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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wyergo Oct 13. 2019

절집기행 서문

조세전문변호사 고성춘

절집기행 서문

세상은 참고 견디는 과정이다. 견뎌야만이 얻는다. 그 과정이 지고지난(至高至難), 지극히 높고 지극히 어렵다 해도 견뎌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얻을 게 없다. 얻기도 전에 산통 다 깨버린다. 그런 어리석음을 여러번 반복해왔다. 심사숙고하지 못하고 욱하고 자기 기분 나쁜 것을 못참고 자기 고집만 부리는 어리석은 흔적들의 연속들이었지만 진리를 알고자 견뎌온 세월의 흔적들이었는지도 모른다.

뇌과학에서 말하듯이 뇌는 진리를 알고 있다고 한다. 긍정의 마인드를 가지고 생각하고 행동하면 몸 속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지 않아서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인한 질병을 맨 먼저 예방할 수 있다. 당뇨라든가 고혈압은 스트레스에 의해서 유발될 수 있다. 여하튼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게 모든 질병을 예방하는 방법이다. 그러려면 뭐든지 좋은 것만 보려하고 좋게만 생각할 필요가 있다. 나쁜 것을 보더라도 길가에 담배꽁초가 있다 하더라도 좋게만 생각하면 된다. 어! 한개밖에 없네. 어제보다 줄어들었네. 긍정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그러면 뇌는 항상 좋은 호르몬이 분비된다. 그러면 요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고 선을 하는 것과 동일하다. 해골의 물도 좋게 생각하고 먹으면 삼다수다. 그게 가장 좋은 거다.

내 생각에 업을 푼다고 하는 게 스트레스 호르몬 쌓인 것을 좋은 호르몬 엔돌핀 다이돌핀 등으로 바꿔주는 작업이다 생각한다. 건강을 신경써야 하니까 스트레스 호르몬들을 없애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그게 외형으로 절집기행이라든지 요가라든지 명상이라든지 나타날 수 있지만 세속에 있으면서도 지하철 안에서도 업을 푸는 것은 자기 스스로 지금 현재가 천국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곳 지금 내가 땅 짚고 서있는 지하철 안이라든지 광화문 앞이든지 화장실도 괜찮고 이게 바로 내 천국이다 생각하면 그게 업을 푸는 작업이 될 수 있다. 굳이 꼭 절집이나 경치 좋은 곳에 가서 일부러 자양소를 찾을 필요가 없다. 그것은 내 마음가짐에 달려 있지 않나 싶다. 궁극적으로는 부처님도 보리수 밑에서 진리를 깨달았다지만 보리수 아니더라도 부처님은 어디서든 도를 깨달았을 것 같다.

허공을 상대로 하면 내가 가는 곳마다 주인이다고 하였다. 뭐에 걸리지 않고 허공같이 걸리지 않고 맘을 쓰면 주인이 된다고 하였다. 무위(無爲)라는 것도 그와 비슷하지 않나 싶다. 뭐를 하고 있지만 분명히 에너지는 있지만 집착하지 않는 거다. 응무소주이생기심 (應無所住 而生其心) 마음껏 하지만 머무는 바 없다. 마음을 내도 집착하지 않는다. 일없는 사람이 마음이 가벼운 법이다. 그러니 돈도 부족함이 없다. 그런 팔자가 좋은 거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하지 못한다. 나를 사랑해야 남도 사랑할 줄 아는 것처럼...

이 경지를 세상사람들이 알면 좋겠고 알것 같아도 또 안 되고 알면서도 계속 안 되지만 안되더라도 해야된다. 그게 길이기 때문이다. 속인들은 외형으로라도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장소라든지 그걸 할 수 있는 스승이나 사람을 찾아야 한다. 부처님은 우리 자신에게 모든 게 다 갖춰져 있다고 하였다. 근데 그걸 장소나 사람에서 찾으려 하면 찾기 힘들다. 그러니 절집기행의 마지막 목적은 밖에서 찾지 말고 내 안에서 찾으라는 것이다. 스님들이 부적을 주는 이유도 속인들이 이 경지를 알지 못하니 이거라도 붙잡고 마음을 집중해라 그러면 집착이 없어지고 긍정심이 돋을 수 있기 때문에 도구나 방편으로 사용하라는 거다. 그 이치를 아는 사람은 그런 방편이 필요없는 거고 모르는 사람은 도구가 필요하다. 기도도 그런 것이다.

사람에 따라 수단이나 방편이 필요하다.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너가면 뗏목이 필요없다. 그걸 지고 가는 이가 있을까.

뇌는 이미 진리를 알고 있다. 사람은 태어나면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고귀한 존재다. 남을 비하시키고 내가 최고다는 자존심을 내세우는 게 아니다. 자기만 알고 자기만 최고라는 의미로 잘못 쓰이고 있지만 아주 고귀한 존재다는 의미만 알고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싶다. 법성원융무이상 (法性圓融無二相), 모든 존재가 한덩어리다고 하였다. 그 이치까지 안다는 게 참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이치를 어떤 계기로 깨달았느냐 그 과정을 말하고자 하는 게 절집기행이다. 과정없이 지식을 가지고 자기 말처럼 하면 앵무새다. 남을 속이는 거다. 절집기행을 쓰는 이유도 내가 그나마 여기까지 이해하게 된 계기가 다 경험에 의해서 체험으로 체득해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내가 경험한 경계까지라도 적어놓는 게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이다. 누구한테는 이 글이 수단이 될지도 모른다. 누구한테는 부적이 될 것이고 뗏목이 될 것이다. 절실한 사람에게는 다 도움이 될 것이다. 사람 찾아 삼만리 장소 찾아 삼만리 갈등을 겪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인생은 과정이 있다. 누구한테는 자선을 베푸는 것일 수 있다. 돈을 벌어 보시하지는 못해도 내가 겪은 과정을 말한다는 것은 법보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이 나라가 좋은 나라가 되고 더 좋은 세상을 위해서 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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