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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wyergo Jun 06. 2019

황교안 대표 기독교와 조계종의 대립

고성춘 조세전문변호사


조계종에도 노조가 출범하여 민노총에 가입했다는 소식을 의외로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하다못해 승려들도 이제서야 전해듣고 깜짝 놀라곤 한다. 노조 선언문에는 부처님 법대로 살겠다고 하는데 부처님이 언제 노조에 가입하라고 했는지 의문이다. 어느 법람이 많은 스님 이야기를 빌려보면 종무원들이 스님의 뒤 구린 것을 내세워 꼼짝 못하게 한다고도 한다. 사실이라면 한마디로 가관이다. 한국불교는 고사되어 가고 있다. 어느 구참 선승에게 물었다. "한국 불교가 사는 방법이 있나요?" "망하는 게 사는 거죠." 망하더라도 철저히 망가지면 변화가 있을 거라고 하였다. 망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생긴다고 하였다. 총무원이라는 게 일제시대때 데라우찌 총독이 한국불교를 통제하기 위해 만든 거였는데 해방 후에도 역대 정권 입장에서도 총무원이 편리한 제도로 받아들여졌다. 한국불교는 본사들이 있어 각자 알아서 해왔기 때문에 원래 총무원이라는 게 필요없었다. 그러나 공문을 보내도 여러 통을 보내야 하니 불편해서 총무원을 만들었던 게 이유였다고 한다. 총무원을 통해 본사들을 통제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지다 보니 총무원의 종권을 장악하기만 하면 불교 전체를 장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조계사 사태 등이 벌어진 이유다. 국가는 문화재지원금 등 불교에 지원해주는 예산을 통해 총무원과 의사소통을 하고 총무원은 그 예산집행의 무기를 통해 본사들을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것 같다.



이판 사판이라는 말이 있다. 이판은 공부하는 승려를 말하고 사판은 절집 재산을 관리하는 승려를 말한다. 예전에도 이판이 사판에게 쌀을 얻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부산에 피난 온 이승만이 범어사를 갔을 때 동산 스님으로부터 불교의 현실을 전해듣고 1954년 담화를 발표하여 당시 왜색이 짙었던 대처승들을 몰아내도록 협조를 해줬다. 이 과정에서 500명에 불과한 숫자가 월등히 열세인 비구승들이 세력을 보충하고자 이상한 이들을 끌어들어 7천명의 대처승을 몰아내면서부터 한국 불교의 분쟁의 씨앗인 폭력성은 항상 곳곳에 뿌려져 있었다. 목적을 달성했으니 나가줘야 할 자격도 없는 이상한 이들이 그대로 눌러 앉아버렸다고 한다. 세상에서는 손가락질 당하고 지탄을 당했던 이들이 승복을 입으니 합장받는 대우를 받게 되어 꿀에 취할만 했다. 부처님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고자 출가한 이들이 아니었다.


조선시대에 유명한 서산대사도 선가귀감에서 부처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승려들을 분류해놓았다. 부처의 의복을 빌려 갖가지 악업을 짓는 도둑들인데 인과를 믿지 않고 그 결과인 죄와 복을 배척하며 몸과 입을 제멋대로 해서 애욕과 증오를 번갈아 끊임없이 일으키는 가엾은 이들이라고 표현하였다. 같은 승려도 싫어해서 멀리하고 세속의 사람도 피하는 자를 '박쥐 승려', 혀가 있으나 가르침을 펴지 못하니 '벙어리 양', 승려의 모습이나 속세의 마음을 가진 자를 '대머리 거사', 죄가 무거운데도 고치지 않는 자를 '지옥의 찌꺼기', 부처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자를 '가사 입은 도적'이라고 설명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승려의 모습은 같은 것 같다. 부처님 말씀대로 살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보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그렇게 경책했건만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느 도인이 쌀알 다섯개를 헛되이 버린 대가로 소로 태어나 살아서는 힘을 써서 갚아야 했고 죽어서는 고기가 되어 갚아야 했으니 보시를 화살을 받는 것처럼 독을 든 음식을 받는 것처럼 하라고 오죽했으면 서산대사도 글로 남겨 이를 경책하고자 했을까 싶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단지 평생 바라는 바가 따스함과 배부름만이 있는 승려들에게는 눈앞의 즐거움이 곧 죽은 후의 고통이라는 것을 생각할 리 없다. 헛된 명예를 구하지 말고 수행에 전념하고, 헛된 육신에 집착하지 말고, 죄를 참할 줄 알고, 대상을 구하지도 말고 마음도 구하지 말고, 고요함을 추구하지 말고 나 자신이라는 생각 조차도 놔버려야 하고,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말고, 분별심을 내지 말라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닭벼슬만도 못하다는 중벼슬에 탐닉하고 비싼 승복을 입고 다니면서 대접받고자 하고 독화살 같은 보시물을 자기 것인양 써대고 마치 어제의 천대받던 이들이 갑자기 신분이 바꿔진 양 자신들이 선민으로 대접받고자 한다. 언제 적에 승려한테 삼배하는 게 생겼는지 삼배를 권한다.


황교안 자한당 대표가 부처님 오신날 법요식 의례를 따르지 않든 말든 그것에 기분나빠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부처는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넜으면 자신도 버리라고 하였다. 오직 진리에 의지하고 자신에게 의지하라고 하였다. 불상을 만들거나 교단을 형성한 적이 없었다. 부처를 시기하는 이들로부터 죽음을 당할 뻔 해도 그들을 다 포용하였다. 황교안 대표가 우상숭배에 경기를 일으키는 자기 종교의 틀에 벗어나지 못해 답답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그러려니 받아들이는 게 수행자의 자세다. 허공 속에서 그림자를 쫓지 않듯이 세상 밖에서 무언가를 뒤쫓지 않는 게 수행자의 근기다. 서산대사의 경책대로 수행하는 이들이라면 오히려 황교안 대표를 비난할 게 아니라 걸림없는 자유를 만끽하도록 기도를 해줘야 한다. 말 그대로 공당의 대표로서 대상세계와 마음도 잊는 참된 진리를 추구하도록 위해주는 게 이 나라를 위하는 길이다. 평생을 남으로부터 대접만 받는 검사출신이 아니라 세상을 위하고자 하는 정치인이라면 자기 신앙의 틀을 벗어나는 유연성을 가지도록 해줘야 혹시라도 나라를 하느님에게 봉헌한다는 마음을 내지 않을 것 같다. 점잖은 게 결코 점잖은 게 아니어 보이지만 조계종도 민노총에 잠식 당하는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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