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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wyergo Jun 22. 2019

[나를 찾아가는 과정] 기승전물욕, 기승전돈

조세전문변호사 고성춘

[나를 찾아가는 과정]
기승전물욕, 기승전돈


부처님이 보리수 나무 아래서 고행 끝에 깨닫고 보니 진리의 세계가 그렇게 화려하고 장엄하다는데 그 의미조차도 알기힘든 입장에서는 그냥 세상이 온통 돈으로 꾸며놓은 것으로 보인다. 기승전돈으로 보인다. 누굴 만나도 결국 돈으로 귀결된다. 귤이 회수를 넘어가면 탱자가 되듯이 부처님 말씀도 세상살이를 거치면 돈으로 귀결된다. 30년 넘게 '이 뭐꼬' 화두를 잡은 수좌도 결국 '돈은 뭐꼬?'로 화두가 변질되곤 한다. 이게 한계다. 진리와 딱 한몸이 되지 못하면 결국 돈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아무리 내세울만한 학식이 있고 그럴싸한 수행을 했다해도 돈의 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부처님은 부자가 되라고 하기보다 단지 부자의 공덕이 있다고 말씀했는데 물질에 시달리다 보니 부처님도 돈으로 보인다.

백천만겁구습결업(百千萬劫 久習結業)
이라 했다. 업때문에 진리를 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백천만겁  동안 익히고 쌓아온 훈습이니 얼마나 두텁고 찐덕찐덕할까 생각만해도 숨이 막힌다. 출가한 이들이 20~30대에는 길거리에서 죽어도 도닦다 죽는다는 기백이 있다가도 40대가 되면 말사주지를, 50대가 되면 본사주지를 하고 싶어한다는 말에서 보듯이 결국 현실은 돈으로 돌아온다는 의미다. 출가자도 그러니 재가자는 두번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종교 언저리에서 놀고자 하는 이유는 뭔가 허전하기 때문이다. 종교가 액세서리로 딱이다. 세상에서 별 짓을 다해도 종교로 분식을 하면 명예도 생길 수 있고 사람들이 모이니 돈도 생길 수 있다.

심불상속고(心不相續故) 라고 하였다. 중간에 끊어진다는 의미다. 부처님 말씀이 자꾸 끊어지는 것을 말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환희심이 나는 게 아니라 순진한 것 아닌지 의구심만 더 든다. 그래서 부득결정신(不得決定信)이라고 하였다. 믿음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부처님 말씀대로 살겠다는 믿음이 고꾸라지는 이유다. 수행자도 그러는데 재가자들이야 '두말해서 뭐하리'다. 불교를 내세워 경제공동체를 만들자는 것도 물욕의 화신일 뿐이다. 부처님은 자본주의를 창시하신 분이 아니다. 수행을 해서 백천만겁의 구습결업을 소멸하라고 했을 뿐이다.수행 정진력이 없으면 될 수 없는 일이니 어제의 벼슬아치가 오늘의 수행자가 될 수 없는 이유다.

사람들은 부처님이든 하느님이든 공자든 성인의 말씀을 알아서 취사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어느정도 세상경험이 생기면 무조건 따르지 않고 자기가 알아서 취사선택하기 마련이다.
그러면 행복해지고 만사가 잘 돼야할 건데 계속 종교를 놓지  못하고 종교의 언저리에서 해결책을 찾고자 한다.

역대 어느 조사보다도 경지가 높았다는 경허선사도 자신이 막식막행(莫食莫行)
을 하는 이유는 습때문이라고 했다. 땡초밑에서 보고 익힌 습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일행삼매라는 말이 요즘 크게 다가온다. 25년 전에 청화스님으로부터 들은 법문이다. 마음의 중심을 불성 또는 본성에 놔두고(一相三昧) 이를 잠 잘때나 밥먹을 때나 걸어다닐 때에도 항상 일심으로 되뇌인다(一行三昧)라는 말이다. 진리의 눈으로 보면 모든 우주는 한덩어리고 둘이 아니고 하나라고 한다. 의상대사는 이를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이라고 표현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바로 이럴 때 업이 소멸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잘 되고자 하는 의미는 기승전물욕으로 귀결되지만 물욕도 장애물이 존재하면 얻지 못하는 것 같다. 업이라는 장애물이다. 본성을 향하는 마음이 결국 업의 소멸 과정이라고 하였다. 본성은 진공묘유(眞空妙有)라고  했다. 묘하고 묘하다 했다. 관세음보살을 목숨을 내걸고 친견하고자 했던 의상대사의 구도심이 이제야 어림풋 하게 이해가 되는 듯 하다. 나이 먹을수록 더 순수해져야 하는데 살아온 자기 습대로 편하게 살고자 한다. 업을 소멸하기는 커녕 차곡차곡 착실히 더  쌓고 있다. 에베레스트 같은 높은 산을 올라가는 나그네가 짐을 덜어내기는 커녕 잔뜩 더 주워담는 어리석음을 반복한다. 그래서 인생은 고해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인간으로 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알면서 어리석음을 또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이 몸 가면 언제 또 기약할 것인가' 원효대사의 말씀이 지금도 마음에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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