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좋은 일들만 생길 수는 없습니다 3

Episode 3 – 중학교, Episode 4 - 고등학교

by 안갑철 변호사

Episode 3 - 중학교


중학생 때에도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① 사람이 아니야


중학생은 사실 사람이 아니라서 생기는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


가장 이해가 안 가는 애들은, 도시락을 안 싸 오는 애들이었습니다. 제가 중학교 다닐 때만 하더라도, 중학교에 급식실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3년 내내 도시락을 싸 들고 다녔는데, 젓가락만 들고 오는 애들이 몇 있었습니다. 개중에는, 저와 갈등이 없는 녀석도 있긴 했는데 꼴 보기 싫은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체육복 훔쳐 입는 놈들도 있었습니다. 그 시절, 그렇게 일진 놀이하는 게 멋있어 보일 수도 있는데, 사람 새끼들이 아니었습니다. 고등학교 입학 전에 주먹다짐이나 하자는 협잡질이나 하는 놈도 있었네요.


또 한 번은 저를 단체로 때리려는, 즉 소위 ‘다구리’를 보겠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곧바로 선배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놈들을 집합시켜 저는 건들지 못하도록 말해준 적도 있었네요.


고등학교 진학할 때에는, 행여나 그런 녀석들과 다시 마주칠까 봐 걱정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엔 인생의 고민이 그런 종류였던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너무 소심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② 누명의 추억


중학교 3학년 때 저는 실장(반장)이었고, 청소만큼은 엄격한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녀석이 청소하지 않고 도망하는 일이 잦았고, 저는 말로서 그 녀석을 눌렀습니다. 제가 좀 세게 뭐라고 하긴 했던 모양입니다. 저보다 덩치도 더 큰 녀석이 울먹일 정도였으니까요.


문제는 그 이후에 발생했습니다. 사촌인지 동네 형인지 모르겠는데, 사촌 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집에 전화해서 협박 아닌 협박을 한 것입니다. 저희 어머니가 전화를 받고 굉장히 놀라신 적이 있습니다. 제가 전화를 받고, 저한테 또 협박하는데 제 나름대로 항변했습니다. 저는 그 친구를 때린 적이 없는데, 자꾸 때렸다고 한 것입니다. 그 친구는 같은 반 일진 녀석에게 맞은 적이 있었는데, 차마 일진은 못 건드리고 저를 타겟으로 삼은 듯했습니다.


일은 협박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차를 몰고 중학교 운동장으로 진입했습니다. 그리고 저를 운동장으로 불렀습니다. 다행히 저는 맞지는 않았는데, 좋은 소리는 못 들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저에게 ‘때린’ 이야기를 해서 아니라고 항변하니, 그 친구를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 친구를 못 데리고 올 이유도 없었습니다. 일단, 저는 안 때렸으니 일진 친구더러 내려가라고 했습니다. 제가 일진 친구와 친하게 지냈던 것은 아닌데, 저는 잘못이 없으니 일단 제가 그 녀석에게 내려가 보라고 한 것이지요.


그 사촌들은, 지금 생각하면 20대 초반으로 보였는데 남자 셋, 여자 하나, 이렇게 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걸 지켜본 친구들 사이에 들리던 말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차 번호가 ‘허’자야.”


Episode 4 - 고등학교


① 학무모 총회 임원과 결탁한 담임 선생님


잘난 척일 수 있지만, 저는 초등학교 2, 3, 4, 6학년, 중학교 1, 3학년, 고등학교 1학년 때 반장(중학교 때에는 실장)만 해봤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때에는 전교 부회장에 당선되기도 했었습니다. 이 말은, 달리 말하면 제 자존심상 ‘부’자가 들어간 것은 죽어도 하기 싫어했던 성향 내지는, 반장이나 실장이 안 될 것 같으면 애초에 도전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전교 부회장만큼은 예외로 봐야겠죠, ‘전교’니까).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는데, 저와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이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제 정치 기반이 1도 없었다는 뜻이 됩니다. 그때 저와 A가 추천을 받아 실장 후보가 되었는데, 갑자기 B도 출마하고 싶다고 하여 3파전이 됐습니다. 저는 가볍게 1위를 했는데, 이게 웬걸, 그때 담임 선생님은 재투표를 결정했습니다. 제 득표수가 과반수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했습니다.


하지만, 재투표 결정은 매우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보통 과반수 득표자를 임원으로 결정하려면, 선생님들께서 사전에 공지를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즉, 저는 당시 담임선생님이 원하는 실장이 아니었던 것이죠. 정말, 운이 안 좋게도 결선 투표에서 졌습니다. 너무 자존심이 상했고, 그 부당함을 따지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제게는 ‘부실장’을 하는 자존심 깎이는 일보다, ‘대학 입시’가 더 중요했으니까요.


이후 어느 날, 선생님은 단호한 목소리로 저더러 칠판에 제 이름을 써 보라고 시켰습니다. 그런데, 제가 실수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저는 갑(甲)자와 신(申)자를 구분할 수 없었거든요. 安甲哲을 安申哲로 쓰니, 그게 어떻게 ‘갑자라고 할 수 있냐’라고 하시면서 화를 내시더군요. 40명 넘는 친구들이 그 광경을 목격했고, 당시 반 아이들은 전교 부회장이자 학급 부회장인 저를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② 나는 진정한 친구가 다 있었다


저는 당시 만17세 정도에 불과한 나이였지만, ‘진정한 친구’는 다 사귀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20년도 훨씬 지난 지금도 연락하는 친구들이니까요. 그래서,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었지만,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을 소홀히 했습니다. 그 결과일까요? 쉬는 시간에 제가 영어 단어를 외우고 있는데, 교실 뒤에서 무리를 지어 노는 한 놈이 “갑철아!”라고 부르고, 제가 뒤를 돌아보니 그 무리가 소리 내어 웃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정말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입니다.


그 연장선에서,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놈이 저와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 되었습니다. 점심 식사를 그놈과 다른 녀석과 같이했는데, 제가 식사를 다 마치기도 전에 둘이 먼저 일어나 버리는 꼴도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2학년 때에 기숙사에 들어가는 것이 그렇게 좋았었나 봅니다. 왜냐하면, 기숙사에 들어간 아이들은 급식실에서 식사하지 않고 기숙사 내 식당에서 식사했기 때문입니다. ‘지정석’에서 ^^


이렇게 교우 관계가 좋지 못한 ‘저’이다 보니, 체육대회 때 축구 엔트리에 못 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나 봅니다. 저는 체육대회 축구대회에 대한 로망이 있었습니다. 중학교 때 축구대회는 3학년들의 차지였습니다. 예선전에 뛸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영어도 못 하는 저는 영어경시대회에 강제로 참석해야만 했습니다. 벼르고 벼르던 축구대회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하게 됐는데, 저는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하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최종 엔트리를 짠 친구는, 실장이었습니다. ^^


실장 선거를 나가면 당선이 유력해 보이는 저와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은, 아직도 받아들이기 힘든 일입니다. 촌지를 받은 게 확실해 보이는 담임선생님의 전략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제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나 싶습니다. 더 나아가, 저희 부모님은 잘못하신 게 더욱 없습니다. 저를 뒤에서 부르던 그 새끼들은 지금 뭐 하는지 궁금합니다. 밥 먹는데 저를 두고 간 놈은 어떻게 지낼까요. 그리고, 축구 엔트리에서 제 이름 뺀 놈도. 물론, 제가 체력이 약하고 운동 신경이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분한 마음이 감춰지지는 않네요.


③ 사람이 아니야 2


이런 교우관계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도 크게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어차피 밥 먹는 거야 기숙사 식당 지정석에서 먹으면 되는 거니까, 밥 먹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도 없었습니다. 저는 그저 공부만 신경썼습니다.

당시에는 대학 수시 모집이 막 활성화되기 시작할 때라, 정보가 없던 저는 서울로 입시설명회를 듣고 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수시 합격을 목표로 하였기에 시험을 치기 위해 상경하여 여러 날 학교를 비우기도 했습니다.


어느 학교 시험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제가 학교에 돌아오자 제 책상은 치워져 있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놈이었을까요.


그렇지만, 《오늘도, 버티는 힘》의 저자 안갑철은 사라진 책상에 굴하지 않고 결국 수시 1학기 합격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정말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너무 힘든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수시 1학기 합격이라는 결과를 맞이했기 때문에, 반 아이들에게 뭐라도 돌리고 싶었습니다. 치킨이나 피자를 돌리면 좋았겠지만, 당시 그럴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40만 원어치 하는 문제집도 다 나눠줬습니다.


그때 다모임을 통해 반 아이와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습니다. 합격 턱으로 뭘 준비했냐고 묻더군요. 저는 ‘햄버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대답은 ‘짜증 나네.’였습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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