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 출신 변호사로서, 약사 직능에 대한 고민

by 이일형 변호사

약사 국가시험에 합격하던 날,
나는 생각보다 덤덤했다.
면허증을 받으면서도
‘이 자격이 어떤 사회적 책임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사실 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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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을 갈 때마다 가장 많이 들린 말은 안타깝게도

환자들이 하는
약 빨리 주세요”하는 이야기였다.

나는 늘 마음속으로 물었다.

“정말 이게 다일까?”
“약사는, 단지 전달자에 그치는 직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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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약국은 가지 않았고, 법정에 서게 되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여전히 ‘약사’라는 존재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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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가 된 후 나는
의약품 리베이트 사건,
의사-약사 갈등,
의약분업 제도 위반,
환자 부작용 소송 등
수많은 약사 직능 관련 사건을 다뤄왔다.

그 과정에서 자주 드는 감정은
‘답답함’과 ‘안타까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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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는 의약품에 대해
어느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는 전문가다.
하지만 사회는 그들을
‘판매자’ 혹은 ‘조제자’로만 인식한다.
심지어 약국 현장에서도,
‘설명하는 전문가’가 아니라
‘줄 서서 약을 내어주는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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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환자는 말했다.
바빠요. 약이나 빨리 주세요
그 말을 듣고 속이 쓰렸지만,
돌이켜보면 그렇게 보이게 만든 구조도 있다.

의사 중심의 진료 시스템,
서면 처방만으로 끝나는 복약지도,
환자-약사 간 대화 단절.
그리고 제도적으로 고립된 약사의 직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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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는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약이 왜 필요한지,
왜 복용 순서가 중요한지,
어떤 부작용이 우려되는지,
그 모든 설명을 통해 환자의 삶을 도와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설명할 시간도, 구조도, 권한도 부족하다.
그저 ‘처방에 따라 조제하는 기술직’처럼 다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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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로서 나는 때때로
약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사건을 마주한다.
리베이트를 받은 사례,
처방 없이 의약품을 판매한 사례,
설명 없이 고위험 약물을 조제한 사례.

그럴 때마다 내 마음 한켠은 아프다.
왜냐면 나는 약사가 얼마나 중요한 직업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 직능이 고립되고 위축되는 구조 속에 있다는 것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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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약사로서
면허증을 벽에 걸지는 않았지만,
법률가로서 약사의 존엄을 지키고 싶다.

약사란,
단지 약을 내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몸과 약 사이의, 가장 중요한 통역자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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