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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변잡기 Jun 13. 2024

변호사라는 업, 현대 사회의 아이러니

사계절 내내 쳇바퀴 도는 다람쥐처럼, 나는 오늘도 출장 가방을 든다. 


8년 넘게 변호사로 살아오며 이 가방은 어느덧 나의 분신이 되었다. 


서울 사무실에서의 나날은 잠시 접어두고, 부산행 KTX에 몸을 싣는다. 


창밖으로 스쳐가는 낯선 풍경에 눈을 뗄 새 없이, 떠오르는 건 오늘 맡은 사건뿐이다.     


변호사라는 업에 종사한 지 어언 8년. 


세월의 무게만큼 내 어깨도 무거워졌다. 


의뢰인들의 희비곡절 앞에서 냉철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때론 감정의 동요를 피할 수 없다. 

부산법원종합청사

그들의 인생이 걸린 법정에 들어설 때마다 등줄기에선 식은땀이 흐른다. 


그 순간만큼은 내 전문성과 논리가 그들에겐 유일한 희망이 된다.     


그렇게 치열하게 준비한 변론이, 때론 1-2분 만에 마무리 되기도 한다. 


쓴웃음을 짓는 의뢰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 모든 과정이 무의미하다는 회의감에 빠질 때도 있다. 


하지만 이내 다음 사건을 위해 또 다른 행선지로 향한다. 


어제의 부산은 오늘의 정읍이 되고, 내일의 제주가 된다.      


공항과 기차역은 이제 제2의 사무실이 되었다. 

부산역에서 바라본 풍경

이동의 틈틈이 펼쳐보는 두꺼운 사건 기록들. 


그 모든 서류상의 글자들이 선명한 얼굴들로 다가온다. 


이혼 소송 중인 한 여성, 부도 위기의 한 중소기업 사장, 성범죄로 재판 중인 한 청년... 


그들 모두가 나의 어깨를 짓누른다.




하지만 그 무게를 감당하는 건 변호사로서 나의 숙명이자 존재 이유다. 


의뢰인들의 절박한 사연 속에서, 나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마주한다. 


때론 자본과 권력의 논리에 굴복해야 할 때도 있지만, 그럴수록 진실과 정의의 편에 서고자 몸부림친다. 


이 모든 여정은 단순히 직업적 의무를 넘어, 내 존재의 무게를 깨닫게 하는 일이기에.     


장돌뱅이를 연상케 하는 출장의 연속. 


한편으론 이것이 사회 구조적 모순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찰나의 법정을 위해 거리와 시간을 초월해야 하는 부조리. 


하지만 변호사로서 나에겐 그마저도 주어진 삶의 한 부분이다. 


길 위에 선 채 부단히 싸워 나가는 것, 그것이 내가 택한 변호사로서의 숙명이니까.     


의뢰인의 손을 맞잡고 위로의 말을 건네는 순간, 나는 내 존재의 이유를 깨닫는다. 


아무리 세상이 불합리해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한다는 것을. 


그 투쟁이 때론 돈키호테의 싸움처럼 보일지라도, 결국 그것이 세상을 바꾸는 일임을 믿기에.




나는 오늘도 사건 기록을 챙겨 들고 출장길에 오른다. 


변호사라는 이름의 장돌뱅이로서, 치열하고 고단한 일상을 마주하려 KTX에 몸을 싣는다.

부산역 앞에서

창밖으로 저무는 석양을 바라보다, 문득 깨닫는다. 


이 모든 싸움의 연속이 단순히 직업적 의무를 넘어, 세상을 향한 투쟁이며 인간 존엄을 위한 몸부림임을.      


그래서 오늘도, 내일도 나는 길을 나선다.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서도, 매서운 겨울 바람 속에서도. 


이 모든 아이러니한 여정 속에서 변호사로서의 삶을, 투사로서의 각오를 새기며. 


고단한 장돌뱅이의 길 위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는 이유가 있으니. 


누군가의 절규 앞에 마지막 희망이 되어주는 이 길이, 불의에 맞서 정의를 외치는 이 싸움이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는 신념 하나. 


그것만으로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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