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아노 치는 변호사 Oct 22. 2015

뚜나

나를 사랑한 사람들, 내가 사랑한 사람들

‘이 메시지에 있는 링크를 눌러 보세요.’


아버지한테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아버지는 휴대폰으로 메일 확인, 음악감상, 인터넷 서핑을 하신다. 아버지 연세에 그 정도 하시기 힘들다 싶은데, 아버지를 뵐 때마다 스마트폰 활용도가 높아져있다.

아버지가 그렇게 기계에 밝지 않으셨으면 나도 내 소식을 전하는 것이 좀 막막했을 것이다.

어느 웹진에 기고한 원고를 보여 드리고 싶었다. 저작권 관련 글이라 아버지께는 생소하여 읽기 지루하실터였다. 안 읽으셔도 그만이다. 그저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딸이 이렇게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다. 사실, 부모외에 누구한테 이런 걸 자랑을 하겠는가.


그로부터 한참 후에 친정에 들렀다.

아버지는 그 글 이야기부터 하셨다. 잘 보았다고. 얼마전 텔레비전에서 마술하는 사람이 출연하여 마술에도 저작권이 인정되는지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던데 그 부분도 한 번 생각해 보라고. 아버지의 제안은 조심스럽고 따뜻했다. 아버지가 접하는 정보 중에서 단 한 자락이라도 내게 보탬이 되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셨던 흔적이 역력했다. 더욱이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을 부분이라 여기셨는지 상당히 자세하게 이야기를 전달해주셨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가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생각하면서 세상사를 바라보아 준다는 것.

내가 놓친 부분을 메워 주려고 애쓰는 존재가 있다는 것.

이 안온하고 든든한 느낌 때문에 내가 지금껏 버티고 살아왔지 싶다.


아버지는 늘 그러셨었다.

딸이 하는 일을 속속들이 알지 못해도 토를 달지 않고 믿어 주셨다. 그리고 딸과 함께 즐기셨다.

얼마 전에는 <뚜나>라는 노래를 다시 찾으셨다며 기뻐하셨다. 어릴 적 즐겨 불렀으나 기억이 희미해진 이 노래를 되찾기 위하여 인터넷을 찾아 헤매셨단다.

어렵사리 전체 가사를 확보한 아버지는 내 앞에서 노래를 반복해 부르셨고, 나는 열심히 채보를 했다. 드디어 완성된 악보 앞에서 아버지는 눈을 감고 나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하셨다.

칠순을 훌쩍 넘기셨지만 여전히 음정 하나 흔들리지 않는 미성의 테너. 반주자에겐 영광이다.


아버지의 음악에 대한 사랑은 늘 꾸준하고 풍요로왔다.

하지만 음악이든 또 다른 무엇이 되었든 주위의 염려를 살만큼 빠지거나 집착하는 법도 없었다.

엄하셨지만 합리적이셨고 본인이든 그 누구든 극단으로 몰고 가거나 힘들게 하는 분이 아니셨다.

아직도 책상 위에 놓인 이면지 더미에 미적분 그래프가 그려져 있는 걸 보면 아버지는 아버지의 지난 모든 일을즐기며 하셨음이 분명하다. 그 사실이 다른 가족 구성원을 무척이나 안도하게 만든다.

부모가 과거사에 회한을 품고 노년을 보내는 것 이상으로 자식의 가슴을 짓누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자식은 부모를 닮아가는 것이니 말이다.


아버지는 눈물도 참 없으셨다.

어떤 고통을 대면하더라도 감정을 눅잦히고 그 자리에 작은 유머를 얹고 지나가는 것이 사는 방식이라 생각하신 것 같다.

그런 분이 우시는 것을 난 두 번 보았다.

한 번은 교회의 장로님 한 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였고,

또 한 번은 둘째 딸이 항암치료를 중간에 끊어 버리고 식이요법하고 안간힘 써서 공부해 서울대에 합격했을 때였다.


그 둘째가 지금 이렇게 아버지에 대하여 애닯아 글을 쓰고 있단 걸 아시면 세 번째 눈물을 흘리실까.

아니다.

<뚜나> 노래 끝 부분이 잘 안 된다며 다시 한 번 반주 좀 해 보라고, 이 노래는 끝이 멋지게 마무리 되어야 제 맛이라며 날 채근하실 거다.


내가 삶에 지쳐 구덩이 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그래서 알록달록 색실을 손에 쥐고 뜨개질을 하며 마음을 달래고 있을 때 아버지는 그러셨다.

넌 글을 써야 하는데 왜 가기바리(코바늘의 일본어)를 쥐고 있냐. 하긴, 뜨개질이 소재가 되는 글을 쓰게 될 날도 있으니 그걸 대비하는 거겠지.



방금 아버지한테서 카카오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뚜나>의 정확한 가사를 보내달라는 나의 요청에 가사와 함께 노래까지 녹음하여 전송해 주셨다. 모르긴해도, 중년의 딸에게 음성메세지로 노래를 보내는 친정 아버지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음성에 맞추어 반주하던 ‘아 목동아’와 ‘꿈길에서’에 이어, 내가 앞으로도 두고두고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수없이 반주하게 될 곡, <뚜나>의 노랫말을 여기에 옮긴다.


오 내 나이 어릴 때 내 입은 가볍고

오 바다 위에 떠돌기 나 참 원했네

지금 남천 바라 볼 때에 늘 들리는 것은

그 작은 뚜나 나를 부른다

아아아아아아 그 작은 별이 나를 부른다

아- 아- 아-



이름만 불러도 까닭없이 눈물나는 이름, 아빠.

여기에 이렇게 적고 나서야 고단한 하루를 접을 수 있겠어서 예전에 기고했던 글을 다듬어 오랜만에 브런치 발행.

.

작가의 이전글 잘 말아줘, 잘 눌러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