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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wyergo Dec 23. 2018

[국세청에서의 5년] 30 부담부증여 사건으로 싸우다

조세전문변호사 고성춘

[국세청에서의 5년] 30 부담부증여 사건으로 대판 싸우다


2005.12.12. 오후4시쯤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사송으로 우편들이 배달되었다. 내무를 보는 직원이 내 우편물을 책상에 놓고 갔다. 그런데 우편물 중 발신인은 없고 수신인만 적혀있는 봉투하나가 보였다. 행정봉투에 얇은 편지지가 담겨있었다.


문을 열고나가는 내무에게 물었다.


“이게 뭡니까?”


“저도 모르겠습니다.”


이상하다는 정도로 의문을 남기고 선고결과보고를 하러 들어온 직원의 결재를 마저 하였다. 그러고 나서 편지봉투를 뜯어보았다.


A4 용지 한 장에 컴퓨터로 쓴 글씨가 보였다.


글을 한줄 한줄 읽으면서 보통 편지가 아니다는 생각이 절로 들 수밖에 없었다.


내용은 ‘이제 당신은 그만 국세청에서 나가라’는 식의 칼날 섞인 글들이었다. 구체적 내용을 인용하기에는 수준이 너무 떨어지기 때문에 생략하도록 한다. 그해는 서울지방국세청 법무과장 4년차로 들어서는 무렵이다 보니 직원의 결재에 쉽게 끌려다니지는 안했다. 그러니 자기영역이 줄어들면서 점점 내 결재에 엄청난 불만을 가진 사람의 소행으로 보였다.


글을 다 읽고 난 후 느낌은 별 무덤덤했다.


마음의 파장이 일지 않았다. 출렁거릴 일이 아니었다. 이미 한번 해코지를 당했기 때문이다.


 6급 직원 한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내 방에 들어와


“도대체 결재 안해주는 이유가 뭡니까?” 라고 따졌다.


황당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얼른 이해가 안됐다. 그리고 더 가관인 것은 결재를 하든 안하든 과장영역인데 직원이 과장보고 결재 안 해준다고 따지러왔다는 그 자체가 매우 불쾌했다. 더구나 감기까지 걸려서 한 달이상 콜록콜록 하고 있었다. ‘이 사람이 과장을 무슨 호구로 보나’하는 생각에 그의 손을 잡고 내 방을 나갔다. 그리고 멱살을 잡고 그에게 큰소리를 쳤다. 사무실분위기가 썰렁할 수밖에 없었다. 법무과장 5년 동안 매너 없는 직원들이 있어도 화를 내지 않고 왠만하면 피했지만 그 경우는 나도 모르게 반응을 했다. 그도 놀랐을 것이다. 자기 멱살까지 잡고 화를 낼 줄 몰랐을 것이다.


그가 진짜로 기분나빠한 이유가 있었다. 자기가 맡은 이의신청 사건  때문이었다.  논란의 내용은 간단하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1억짜리 주택을 증여하면서 '아들아! 내 주택을 너에게 줄테니 대신 내 주택을 다른 사람에게 임대해주고 보증금 5천만원  받아서 나에게 주라.' 는 조건을 단 증여가 부담부증여가 되는지 아니면 그냥 증여인지 여부였다.


 아들은 세무서에 부담부증여로 신고하면서 주택가액 1억에서 5천만원을 뺀 5천만원만 증여받았다고 하였다. 그러자 세무서는 부담부증여가 아니므로 증여세 과세가액을 1억으로 하여 계산한 증여세를 결정고지하였다. 결국 아들은 법무과에 이의신청을 하였다.


부담부증여는 수증자가 증여자의 채무를 인수해야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사건은 아들이 증여자인 어머니의 채무를 인수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부담부증여가 되지 않는다.


별 문제없이  처분청의 처분이 정당한 것으로 판단하고 결재를 하였고 법무과 의견은 기각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뜻밖에도 이의신청심의위원회에서 발생하였다. 외부위원 두 사람이 이의를 제기하였다.


“실제로 증여한 가액은 5000만원밖에 되는 것 아닙니까?”


옆자리에 앉아 있던 위원도 거들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너무 당연한 거라  이게 왜 문제되는지 의아했다. 직원과 담당계장도 위원들 의견에 동의하였다. 계장은 특히 위원들 생각이 좋은 아이디어라고 말하였다.


세법이 무슨 아이디어로 해석되는지 의아했다. 과세처분을 취소되는 것을 일단 막고 다음 달에 재상정하는 것에 동의하였다.


그 이후 갈등의 씨앗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본청 법규과도 부담부증여가 아닌 것으로 의견을 냈다.

결국 담당자에게 인용의 근거가 있다면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 아닌가. 그는 끝끝내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1안 2안으로 해서 내 의견과 담당자의견이 별개로 해서 위원회에 재상정되었다. 지금까지 이런 일이 없었다. 법무과 의견도 달지 말라고 하는 마당에 황당했지만 끝끝내 과세를 취소시키겠다는  집착이 느껴졌다. 후문에는 그의 지인이 그 사건 세무사라는 소문이 있었다. 눈 감고 결재하는 게 신상에 편하다고 다른 과의 과장이 조언을 해줬다.


그런데 일이 꼬일려고 해서 그런지 그 다음달 이의신청심의위원회 회의를 진행하는 도중에 청장님께 중요사건보고를 급히 해야 할 일이 생겨서 1시간 정도 자리를 비운 사이에  세금을 취소하는 인용결정이 나버렸다.


고민에 빠졌다.


눈 한번 꼭 감고 그냥 넘어가면 되는 일이었다. 사실 그동안 이런 일이 한두 번 이었겠는가.


며칠 동안 고민을 한 끝에 다시 재심의를 하기로 결심하였다. 인용결정이 나도 청장님 결재를 받으면 다시 위원회에 재심의를 요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왠지 기분이 이상했다. 이의신청결정문이 혹 납세자에게 발송되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얼른 전화로 확인해봤다. 황당했다. 이의신청결정문이 이미 발송되었다는 것이다.


“아니 청장님 결재가 안떨어졌는데 어떻게 결정문이 발송이 됩니까?”


그의 변병은 간단했다.


이 달에는 청장님까지 결재할 사안이 없기 때문에 국장님결재만 받으면 발송해도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콩가루 집안이 따로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직 결정문들이 우편함을 떠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간신히 발송을 보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청장님 결재를 받았다.


이 사건 하나 때문에 그 직원과 갈등의 골이 증폭되었다. 그 는 자존심이 무척 상했던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그와 다툰 이후로 조직에 말이 말을 타고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직원 한 사람이 ‘어’라고 말하면 전달하는 과정에 ‘아’가 되었다가 ‘야’로 되어 결국엔 ‘이새끼’가 되기 마련이다.


조직생활을 하다보면 사람들 본능이 남을 칭찬하는데 상당히 인색하다는 점을 느끼게 된다. 사람들이 시기심이나 질투 이런 원초적 본능을 웬만한 인격자가 아니면 벗어나기 힘들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평생을 시기 질투만 하다 가는 느낌이다. 말이 어른이지 애들과 마음 쓰는 것은 틀리지가 않다는 생각이 가끔씩 들곤 한다. 남 흠잡는 말은 고속철보다 더 빠른 빛의 속도로 전파되기 마련이다.


직원이 37명이다 보니 과장 말 한마디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질 수밖에 없지만 이런 경우처럼 누가 만일 악의를 가지고 말을 퍼트리고 감찰에 투서를 하고 그러면 맥이 빠질 수밖에 없다.


5년 동안 여러 사람들을 대하다보니 느낀 게 하나 있다. 피해의식이 유달리 강한 사람이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돌아가신 당시 1계장이 술자리에서 한 말이 있다.


“인성이 안 된 놈은 끝끝내 안됩니다. 그런 사람은 포용하려 하지 마시고 다 내보내야 합니다.”


출근을 늦게 했다든지 누구만 편애한다든지 점심때 술 먹고 늦게 들어왔다든지 최근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감찰 등 할 수 있는 모든 곳에 투서가 들어간 모양이었다.


그런 이야기가 나돈다는 것을 국장님으로부터 전해 듣고 맥이 팍 풀렸다.


“참 dirty해도 더럽게 dirty하다”


너무 너무 추접하고 더러운 짓거리였다. 차라리 업무가지고 무슨 비판을 했다면 수긍이 갔을 것이다. 거물과 다투고 나면 후환이 있기 마련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런 식으로 비판하는 사람의 눈에도 업무가지고 장난치는 것은 보이지 않았는가 싶었다. 그런데 얼마나 한을 품었는지 소문의 강도가 예전사람들과는 조금 달라 보였다. 예전에도 국세청비리에 대해 글을 쓰고 있다고 투서한 직원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주위 사람들의 반응이 술렁거릴 정도였다. 더구나 개방직위 임기연장을 위해 심사를 하면서 이런 말들이 오고 간 것으로 들었다. 그리고 서울청 총무과장이 불러 조심스럽게 말하기를 출근을 늦게 한다고 말이 나왔다면서 유의해달라고 하였다.  마음이 크게 상할 수밖에 없었다. 새벽 5시에 출근해서 11시에 퇴근하는 것을 거의 1년 이상 할 때는 아무 말 없다가 감기 걸려 콜록콜록 하면서 병원 갔다 오는 며칠을 30분 정도 지각한 것을 가지고 마치 일부분이 전부를 왜곡하는 것 같았다.


꼬투리를 잡을게 그렇게도 없었는가 싶었다. 게다가 1계장에게만 살짝 말한 것을 다른 직원이 어떻게 아는가. 더구나 사무실이 여의도 별관이라서 회의 때문에 10월에 청으로 들어가는 횟수가 최소 14번은 넘었는데 직원들에게 일일이 과장 어디 가는 일정을 공시하고 다녀야 하는지 그 이야기를 퍼트린 직원 놈이 참 추접하고 더러워보였다. 어떻게 보면 정신병을 앓고 있는 환자인 것 같았다.


과장 PC를 훔쳐보지를 않나……


이제 그런 직원들이 자기들 힘으로 해보다가 법무과장 임기 연장을 못 막으니 스스로 나가라는 편지를 보낸 것 같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들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그들이 순응했던 관행에 내가 따르지 않으면  힘들었을 것이다.


난 지금도 생각한다.


우리나라 IMF 가 온 이유는 ‘원칙과 동떨어진 고착된 관행을 원칙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신입사원으로 들어왔을 때 선배가 가르쳤고 나중에 후배들에게 당연하게 가르쳐 온 게 사실은 규정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고 그것도 고착된 관행이었다는 것이 우리나라를 위기로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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