 들춰 봤다고 의자에 앉아 있는 저를 발로 차질 않나, 반장이던 제가 청소 지적하니 네가 해보라며 빗자루로 제 얼굴을 쓸어버린 놈이었습니다.
당시 일기를 쓰면서, 복수를 꿈꿨던 때가 떠오릅니다. 검사의 꿈도 그때 더욱 확실해졌던 것 같습니다. 원래 법관이 되고 싶었는데, 그 일 이후로 검사가 돼서 그놈을 구속시키고 싶었으니까요. 제 꿈을 향한 일종의 부스터가 된 셈입니다.
제가 이런 일을 겪었다 보니, ‘학군지’, ‘학군지’ 하나 봅니다. 물론, 지금도 제 생각은, 이런 놈은 어딜 가도 있다고는 생각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