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변호사시험, 그리고 합격발표
올해도 어김없이 합격자 발표날이 다가왔다. 잔인한 4월.
내가 시험을 봤던 제10회 변호사시험부터 합격자 명단은 모두에게 공개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제 매 해 변호사시험 합격자 발표가 날 때마다 자기가 궁금한 사람의 이름을 검색해 볼 수 있다. 나 또한 올해도 시험을 쳤을 나의 동료들의 이름 몇 개를 검색해 보며 기쁨과 안도감과 당혹감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저녁을 보내게 되었다.
이런 명단 발표의 방식에 대해서는 공개처형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다. 소송 다툼 끝에 이런 방식이 자리 잡은 게 올해로 세 번째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방식이 허용된 까닭에 관하여 법원은 "변호사는 공공성을 지닌 법률전문직으로 그들이 수행하는 직무는 국민들의 광범위한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므로 변호사시험 합격 여부, 합격연도 등 정보공개로 인한 공익적 필요가 더 크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설시에도 불구하고 나는 합격자 명단을 전면 공개하는 것은 다소 무자비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변호사시험이, 나아가 로스쿨 제도가 '사람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점과 관련이 있다.
변호사시험 운영에 대해 좀 설명해보려고 한다. 변시는 매 해 1월 둘째 주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5일간 치러진다. 그중 하루는 휴식일이니 시험을 치는 것은 4일 정도이다. 처음 이 사실을 알면 놀라는 이들이 많다. 그도 그럴게, 많은 고시들이 있지만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시험을 치르는 경우는, 내가 알기론 별로 없다(행정고시 2차 시험 또한 5일 동안 치러진다는데, 시험을 치는 시간 자체는 변호사시험이 좀 더 길다).
이 5일의 시간 동안 체력관리가 중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보다 중요한 것은 멘털을 관리하는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시험을 치는 와중에 망쳤다는 생각이 들어 포기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내가 시험을 보던 고사장에서도 그런 분들이 몇 분 계셨다. 그러나 이 시험은 일 년에 한 번, 총 다섯 번의 기회만이 주어지기에, 그 한 번을 포기하는 것은 매우 큰 손해이다. 따라서 수험생으로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주어진 기회를 반드시 100% 활용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통계적으로 변호사시험은 초시 합격률에 비해 N시의 합격률이 크게 떨어진다. 그러니 많은 수험생들이 "반드시 한 번에 합격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고 있다. N시생의 경우 합격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더군다나 합격 발표는 시험이 끝나고 3개월 반을 기다려야 한다. 이 시간은 더없이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어디서 듣기로 채점 자체는 1월 말에 마무리가 된다고 하던데, 왜 합격 발표를 그렇게까지 늦게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결과를 기다리는 모두를 힘들게 할 뿐만 아니라 불합격하고 재수를 도전하는 사람에게 이 시간은 너무나 큰 손해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특히 지적하고 싶은 것 중에 하나는 합격자 숫자가 매년 다르게 결정된다는 점이다. 줄 세우기로 자르는 건 그렇다 치고, 올해는 몇 명이 붙게 될지조차 알 수가 없다는 사실은 여전히 놀랍기만 하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이른바 직역수호라는 명목 하에 합격자 확대를 반대하는 변협과의 이해관계 충돌 때문이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던 와중에 로스쿨 교수님이 쓴 칼럼을 읽게 되었다.
그런데 한국의 변호사시험은 미국보다 훨씬 살벌한데, 자격을 부여하는 이벤트는 따로 없는 것 같다. 나도 변호사 등록할 때 무슨 절차가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옛날에는 사법연수원 졸업으로 법조인 자격을 갖게 되었으니 연수원 졸업식이 그에 상응하는 이벤트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 자리에는 대법원장, 법무부장관, 대한변협 회장이 오셔서 덕담으로 후배 대접을 해주셨다. 그럼 사법연수원 졸업이란 이벤트도 없는 요즘 신입 변호사들은 어떤 순간을 변호사가 되는 순간으로 기억할까? 합격 소식을 스마트폰 화면으로 조회하는 순간? 여기저기 웹사이트 돌아다니다가 어렵게 연수 자리 찾아내서 신청하는 순간?
이제 한두 주 내에 변호사시험 합격자가 발표될 텐데, 이들을 변호사 직역의 일원으로 따뜻하게 맞아들이는 이벤트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변호사법 제1조를 함께 낭랑하게 읽으며 가슴 벅찬 기분도 느껴 보고, 원로 변호사님들로부터 따뜻한 덕담도 듣고, 선배들이 후배들을 반긴다는 느낌, 내가 유구한 전통의 일부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그런 행사.
개인적으로는, 변호사 신분증과 배지를 수령하던 날, 그리고 법무부에서 합격증서를 우편으로 수령하던 날, 합격의 감격스러움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변호사가 되기 전에, 혹은 그 후에라도 변호사법 1조를 읽어보고, 형식적으로라도 마음에 새겨보려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
변호사는 그 사명에 따라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고 사회질서 유지와 법률제도 개선에 노력하여야 한다.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한국 로스쿨은 공부를 가르쳐주기는 하여도 좋은 변호사란 무엇인가를 배우고 고민하기는 쉽지 않은 곳이다. 내가 경험한 로스쿨은 학점, 실무수습, 재판실무, 검찰실무, 변시까지 정신없는 무한 시험과 줄 세우기가 이뤄지는 곳이었다. 그러니 어떻게 생각해 보면 공개적으로 합격자 명단을 개시하는 방식도 무한 경쟁에 무뎌진 법조계 사람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애초부터 로스쿨에 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 중에 변호사의 사명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주 소수일지도 모르고.
그렇지만 어찌 되었건 사람과 사람의 권리에 대해 평생 고민해야 하는 직업으로서, 변호사가 되는 일을 단순한 생계유지의 수단, 계급 상승을 위한 사다리,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과 같은 자본주의 논리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을 쥐어짜는 환경에서는 온정적이거나 여유로운 생각을 갖게 되기는 쉽지 않다. 그보다는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투자 대비 회수를 하기 위해 애를 쓰게 되기가 쉽다.
로스쿨 과정과 변호사시험 운영, 합격 발표까지… 무한 경쟁과 승자만 기억하는 세상, 패자에게 닥칠 어려움은 고려하지 않는 이 무자비함은 어쩌면 한국 사회의 문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