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에 실패한 변호사가 받은 감사 인사
“변호사님, 저 출소했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어느 늦은 오후, 갑작스레 문자가 왔다.
이름만으로도 기억이 선명해지는 의뢰인이었다.
항소심까지 변호했지만 결국 실형을 막지 못했던 사람.
1심에서 법정구속이 되었고, 항소심에서도 형량은 줄지 않았다.
변호사 생활을 하다 보면 다양한 인사를 듣는다.
감사 인사를 받을 때도 있고, 예상보다 큰 불만을 돌려받을 때도 있다.
특히 구속 사건은 의뢰인과 가족의 감정이 가장 압축적으로 쏟아지는 영역이다.
실제 구속 여부가 애매한 사건일수록 억울함과 분노의 화살은
쉽게 변호인에게 향하기도 한다.
그래서였을까.
그가 출소 후까지 연락해 와 감사 인사를 남겼다는 사실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아직 그에게 해준 것이 없다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형을 막지 못한 변호사에게
굳이 출소 후에 “고맙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는 도대체 무엇이 고마웠던 걸까.
내가 그의 사건을 처음 맡았을 때,
그는 이미 오랜 시간 동안 비난과 실망 속에서 소모되어 있었다.
잘못을 인정하고 있었고, 주변의 충고 역시 이미 충분히 들은 듯했다.
누군가가 더 이상 그를 비난할 수 없을 만큼,
스스로를 가장 먼저, 가장 깊이 비난해온 흔적이 보였다.
나는 그의 잘못을 굳이 들추는 대신
그의 말을 끝까지 듣는 데 집중했다.
그가 스스로 말하기 어려워하는 감정과 상황을
법정에서 최대한 진솔하게 전달하려 했다.
돌이켜보면, 당시 그에게 필요한 것은
변호사가 아니라 ‘듣는 사람’ 이었는지도 모른다.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심리적 무게를 대신 풀어주는 사람.
나는 그를 통해
변호사라는 직업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변호사의 역할을
더 나은 의사결정과 판결을 위해 논리를 세우고 증거를 다루는 일,
완벽한 서면과 날카로운 변론을 준비하는 일로만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 사건은 다른 질문을 던졌다.
“의뢰인이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를 대신 말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변호사의 역할을 충분히 하는 것 아닌가.”
그가 가장 고마워한 것은
판결 결과가 아니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고,
자신이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법적인 언어로 전달해 준 것이지 않았을까.
이 사건은 흔히 말하는 성공 사례는 아니다.
형량을 줄이지도 못했고, 판결을 뒤집지도 못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오래 남아
내 업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다.
때로 변호사란
누군가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고
그가 하지 못하는 말을
법적인 언어로 대신 해주는 것만으로 충분할 수 있다는 것.
판결을 바꾸지 못한 변호사일지라도,
의뢰인의 삶 속의 어떤 지점에서는
충분히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
이 단순한 사실이
내가 이 일을 떠날 수 없고
진정으로 이 일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