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기행 저 계곡물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세요

by lawyergo

"저 물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세요."

숲길을 같이 산책하던 도반같은 분이 계곡물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홀연히 물었다.

안그래도 무심히 흐르는 물을 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만일 저 물에도 마음이 있다면 희노애락이 있겠구나, 윗물이 순식간에 아랫물 되듯 세월이 순간이구나, 저 계곡물의 시원은 알 수 있는데 마음의 근원은 어딜까? 라는 상념에 잠기곤 하였다.

"저 계곡물의 시원을 알 수 있는데 우리 마음의 근원은 알기 힘드네요."

라고 대답하고 "어떤 생각이 드세요." 라고 도반에게 되물었다.

"너희들은 뭐가 급해서 그리 바쁘게 가노."

단순한 생각이라면서 말하기 꺼려하였다.

도반은 오대산에 5년째 머물고 있다. 암 진단을 받고 현재 치유 중인데 가족들은 살아있기만 한다면 어디에 있든 상관하지 않는다 하고 애들도 다 커서 선택하였다고 한다.

암진단 받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 생각 안 들었어요.

서글프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진단 받고 치료받을 때는 그런 생각은 안 들죠. 치료가 끝나고 보니까 내 물건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나 없어도 편히 살라고 정리를 시작했죠. 일단 옷을 다 없앴죠. 가구도 편한 걸로 다 바꿨죠. 그러니까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더라고요. 근데 요즘 느끼는 게 내가 없어도 다들 편하게 살겠구나라고 생각이 드니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좀 서운한 느낌이 들어요. 우리 애들도 엄마가 다 나은 줄로 알거든요. 사실은 고통이 많지만 꿀꿀한 이야기는 안하죠. 애들도 다 안정을 찾고 편해지니까 고통이 있다는 것을 굳이 말할 필요가 없죠. 그리고 항상 좋은 이미지로 남고 싶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는 안 하죠.

인생이 서럽다는 그런 생각은 안 들었어요?

전혀요. 암환자들이 단계가 있다고 하대요. 처음에는 화가 나서 이런 고통이 왜 나한테만 오냐고 원망하다가 어쩔수 없이 받아들이면서 나중에는 평온해지는 단계를 거친대요. 근데 저는 그러지 않았어요. 처음부터 제가 받아야 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누구도 원망해 본 적이 없어요.

고통의 단계를 뛰어넘었네요?

제가 불자잖아요.내 업의 대가다 그렇게 생각했죠. 그 어느 누구도 원망 안 했죠. 사람들이 그래요. 내가 느낄 때 비꼬는 말인 것 같은데 진심반 농담반으로 '도인 다 됐네' '도 다 텄네'라고 말하는데 그게 아니고 마음을 비우니까 그렇게 되대요. 그동안 했던 일상의 모든 행위가 시시해 보인 거에요. 인생관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그건 겪어보지 않으면 아무리 말 해줘도 안바뀌어요. 어차피 내가 받아야 할 것은 언젠가는 오게 돼 있으니까 좀 빨리 왔다 이렇게 받아들이는 거죠. 평생 10원 한 장 안 벌어 보고 남편의 보호를 받고 살았는데 원망을 어떻게 하겠어요. 내 업에서 오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좋은 말로 말하면 업이고 그냥 팔자죠. 내가 재벌은 아니지만 19살때 결혼했던 남편이 항시 애틋한 시선으로 나를 위해주고 그냥 주위 사람들이 나를 부러워 할만한 삶을 살았는데 암을 두 번이나 진단받았을 때는 그렇다 봐야죠.

두 번이나 암 진단을 받으셨어요?

네. 지금은 재발이죠. 11년 전 43살 때 암 진단을 받았죠. 그때부터 살림에서 손을 놨죠 결혼을 빨리 해서 애들이 다 커서 암 수술 하는 사실을 전혀 알리지 않았죠. 어떤게 정답인지는 모르지만 결혼한 딸은 지금도 그걸 마음 아파하고 눈물을 글썽거려요.

도반에게 내가 겪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경남 산청 심원사 설화를 이야기 해줬다. 업이 너무 두터워 엄청나게 희소한 확률로 설사 인간으로 태어나도 비천한 삶을 세 번이나 살아야 했는데 마음을 순수하게 쓴 복을 받아 금생에 그 업을 다 받고 다음 생에선 귀한 신분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내가느낀 주제는 '받아야 할 고통은 피할 수 없다.' '달게 받아야 할뿐, 단지 젊어서 힘이 있을 때 한번에 다 받는 게 좋다.'라는 거다. 설화 이야기가 끝나자 마자 도반도 '고통을 한번에 다 받았네요' 금새 알아챘다. 보는 관점이 동일했다. 그래서 도반인 거다. 아픔이 있어야 성숙한다는 말처럼 이 설화 이야기에 의외로 많은 이들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만큼 아픔이 있다는 의미다. 나도 30대 초반 힘든 시절에 이 설화 이야기에 '아! 부처님이 엄청 나를 사랑하는구나'라고 느꼈다. 어차피 고통의 총량은 피할 수 없다면 젊었을 때 미리 다 받는 게 최선의 복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한순간에 불만스런 인생이 복된 인생으로 바뀌는 경험을 하였다. 내 인생의 큰 계기가 되었던 소중한 발견이었다.

*도반에게 이 글을 드렸더니 감동먹었다고 말씀하신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했나 싶었는데 누가 이렇게 관심가져주느냐고 말씀하신다. 단순히 캐묻는 게 아니라 공감이 큰 배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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