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을 하면서 느끼는 양가적 감정
"그런 설명은 듣지 못했습니다" vs "저는 분명히 설명했습니다"
법정에서 가장 자주 듣는 대화다. 나는 지금까지 수많은 설명의무 소송을 맡아왔고, 환자 측 대리인으로서 의료진의 불충분한 설명을 문제 삼는 사건도 다수 수행해왔다.
판례는 명확하다. 의사는 치료의 필요성, 위험성, 대안 등을 충분히 설명해야 하고, 환자는 그 내용을 이해한 상태에서 동의해야 한다. 그 설명이 부족하면, 설령 시술이나 수술 자체가 교과서적으로 완벽했다 해도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때로는 의사의 책임을 묻는 주장을 한다. 그것이 변호사라는 직업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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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건을 파고들면 피어나는 이중적 감정
나는 변호사이기에 법리에 따라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채 시술을 진행한 의료진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진료 시간 3분에 쏟아지는 환자 수, 불완전한 의료정보에 노출된 환자들 사이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의료인의 현실도 생생하게 보인다.
의사는 설명했다. 환자는 이해하지 못했다. 둘 중 누가 더 잘못한 걸까.
이 질문 앞에서 나는 가끔 멈칫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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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건의 기억
한 사건에서 의사는 수술 전 리스크를 간략히 언급했고, 환자는 그저 "네"라고만 답했다. 하지만 결과가 좋지 않자 환자는 말했다.
"그게 그렇게 큰 문제일 줄 몰랐어요."
그럴 때면 나는 변호사로서 책임을 묻는 동시에 마음 한켠으로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건 의료인의 잘못이라기보단, 그 설명을 가능하게 하지 못한 시스템의 문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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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신뢰를 허락하지 않는 시스템
설명이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충분한 설명을 들은 환자만이 의사를 신뢰할 수 있고, 설령 좋지 않은 결과가 발생하더라도 분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의 진료 시스템은 그 어떤 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진료실 안에서 의사는 다음 환자를 걱정하고, 환자는 인터넷에서 들은 이야기로 불안을 키운다. 그 사이의 소통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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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의 피해자들
그래서 나는 이 일을 하면서도 늘 씁쓸하다. 설명을 못한 의사도, 설명을 듣지 못한 환자도, 결국은 시스템의 피해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나는 법정에서 의사의 설명의무 위반을 주장한다. 그것이 환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책임을 개인에게만 돌리는 방식이 과연 이 문제의 해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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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는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다
의료는 그 안에 불확실성과 인간의 감정이 함께 흐른다. 설명은 정보 전달이 아니라, 두려움에 대한 안내이자 믿음의 언어다.
나는 오늘도 소장을 쓰면서 이 두 사람을 함께 떠올린다. 지쳤을 의사와, 불안했던 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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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에서 변호사로 전업한 이유 중 하나도 이런 현실을 조금이라도 바꿔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이 일을 하면 할수록 개인의 책임을 묻는 것과 동시에, 그 개인들을 둘러싼 구조적 문제도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을 매일 깨닫는다.
의료시스템이 개혁되어, 의사는 환자 하나하나를 신경쓸 수 있고 환자도 의사를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