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창 _ 유리정원

관계결벽증 05

by 김라얀


류인창은 꽤나 깔끔하고 세련된 사람이다.
말투는 부드럽고, 옷차림은 유행을 따르되 지나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를 친절하고 센스 있는 사람이라 여겼고, 과하지 않으면서도 자기만의 정갈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고 평했다.

어디서든 튀기보다 은근히 드러나는 인상이었고, 자신의 이야기를 잘하면서도 남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 잘 들어주었다. 그가 건네는 친절하고 다정한 제스처는 배려로 받아들여졌고,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유쾌함은 무리에서도 적당한 호감을 끌어냈다.


무엇보다 인창은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에 매우 조심스러웠다. 다정했지만, 가까워지기 쉬운 사람은 아니었고, 호탕하지 않기에 때로는 소극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는 늘 자신을 보여주는 일에 신중했고, 누구보다 세심하게 스스로를 관리했다. 항상 ‘정돈된 이미지’를 보여주고자 섬세한 계산과 절제된 표현에 신경 썼다.




하지만 그렇게 인창이 단단히 가꾼 정돈됨은 사실 불안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는 늘 남들이 보기에 자신이 멋져 보이길 바랐고, 그런 모습으로 존재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또 그는 자신이 가진 것들이 늘 충분하지 않다고 느꼈다. 어렸을 때는 공부도 잘했고, 집안 형편도 그리 나쁘지 않았고, 노력한 만큼 차근차근 이뤄가고 있었지만, 자신은 아직 많이 부족하고 더욱더 채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센스, 트렌드, 인간관계, 일상까지 완벽하진 않더라도 평균 이상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자신을 끊임없이 가꾸고 조율했다.


그런 방식은 인간관계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인창이 관계를 맺을 때는 철저히 계산하고 관계를 이어나갔다.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 모두와 잘 지냈지만 누구와도 진심을 쉽게 나누지 않았고, 상대에게는 정제된 친절만을 보여주며, 자신의 진짜 감정이나 욕망은 조심스럽게 감췄다.

특히나 자주 어울리는 사람들은 더더욱 가려가며 만났다. 자신과 함께 언급이 되는 사람들은 그들의 스펙과 집안환경이 인창이 생각하는 기준을 넘어야만 했다. 또 이성 관계에 있어서도 인창은 ‘나와 잘 맞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사람’보다 ‘나의 가치를 높여줄 사람’에게 끌렸다.




인창의 내면은 마치 유리로 둘러싸인 정원 같았다. 겉보기엔 반듯하고 정돈된 공간에, 투명하게 비치면서도 정작 안으로는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구조였고 그 안엔 각을 맞춰 배치한 식물들처럼 기대와 욕망이 쑥쑥 자라나고 있었다. 원래 그의 유리정원은 외부의 해로운 영향과 거친 바람, 그리고 따가운 시선으로부터 내면을 보호하려는 공간이었고 그 속에서 그는 열심히 그 정원을 가꾸며 다양한 것들을 가득 채워갔다.


다만 그가 가진 것이 나쁜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친구들은 늘 인창보다 더 뛰어나고 더 많이 갖고 있었다. 그가 전교 10등을 하면 친구들은 전교 1,2등을 다투었고, 대학 입학 선물로 승용차를 선물 받으면, 친구들은 그들의 부모로부터 외제차와 오피스텔을 받았다. 나이가 먹으면서 스펙은 탄탄해졌고, 재테크도 열심히 해나갔다. 하지만 부지런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의 친구들보다는 모자라고 아쉬웠다. 인창이 힘겹게 커리어를 쌓아가는 동안, 친구들은 부모의 회사를 물려받았고, 시간까지 더 여유로워 그들의 재력을 과시하며 인생을 즐겼다. 인창은 그런 친구들의 모습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우울해했다.


채울 수 있는 모든 것을 채워가며 포화 상태가 된 정원 안을 가꾸다 지친 그는 더 이상 기존의 방식으로 해서는 본인의 가치가 더 높아지지 않는다 생각했고, 다른 방식으로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인창은 보여주는 것에 더 신경을 쓰며, 남들에게는 본인이 가진 것보다 더 부풀려서 과시를 하기 시작했다. 유려한 말솜씨는 본인의 커리어를 더 과장하는 데 사용했고, 그동안 모은 돈으로는 외제차와 시계 그리고 명품들을 사기 시작했다. 자랑하고 내세울 수 있는 사람들과 친분을 맺기 위해 술자리를 찾아다녔고, 그렇게 알게 된 사람들은 그의 인스타그램에서는 절친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열심히 닦아 반짝반짝 빛나게 된 유리외관은 사람들을 현혹하기 시작했고 이내 사람들은 그가 가진 것을 부러워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 유리를 통해 바라본 정원의 모습은 실제보다 훨씬 더 반짝이고 화려하게 보였고, 어떤 이들은 실제로도 그 정원이 화려할 것이라 기대하며 그 안에 들어가길 원했다. 그럴수록 인창은 정성스레 유리 정원을 관리하며 자신의 삶을 연출했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 인창은 드디어 자신과 어울리는, 그리고 자신의 가치를 높여줄 수 있는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그의 반짝이는 외관에 매료되었고, 그녀는 그 누구보다 남자의 능력과 외형을 중요시했기에, 인창의 재력과 인맥, 그리고 그가 가진 것들이 만족스러웠다. 그녀 또한 인창이 꿈꿔왔던 외모와 집안, 그리고 적당한 커리어까지 갖고 있었기에 금세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그는 그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는 것이 자신의 유리 정원이 완전해지는 다음 단계라 생각했고 이내 실행에 옮겼다.


결혼을 준비하며 혼수와 예물을 두고 서로 많이 부딪혔지만 그는 그 정도는 예비 신랑신부들이 흔히 겪는 갈등으로 여겼다. 하지만 그 갈등은 생각보다 심각했고, 결혼을 하고 나서는 더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제 아내가 된 그녀는 인창이 보여줬던 겉모습과 실제의 생활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화려한 결혼을 준비하며 많은 돈을 끌어다 쓴 탓에 인창의 잔고는 그리 넉넉하지 않았으며, 부유한 집안으로 생각했던 인창의 시부모는 인창의 신혼집을 마련해 주기 위해 더 작은 집으로 이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창의 아내는 명품을 못 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고, 옷, 신발, 가방에 국한되었던 그녀의 허영은 결혼 이후 가구, 차, 집까지 확대되었다. 인창은 아내의 허영을 채워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항상 끝은 그녀의 불만과 짜증의 폭발이었다. 인창이 가진 것에 만족할 수 없던 아내는 자신이 원했던 결혼이 아님을 깨닫고 결국 이혼을 요구했다.




그 이혼으로 인해 인창은 자신이 열심히 가꾼 유리 정원이 하나도 가치가 없는 것만 같았다. 그동안 열심히 채워온 정원은 황폐해져 갔고, 유리는 더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는 유리 정원이 여전히 모자라고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유리는 한없이 더러워 보였다.


사람들이 자신이 꾸며놓은 정원에는 관심 없다고 생각한 그는 보여주는 삶에 더 치중하고자 더 화려하게 자신이 가진 것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정원 안을 채우기보다 유리를 더 빛나게 닦는 데 집중했고, 속이 점점 비어 가는 걸 알면서도, 누군가가 또다시 겉모습에 끌려오기를 바랐다. 그는 과거보다 더 화려해졌고, 더 감각적인 사람이 되었지만 그가 나누는 대화는 가벼웠고, 사람과의 관계는 한없이 얕아졌다. 그의 유리 정원은 밖에서 볼 땐 아름답고 완벽한 공간처럼 보이지만, 그 안은 말라가는 땅과 시든 잎사귀들만 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유리를 통해 그가 갖고 있는 것들을 동경하고 질투했고, 그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을 위로했다. 인창이 요란하게 자신을 과시할 때마다 그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이상하게 인창의 마음은 더더욱 공허해졌다. 그는 인위적인 것들로만 채워진 유리 정원이 문제라 생각하지 못했고, 더 비싼 물건, 더 돈 많은 인맥을 유지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


이제 그는 그 누구보다 화려한 외관을 갖게 되었지만, 내면은 생명력을 잃고 황폐해졌다.

그렇게 인창의 유리 정원은 생명력 가득한 온실이 아닌, 인공적인 것들이 박제되어 있는 쇼윈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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