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준 _ 용광로

관계결벽증 07

by 김라얀



홍재준은 어디서든 주목받는 남자였다.

목소리는 크고 말투는 시원시원했으며, 새로운 사람과도 격 없이 어울리는 성격 덕분에 누구에게나 호감을 샀다. 그는 자리를 주도하고, 웃음을 만들고, 분위기를 장악하는 사람이었다. 상대가 누구든 친근하게 다가가 쉽게 말을 놓았고, 나이나 인원 상관없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자신감을 가졌다.

리더십이 강하고 추진력도 있어 사람들을 이끄는 데 능했고, 복잡한 상황에서는 단호하게 정리하는 결단력도 있었다. 무언가를 꾸미거나 포장하는 데 능하지 않았기에, 그의 직설적인 말투는 오히려 사람들에게 신뢰를 줬다. 그는 언제나 솔직했고, 현실적이었고, ‘그래서 매력 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사실 그 호탕한 에너지 뒤에는 결핍과 통제욕이 숨어 있었다. 어릴 적 아버지를 잃은 그는 늘 남자다움과 책임감에 대한 허기를 품고 자랐고, 연약한 존재들을 지켜주는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래서 그는 어떤 집단에서든 자신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야 안심이 되었고, 자신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불편해했다.

재준은 사랑에서도 같은 방식을 따랐는데, 상대를 이해하거나 공감하는 것보다 상대가 가진 문제를 자신이 얼마나 잘 해결할 수 있는지, 자신이 얼마나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 줄 수 있는지에 따라 마음이 더 가곤 했다.

그렇기에 그의 이상적인 연인은 여성스럽고 다소 연약한 모습을 지니고 있으며, 꽤나 순응적이었다. 상대의 아쉬운 면이 보일 때마다 그는 그것을 교정하려고 들었으며,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상대가 바꿔주기를 바랐다. 자신은 이것이 상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더 나은 모습으로' 변할 수 있게 조언을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재준의 내면은 마치 용광로와 같았다. 고온의 열기 안에서 다양한 모양의 재료들이 뒤섞이고 녹아 하나가 되는 용광로처럼 그는 넘치는 에너지와 사랑을 뜨겁게 녹여 이상적인 무언가를 만들고자 했다.

어린 시절 그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상황에서 아픈 누나와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급급했던 어머니를 보며 현실에 빠르게 눈을 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빨리 커서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 생각했고, 남자는 가정을 책임지며 연약한 여자들의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 생각했다. 그래서 가정을 꾸리는 일은 곧 자신이 ‘완성된 남자’가 되는 길이라 여겼고 완벽한 가족을 꿈꿨다.

그런 강렬한 바람으로 그의 용광로는 부지런히 움직였고, 그런 노력의 보답으로 어느 정도 안정된 경제력을 이른 나이에 빠르게 갖출 수 있었다. 금전적으로 안정을 찾고 나니 그의 용광로는 완벽한 가정을 꾸리기 위한 목표에 집중했고, 이상적인 아내를 찾기 위해 많은 여자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다만 재준의 용광로는 상대의 개성과 결을 존중한다기보다는 그저 높은 온도 안에 녹여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빚어내야 했기에 많은 여자들이 그의 호탕한 면에 끌려 연애를 시작했다가도 금방 이별을 하고는 했다. 그는 완벽한 가정에 있어서 서로의 양보와 희생은 당연한 것이라 여겼고, 이런 조율을 해줄 수 없는 사람이라면 빠르게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용광로에서 자신이 감정이 녹여지고 이성적으로, 이상적으로 재탄생되는 것처럼 상대방의 감정 또한 싱크가 맞기를 원했다.





그런 집념을 갖고 노력한 덕분인지 결국 자신이 꿈꿔왔던 이상적인 사람을 만났다. 조용하고, 내성적이고, 자신만을 믿고 따라올 것 같은 사람. 게다가 그녀 또한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기에 '완벽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자신의 열망을 그 누구보다 깊이 이해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재준은 그녀와 함께라면 예쁜 딸아들 낳아 제대로 된 가족을 드디어 만들 수 있겠다는 기대를 품고 열렬한 청혼 끝에 그녀와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자신의 말에 늘 수긍하고, 거슬리는 것 없이 잘 맞춰주던 그녀였지만, 그녀에게는 열정과 에너지가 부족했다. 연애를 할 때는 그런 모습이 그저 순응의 다른 모습으로 보였고, 자신이 제시하는 방향을 따라가다 보면 이상적인 아내의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 확신했기에 그녀의 그런 모습이 문제가 되리라 생각을 못했었다.

게다가 그녀는 어느 순간 재준과의 잠자리도 피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몸이 안 좋아서, 어느 날은 너무 졸려서 등등 다양한 이유로 부부관계를 소홀히 했다. 그 누구보다 '완벽한 가정'에 대한 열망이 있던 재준이기에 그런 그녀의 모습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이내 자존심에도 상처를 입었다.

그는 그녀를 좀 더 이해하고 헤아려보려 했지만 이내 좌절감에 더더욱 거세게 요구하고 분노를 터뜨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분노가 커질수록 그녀는 더 무덤덤해지고 열정을 잃어갔다.


결국 재준은 그가 원했던 '완벽한 가정'을 꾸리는 데 있어 그녀는 '여자로서'의 역할을 포기했다고 판단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아내가 되어줄 수 없다면 이혼을 하자 요구했고, 그녀는 그 역시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그의 뜻을 따랐다.




이혼 후 그는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우선 자신이 꾸린 가정이 무너졌다는 사실이 견디기 어려웠고, 그 누구보다 까다롭게 고른 여자였는데 자신의 결정이 틀렸다는 사실에 괴로워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애초에 누군가를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만드려고 했던 것이 틀렸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제대로 된 ‘틀'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확신했다. 그전에는 '완벽한 가정'이라는 목표를 두고 사람을 만났다면, 이제는 '완벽한 여성/아내'라는 이상향을 두고 여자를 맞춰갔다. 자신이 정한 연인의 역할, 남녀의 위치, 여자의 도리 속에서 정해진 자리를 충실히 채워줄 사람을 더 적극적으로 찾았고, 그가 제공하는 조언과 지원을 통해 더 아름답게 거듭나는 여자를 보며 만족하며 뿌듯해했다.


다만 끊임없이 자신의 틀에 맞추려 했기에 그 틀은 어느새 획일화된 모습의 사람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원했던 상대가 획일화된 모습으로 완성되면 더 이상 바꿔줄 것이 없기에 이내 싫증을 느꼈고 애정이 식어버렸다.

재준의 뜨거운 용광로는 이제 거푸집에 쏟아 넣기 위한 재료를 녹이기 위해 존재하였고 그가 만들어내는 사랑은 모두 같은 틀에 찍혀 나오는 똑같은 모양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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