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연 _ 인형의 집

관계결벽증 06

by 김라얀


김서연은 감각적이고 세련된 여자다.
누가 봐도 멋을 아는 사람. 유행을 좇되 그대로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화했다. 톤온톤 컬러 매치, 다양한 소재, 장식 없이도 존재감 있는 옷차림. 그런 그녀의 모습은 언제나 단정하고 세련됐다. 그녀는 자신을 꾸미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했다. 새로운 화장품이 나오면 꼭 시도를 해보았고, 스타일링 영상을 보며 코디를 따라 하며 자신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아 다양하게 시도했고 그런 노력이 트렌디하고 세련된 모습을 만들어주었다. 그녀는 늘 말끔하고 당당했으며, 잘 꾸민 모습은 너무나 편안하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남들이 그녀를 보고 멋지다 칭찬하는 것만큼 자신에게 관대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스타일은 괜찮은지, 화장은 잘 되었는지, 오늘의 모습은 충분히 멋진지 끊임없이 자신을 평가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당당하고 자신 있어 보였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스타일이 혹여나 충분히 세련되지 않을까 봐 노심초사했다. 그녀의 패션과 뷰티에 대한 관심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라기보다는 자기만족을 위한 가꾸기였다. 자신을 예쁘게 만들어주는 모든 것들이 그녀에게는 일종의 놀이였고, 자존감을 쌓는 방식이었다.

사랑 앞에서도 그랬다. 서연은 자신의 스타일을 좋아해 주고,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길 원했고, 그녀 역시 남자의 스타일을 꼼꼼히 보며 조금이라도 촌스러운 남자에게는 마음조차 가지 않았다.




서연에게는 그녀만의 인형의 집이 존재하고 있었다. 어릴 적 늘 갖고 놀던 바비 인형처럼, 그녀는 자신이 만든 인형의 집 속에서 날마다 새로운 옷을 입고, 표정을 바꾸고, 분위기를 바꾸며 살아갔다. 자신은 바비와는 달랐지만, 매일 다른 스타일을 시도하고 또 즐기다 보면, 바비가 되는 것은 금방일 것 같았다.


사실 서연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열등감을 안고 있었는데, 다소 수수하고 평범했던 과거의 외모 때문에 어린 시절 그녀는 늘 움츠러들고 주변의 예쁜 아이들을 부러워했다. 바비 인형을 꾸미듯 자신의 옷차림에도 신경 썼지만 사람들의 관심과 칭찬은 결국은 예쁜 친구에게 돌아갔다.

상처를 받고 우울해질 때면 그녀는 자신의 ‘인형의 집’ 속에 들어가 놀았고 그 안에서 그녀는 늘 완벽했고, 자유로웠다. 무한하게 뻗어가는 상상 속에서 때로 과감한 스타일도 시도해 보고, 남들이 다 따라 하는 스타일도 따라 해 보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자신을 바꿨다. 그렇게 그녀에게 ‘꾸밈’은 자신을 위로함과 동시에 통제 가능한 세계를 넓히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세계는 자유로운 창작의 공간이었지만, 동시에 불안한 현실을 잊기 위한 은신처이기도 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거치며 성형과 뷰티의 세계를 알게 되고 서연은 외모적으로도 더 다듬어지고 아름다워졌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더 적극적으로 다양한 스타일링을 더 과감하게 시도할 수 있었고, 비로소 그녀의 세련됨이 빛이 발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스타일리시한 그녀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녀만의 스타일링 방법, 메이크업 노하우 등을 물어보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연은 거울에 비친 ‘이전의 나’를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고, 패션과 뷰티 씬에 늘 등장하는 완벽한 그녀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신을 더 채찍질했다.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그 세계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건 한 남자를 만나면서부터였다.

그는 꽤나 호탕하고 여자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었고 보통 남자들과 달리 패션 브랜드 정보에도 빠삭했고, 자신을 어떻게 꾸며야 하는지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사실 그는 돌싱이었지만 멋모르던 이십 대 초반에 했던 결혼이었고 삼십 대 초반에 들어 아이가 없이 이혼을 한 탓에 이혼남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거기에 어느 정도 경제력까지 갖추었기에 서연은 그의 스타일리시함과 수려한 외모에 계산 없이 빠져들었다. 게다가 그는 첫 만남부터 그녀를 극진히 대했고, 그의 자신감 있는 태도에서 나온 멘트와 제스처는 서연에게 처음 느껴보는 추앙과 보호받는 감정을 줬다. 그녀는 비로소 바비의 짝인 벤을 만난 것 같았고, 그로 인해 그녀는 완벽한 바비가 된 것 같았다.


다양한 브랜드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스타일링을 시도하던 그녀와 달리 그는 선호하는 브랜드, 추구하는 스타일이 확실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종종 그녀에게 옷을 사주기도 했는데, 대신 그가 원하는 스타일 그대로 그녀가 입어주기를 원했다. 또 서연은 그전까지는 브랜드에 크게 개의치 않았었는데, 그를 만나며 명품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 그는 가끔씩 그녀가 SPA 브랜드나 인터넷쇼핑몰에서 산 옷을 입고 나오면 그녀의 가치가 싸구려 옷에 묻힌다며 안타까워했고, 조금 더 비싼 브랜드 샵에 데려가서는 함께 둘러보곤 했다.


가끔 그와 술을 마시게 되면 전부인에 대한 이야기가 살짝 나오곤 했는데 대체적으로 ‘여자로 느껴지지 않아서’, ‘아내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류의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와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그는 서연을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과 이미지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녀는 혹시나 그가 자신또한 ‘여자로 느껴지지 않을까’ 봐 최선을 다했다. 그를 만나러 갈 때는 조금이라도 편안하고 허름한 스타일은 피했고, 여성미가 풍기는 스커트와 하이힐 그리고 완벽한 메이크업과 헤어가 없인 만나지 않으려 했다. 또 그는 종종 자신의 친구들과 커플 모임을 갖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서연의 스타일에 더 예민하게 굴었다. 서연 또한 그럴 때면 자신의 스타일링 실력을 십분 발휘해 그 누구보다 멋지게 꾸몄고 그 모임에서의 스포트라이트는 항상 자신이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모임을 하고 나면, 그녀의 애인은 그녀의 룩이 2% 아쉬웠다며 가방이나 주얼리를 사주곤 했다.




그렇게 서연은 자발적으로 즐기던 인형의 집이 어느 순간 그가 짜놓은 진열장으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엔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그녀에게 명품을 입히고 고급스러운 말투와 태도까지 요구했다. 친구들과의 모임에서는 그녀가 나서서 신나게 이야기하는 걸 원하지 않았고 그저 옆에서 ‘우아하게’ 있어주기를 원했다.


서연은 자유로웠던 자신이 틀에 갇히는 것 같아 답답했지만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맞춰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가끔 사주는 명품들도 너무 좋았다. 그런 명품 브랜드들이 자신을 드디어 온전하게 만들어주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그의 취향에 맞춰 자신을 바꿔가며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이 완벽해지려고 애쓸 즈음 그는 그녀에게 이별을 고했다. 그 이유는 ‘더 이상 예전처럼 설레지 않아서’. 그리고 이미 상처받은 서연에게 그는 한마디를 더 보탰다. ‘사실 내가 원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고.


그 말은 서연을 철저히 무너뜨렸다. 그녀는 처음엔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토록 열심히 맞추었고, 꾸몄고, 노력했는데 그 노력은 헛되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곧 그녀는 자신이 그의 진열장 안에서 적절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서연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연출할 수 있는 여자, 트로피처럼 보일 수 있는 여자를 원했던 것이다. 그리고 정작 그의 진열장에 놓일 수 있게 되면 그는 지루함을 느끼고 새로운 인형을 찾아간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서연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가 떠난 자리에 상처가 남았지만, 그 상처는 그녀를 무너뜨리기보다 더 단단하게, 더 화려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녀는 자신이 충분히 완벽해졌는데 그걸 지루해졌다고 자신을 버린 그가 한심했고, 이제는 자신의 이런 완벽함을 끝없이 추앙해 줄 사람을 찾았다. 또 점점 더 명품 브랜드로 자신을 휘감고, 떠나간 그가 후회할 정도의 ‘고급스러운’ 스타일을 만들어 나갔다.


인형의 집은 더 이상 서연이 자유롭고 실험 가득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곳은 비싼 것들을 끊임없이 채워 넣으며 정제되고 획일적인 스타일만 허용 가능한 곳이 되어버렸다.

그곳에는 위로와 평온함은 사라지고 욕망에 뒤덮인 박제된 인형만 남아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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