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wyergo Dec 19. 2018

[국세청에서의 5년] 29 옆에 사람들이 그러던데요

조세전문변호사 고성춘

갑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젊어서 열심히 일해서 사업을 크게 일군 사람이다. 아내를 만나서 아들·딸을 낳고 행복한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시점부터 젊은 아내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외국에 와서 열심히 일한 결과 먹고 살게 되다 보니 이제는 아내의 큰 씀씀이가 의심이 되었다. 특히 아들의 얼굴이 자신과 닮지 않다는 점에 더욱 더 의심이 갔다. 아내가 다른 남자와 연분을 맺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의심을 하였다. 그러나 친자확인을 해본 결과 자기 자식인 것은 확실하였다. 그래도 아내 외도에 대한 의심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아내가 교회를 간다고 길을 나서면 몰래 미행도 해봤다. 한국에 갔다 오기만 하면 카드 결제금액이 커지는 게 분명 애인을 만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꼬리를 잡지는 못했다. 그럴 때마다 아내에게 들켜서 아내가 역정을 내면 오히려 성질을 부리곤 하였다. 그것도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욕설을 하고 폭행을 하여 아내의 이를 부러뜨리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한국대사의 부인 및 영사부부가 입회한 자리에서 앞으로는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각서를 쓰기도 했지만 그 후로도 폭행이 계속되었다. 결국 아내는 귀국하여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하였다. 8년 전 사랑하나 믿고 멀고 먼 이국땅에 가서 남편을 도와 열심히 일하며 청춘을 보낸 결과가 결국 이런 꼴이 되었다. 물질적으로는 누구 부럽지 않게 크게 사업을 일궜지만 부부생활은 마음대로 되지않았다. 이에 당황한 갑은 다시는 의심과 폭행 및 폭언을 하지 않겠다면서 아내의 용서를 구하였고 아내는 순진하게 이를 믿고 소를 취하해줬다. 사실은 자식들을 위해서 속아줬을 뿐이었다.
그 후 부부는 새출발하는 마음으로 다른 나라로 이주하여 1년 3개월 정도
생활하였다. 그러나 아내를 괴롭히는 짓은 여전하였다. 어느 날, 갑은 교회에 간 아내를 미행하여 따라갔다가 이에 항의한 아내를 폭행한 일로 그 곳 나라에서 형사 기소되었으나, 3일 만에 방면되어 형사처벌을 피해 국내로 들어와버렸다. 그리고 아내에게 생활비와 학비를 주지 않았다. 그 결과 아내는 월세를 내지 못하여 이주당시 임차한 집에서 나와
생활보호대상자를 위한 임대아파트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아내는 더 이상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힘들다 생각하고 갑을 상대로 다시 이혼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이제는 예전의 아내가 아니었다. 그녀의 결심은 이미 되돌릴 수 없었다. 법원은 갑이 아내에게 위자료 5,000만 원과 재산분할로 5억 원을, 양육비로 자녀들이 성년에 이르기 전날까지 월 40만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을 하였다.

한편, 국내에서 갑은 잠실 재건축 아파트를 양도해놓고도 세금을 내지 않고 있었다. 그러자 과세관청은 갑이 이태원에 소유하고 있는 빌라를 압류하였는데 어느 날 갑은 세무서로 직접 찾아와 법원에 2억 원을 공탁해 논 돈이 있으니 그 돈도 압류해달라고 요구하였다. 아내가 이혼소송을 하면서 이태원빌라를 가압류한 거를 취소해달라고 담보공탁으로 법원에 한 해방공탁금이었다.

세무서장은 갑의 요청대로 공탁금에 대하여도 압류를 하였다. 그 후 아내는 가압류를 본압류로 이전하는 압류명령 및 추심명령을 받아 추심절차에 착수하였고, 세무서장이 한 압류와의 경합으로 공탁금 배당절차가 진행되었다. 배당표가 작성되었는데 세무서가 1순위, 아내는 2순위였다. 그러자 아내는 빌라압류로 세금을 충분히 충당할 수 있음에도 공탁금까지 압류한 것은 초과압류라는 이유로 배당이의의 소를 제기하는 한편, 이태원 빌라에 대한 강제경매신청을 하여 경매개시결정이 있었고 잔금지급기일이 지정되었다. 갑의 꼼수가 통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 처해있던 갑이 어느날 불쑥 내방에 들어왔다. “누구세요?‘”
낯선 사람의 출입에 당황하였다. 그가 외판원인 줄 알았다. 그가 말했다. “급해서 그럽니다.” 그때까지도 그가 무슨 일로 왔는지를 몰랐다. “누굴 찾아왔습니까?” “민원인입니다.” 법무과는 민원을 내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직원을 연결해 주려고 수화기를 들었다. 그러자 그는 법무과 에서 수행하는 배당이의 소송사건과 관련해서 왔다고 말했다.
그가 찾아 온 이유는 간단하였다. 공탁금에 대한 세무서 압류를 해제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2순위인 아내가 공탁금을 배당받게 되고 그러면 아내가 이태원 빌라 경매를 취하해준다는 것이다.
법무과 소송수행자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공탁금에 대한 압류해제를 하게 되면 배당표가 다시 작성되어 1순위인 세무서는 배당을 받지 않게 되고 2순위인 아내가 배당을 받게 된다고 하였다. 압류당시보다 시가가 상승하여 빌라 압류만으로도 충분히 세금에 충당할 수 있다는 게 근거였다. 그러기에 세무서에 공탁금에 대한 압류를 해제해 줄 것을 요청하는 민원을 내라고 하였고, 세무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판단이었다.
이미 배당표가 작성된 이상 배당포기나 경매취하는 되지 않는다. 따라서 세무서가 압류해제 해준다 해서 1순위로 배당받은 배당의 효력이 소급해서 소멸되는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소송수행자에게 판단근거를 물어보니 법원 경매계에 물어봤다고 하였다. 세무서가 압류해제하면 다시 배당표가 작성된다고 말하였다. ‘그게 아닌데…’
아무튼 다음 날 정확한 판단을 받아보자고 하고 확인해보니 소송수행자의 판단은 틀렸다. 직원들이 통상 하는 말이 있다. ‘누구에게 물어보니까 그런던데요’ ‘옆에 사람들이 그런던데요’
세무공무원들이 세법을 떠나 다른 사람 말에 의존하면서 물어물어 행정을 하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모르면 물어볼 수 있지만 법리를 떠나 만일 옆의 사람들이 잘못된 대답을 해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실제로 물어보는 사람도 사건 전체를 정확하게 분석하여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목적의식을 가지고 대충 잔가지 정도만 물어볼 뿐이다. 
그런 이들의 공통적인 특성이 있다. “내 의견이 맞습니다.”
결재하면서 '아! 그러세요'라고 계속 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 후로는 불만이 쌓이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솔직히 압류해제를 해준다는 것은 국세청에선 극히 드문 일이다. 구제마인드가 철철 넘쳐도 될까 말까하는 일이다. 그 소송수행자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도 유독 그 사건에는 구제마인드가 넘쳤다. 눈 딱 감고 그렇게 하세요 하면 되겠지만 공정하게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법무과장의 책무를 저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단지 지혜가 부족했지 않나 싶다. 아 다르고 어 다른데.

매거진의 이전글 [국세청에서의 5년] 28 제3자와 당사자의 차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