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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지연 사고에 대한 의료전문변호사의 생각

그리고 환자와 의사 생각의 간극

by 이일형 변호사

“그때 진단만 빨랐더라면…”
의료소송을 시작하는 환자 측의 이야기는 대부분 이렇게 시작된다.

초기 증상을 무시당했다는 감정,
시간이 지연되는 사이 병이 악화됐다는 억울함,
그리고 뒤늦게 손에 쥐게 된
진단서 한 장의 무게.

반면, 의사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당시에는 그렇게까지 의심할 만한 정황이 없었습니다.”
“진단은 단번에 되는 게 아니라, 과정입니다.”
그 말도 틀린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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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지연 사건은 의료소송 중에서도 쉬운 사건은 아니다.
즉 진단지연이 과실이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의학적으로는 판단 가능한 수준이었는지,
그 시점에서 추가 검사를 하지 않은 것이 ‘과실’에 해당하는지,
관련 의학적 레퍼런스를 토대로 정확히 따져 보아야 하는 사건인 것이다.

하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몸이 아픈데 아무도 그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았다는 기억이 훨씬 또렷하다.
“계속 이상하다고 말했는데 그냥 소화불량이라니까 믿었어요.”
“CT 찍어달라 했는데 필요 없다고 했어요.”
그 ‘설득되지 못한’ 시간이 곧 분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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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변호사로서 이 사건들을 맡으며 가장 자주 마주하는 건
‘정보의 비대칭’이 만든 간극이다.

환자는 의학을 모른다.
그러니 자신의 몸 상태를 언어로 정확히 표현하기 어렵다.
의사는 환자의 말을 듣지만,
그 속에 감춰진 위험 신호까지 읽어내기 위해선
시간과 직관과 공감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의 시스템은
그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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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건에선, 어떤 남성이
‘위장장애’로 진단받고 귀가했다.
그런데 두달만에 진단은 번복되었고

충격적이게도 위암말기라는 소견을 받게 됐다.
의무기록에는 “환자 별다른 이상소견 없음”이라는 문장이 반복됐다.

그렇지만 어떤 사건에서는 의사가 억울할

사건도 많이 접한다.


의학에서는 비특이적 증상이라는 것이 있다.

예컨대 단순히 열이 반복되는데

암을 의심하고 MRI를 찍을 것을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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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지연 소송은 결국 책임을 묻는 소송이 아니라,
고통을 이해받고 싶다는 싸움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법은 감정이 아닌 증거를 본다.
그래서 환자는 다시 한 번 상처받고,
의사는 억울함을 느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이건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단,
이해가 엇갈린 채 흘러가는 시스템의 실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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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는 과학이지만,
사람을 다루는 일이다.
진단은 ‘맞히는’ 게 아니라,
경청하는 것이기도 하다.

환자는 자신의 고통이 '오진'당한 것이 아니라
'무시'당했다고 느낀다.
그 감정은 숫자나 수치로는 환산되지 않지만,
의료분쟁의 가장 깊은 뿌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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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변호사다.
책임을 따지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의사의 한계도,
환자의 절망도,
둘 다 이해하게 된 사람이다.

진단 지연 사건은 법적으로는 ‘입증’의 문제지만,
사실은 ‘이해되지 못한 고통’의 다른 이름이다.


먹고 살아야 하는 변호사이지만

나는 의사가 억울한 사건에서는 의뢰인에게

조심스럽게 내용을 설명하면서

소송을 하지 말것을 권유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환자의 이해받지 못한 데서 오는

고통을 대신 치유해주려고 내 나름은

노력하고 있다.


반면, 의사의 과실이 명백한

어떤 사건에서는 환자를 대신해

오진한 의사에게 분노를 대신 표해주고,

승소 판결을 통해 금전적으로나마

이들의 아픔을 치유해주기도 한다.

의료전문변호사의 일은 삭막하다.

그렇지만 이처럼 의사와 환자의

간극을 조금이라도 좁히는 것은 분명

보람이 있는 일이다.


그게 내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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