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洗心和親) 도반(道伴)
주역(周易)에 나오는 말이다. 벗과 진정한 우정을 얘기할 때 주로 쓰이지만, 합심(合心)해 난관을 극복하자고 할 때 자주 인용되기도 한다.
二人同心하니 其利斷金(기리단금)이요 同心之言은 其臭如蘭(기취여란)이라
두 사람이 마음을 함께 하니 그 예리함이 쇠도 자를 수 있고, 마음을 같이하는 말은 그 향기로움이 난초와도 같다.
여기에서 금(金)과 난(蘭)을 따와 금란지교(金蘭之交)라는 사자성어가 만들어졌다.
쇠도 자를 수 있는 기개와 절개의 관계이지만
또한 난초의 향기 같이 은은하고 고상(高尙)함이 묻어나는 우정을 설명한 말이다
예로부터 군자(君子)와 선비는 목숨을 걸고 의리를 지키는 것을 교우의 근본으로 여겼는데, 그 중에서도 금처럼 단단하고 변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드러내지도 않는 은근함을 이상적 모델로 삼았다.
마음이 통하여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관계가 행복이다.
몇시간을 함께 말해도 지루하지 않고 하나도 말하지 않는 것처럼 힘이 들지 않고
편안하고 이런 사이를 말한다.
핵심은 소통이 잘 된다는 것이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진영을 나눠서 애기하지도 않고 균형을 맞춰서 조화를 이룬다.
다름을 인정하고 같음을 강요하지 않는다.
자기 중심으로 보려하기 보다는 상대를 배려해주고
시비를 따지지 않는다. 옳고 그름에 억매이지 않고 관념에 매달리지도 않는다.
사상도 하나의 관념에 불과하고 유행에 불과하기때문에 그런 것에 매이지 않는 안목을 가졌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히지도 않고 말꼬리를 잡아 상대를 피곤하게 하지 않고 아상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와는 기린단금할 수 없다.
내가 너와 친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너는 기리단금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라
너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뼈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 찾기가 하늘에 별따기이지만
마음으로 기도하고 찾으면
그런 사람을 얻을 것이다.
부부와는 틀리다.
부부끼리는 기리단금이 될 수 없다.
기리단금 사이에는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해도 허물이 없는 데 반해
부부사이는 싸움이 될 수 있다.
부부사이는 늘 존경하고 예의를 지키는 게 연속이 되어야만 평탄한 데 반하여
기리단금 사이는 허물없이 허심탄회 없이 이야기해도
단점을 애기하고 아프고 슬픈 마음을 다 애기해도
우정어린 기리단금은 상대를 이해하고 포옹할 수 있고
잘못된 점은 야단을 쳐서 바르게 애기할 수 있는데 부부관계는 아니다. 부부관계일 뿐이다.
부부사이는 깊이 들어가다 보면 상처가 돼서 오래가지 못하니 기리단금의 친구를 만나라.
한 사람이라도 만나면 그 사람이 너의 허물을 덮어줄 수 있고 너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늘 너를 보담아줄 것이다. 너가 평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기리단금의 사람이다.
인생사는 데 기리단금의 사람이 부부보다 더 가깝다.
기리단금의 관계는 남녀이상의 관계다.
그런데 그런 사람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아버지에게 그런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도 그런 사람 만나게 해달라고 늘 기도했다고 한다.
아버지 친구는 아버지에게 언제나 바르게 말해주곤 하였다고 한다.
도반
불교에서의 도반이라는 게 바로 그런 의미이다.
‘같은 길을 서로 도우면서 함께 가는 좋은 벗’이란 뜻이다
여기서의 길은 구도의 길이며 그 길은 깨달음의 길을 의미한다.
도반은 단순히 기쁨과 슬픔, 고통과 좌절을 함께 나누는 차원 이상이다.
서로에게 상대가 선지식이 되는 것이다.
언제든지 반면교사가 될 수 있는 역활을 해준다.
도반을 통해서 내가 깨닫고 깨달음을 서로 공유하고 서로 실천하고 따뜻함과 포근함을 나눈다.
“좋은 도반을 만났다는 것은 공부의 모든 것을 이룬 것과 같다.”는 부처님의 말씀처럼 수행하는 이에게 도반은 더없이 소중하다.
부처님께서도 끊임없이 도반과 대화를 나누며 일깨워주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삶의 향기를 주고받는 관계라면 남녀노소 종교를 뛰어넘어 얼마든지 도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말같이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이것은 그야말로 인연법이기 때문에 단순히 관념으로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인이 저 멀리 있는 게 아니고 바로 내 옆에 있는 것인데 사람이 사람을 몰라보니까 항시 저 멀리서 하는 우를 범한다. 이 세상 그 무엇 하나도 도반 아닌 것이 없다고 한다.
핵심은 자신의 안목이다. 안목이 높아야 도반도 얻는다. 자신이 상대의 도반이 될 정도가 되어야 도반이 나타나는 것이다.
세심화친(洗心和親)
세심화친이란,
마음의 오해와 미움을 씻어내고
서로 사이좋게 유대관계를 지속한다는 의미입니다.
영적인 대화가 좋은 것 아닌가 싶다.
서로가 무의식 중에 내재된 업의 충돌이 많이 일어난다.
삶이란 항상 부대끼는 과정인데
한순간의 말꼬리 하나가 서로의 사이를 영원히 끝내게 하기도 한다.
부딪치지 않고 항상 원만하게 지내는 것도 어렵다.
어찌보면 부딪치지 지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도인과 범부의 차이는 부딪치는 것을 두려워 하는 게 아니고
단지 화를 내도 그 생각을 몸에다 오래 담고 있지 않다는 차이일 뿐이다.
그래서 사람이라는 게 냉정하고 차가운 기운을 몸에 담고 있지 말고
따뜻하고 포근한 기운을 간직하라는 의미가 이래서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기분나쁠 때마다 가위로 탁탁 자르듯이 사람의 인연도 탁탁 자르다보면
그 대가는 고통스러울 뿐이다.
인연이 억지로 자른다해서 잘라지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땜질이라는 말처럼 겪어야 할 사건은 겪기 마련이고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날 수밖에 없다.
만나서 원한이 되기 보다는 승화를 하는 관계가 좋은 것이다.
그 선택은 본인에게 달려있는 거다.
싹둑 자르는 습을 발휘할 수록 인간관계는 더 고립되고 적적해진다.
그 대가는 고통이다.
그래서 마음을 서로 통할 수 있도록 자신이 마음을 닦을 필요가 있다.
항상 세상을 논하고 사람을 분석해봐야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지 못하는 이들은
사람들 속에서 항상 부대끼고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자기 마음을 씻어내야만이 화목하고 친하게 지낼 수 있다는 세심화친의 의미가 그래서 중요하다.
조선시대 연암 박지원의 '황금대기(黃金臺記)'에 나오는 얘기다.
도둑 셋이 무덤을 도굴해 황금을 훔쳤다. 축배를 들기로 해서, 한 놈이 술을 사러 갔다. 그는 오다가 술에 독을 탔다. 혼자 다 차지할 속셈이었다. 그가 도착하자 두 놈이 다짜고짜 벌떡 일어나 그를 죽였다. 그새 둘이 나눠 갖기로 합의를 보았던 것이다. 둘은 기뻐서 독이 든 술을 나눠 마시고 죽었다. 황금은 길 가던 사람의 차지가 되었다.
연암은 다"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면 그 예리함이 쇠도 끊는다(二人同心, 其利斷金)." 는 '주역'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두 사람이 한마음이 되면 그 이로움이 황금을 나눠 갖는다'는 라고 이익 앞에 무너지는 우정의 결말을 말하였다.
연암은 이렇게 글을 맺었다고 한다. "까닭 없이 갑작스레 황금이 생기면 우레처럼 놀라고, 귀신인 듯 무서워할 일이다. 길을 가다가 풀뱀과 만나면 머리카락이 쭈뼛하여 멈춰 서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다."
기리단금의 관계를 원하고자 한다면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항상 마음을 닦을 필요가 있다.
마음 밖에서 구하는 것들은 다 허망하다고 하였다.
돈이나 지위 명예 등 눈에 보이는 이런 이해타산에 따라 의리와 정분을 여반장(如反掌)처럼 하는 세태에 금란지교와 '이인동심 기리단금'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