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쓰는 이유

하루종일 글을 쓰는 변호사가 퇴근 후 또 글을 쓰는 이유

by 박종현

오랫동안 나에게 글은 일이었다.

의뢰인의 자유와 재산을 지키는 데 쓰이는, 정확하고 날카로운 도구.

한 줄의 문장으로 누군가의 삶이 바뀌기도 했고,

한 단어의 선택이 소송의 방향을 결정하기도 했다.

그런 글은 프로페셔널한 긴장감과 책임을 필요로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렇게 많은 글을 쓰면서, 정작 나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구나.’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남을 지키는 글은 익숙했지만,

나를 지키는 글은 한 번도 써본 적 없다는 사실.

하루 종일 글을 쓰는 사람이 퇴근 후 다시 컴퓨터를 켜는 이유는

어쩌면 그때부터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글을 쓰는 일은 나에게 치유처럼 작용했다.

마음속 어딘가에 오래 쌓여 있던 것들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책상 위에 펼쳐놓는 느낌.


그동안 설명할 수도 없고, 부정할 수도 없었던 감정들이

문장으로 흘러나오면 기묘하게도 정돈되었다.

글은 나를 치유함으로써 결국 나를 지키는 도구였다.


돌아보면 지금의 나는

어린 시절 마음속에 그려놓았던 꿈들을 제법 많이 이뤘다.

그때는 이 정도쯤이면 행복이란 감정이 따라올 줄 알았다.

그러나 성공의 좌표에 도달한 뒤에도

마음 한구석의 불안과 공허함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도대체 왜 그럴까.

이 질문이 나를 붙잡았다.

그리고 그 답을 발견한 곳은,

다른 어떤 활동도 아닌 바로 글을 쓰는 과정이었다.


글을 쓰면 내 마음이 보였다.

평소에는 잡히지 않던 감정의 결이 느껴지고,

설명할 수 없었던 불안의 형태가 드러났다.


정확한 문장을 찾아가는 과정은

결국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었다.

그 질문에 답하려고 애쓰다 보면

마음이 묘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낮에 쓰는 글은 언제나 의뢰인을 위한 글이었다.

책임감, 긴장감, 분석, 논증.

그런 글은 내 직업의 일부이며, 나는 오랫동안 그런 글을 통해 살아왔다.


하지만 퇴근 후 쓰는 글은 전혀 달랐다.

오로지 나만을 위한 글이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도 아니고,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글도 아니었다.


그저 나를 이해하기 위해 쓰는 글.

내 마음의 구조를 확인하고, 흔들림을 읽어내고,

내 안의 어둡고 조용한 목소리를 듣기 위한 글이었다.


보통 사람의 가장 개인적인 기록이

오히려 가장 보편적인 통찰이 되기도 한다.

피아제가 자기 자녀의 성장 과정을 기록하다가

인간 발달의 보편적 구조를 발견했던 것처럼,

개별성 속에는 늘 보편성의 씨앗이 숨어 있다.


그 생각을 떠올린 뒤로

나는 나의 글에도 그런 가능성이 있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나를 분석하며 쓰는 글이지만

그 안에는 다른 사람의 마음과도 닿아 있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내가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

누군가에게도 조용한 위로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결국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자기 치유를 위한 글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닿을 수도 있다는 믿음.

내 마음이 가벼워지는 과정을 통해

누군가의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다는 희망.


나는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를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치유가

누군가에게도 스며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나를 지키기 위해 쓰는 글이

언젠가 조용한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기대며.


이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