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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일라 Aug 12. 2021

프롤로그. 이과와 문과, 그 중간쯤에서 일합니다.

실험실을 뛰쳐나온 생물학도, 마케터로 살아남기

생물학과 나오면 뭐 해 먹고살아요?


생물학과에 대한 고전적인 편견이 있다. 의대 못 간 애들이 가는 곳. 실제로 그런 친구들이 있긴 했으니 완전히 터무니없는 편견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런 애들은 1학년을 마치곤 어디론가 사라졌다. 개중에는 성공적으로 PEET (약학대학 입문자격시험)나 MEET (의학교육 입문검사) 시험을 마치고 약대로 편입을 하거나 의학전문대학원에 간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나는 애초에 약사나 의사가 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돈을 많이 벌을 수 있다고 한들, 소화해내야 하는 지식의 양과 업무의 양이 내 적성에 맞지도 않고, 내 능력 밖이라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생물학과를 간 것은 단지 이과를 나온 내가 재미있게 공부할 만한 유일한 과목이 생물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이과 학생들과 다르게 나는 수학을 못했다. 수학뿐만 아니라 물리, 화학도 못했다. 유일하게 남들보다 잘하는 과목이 생물이었고, 생물만큼은 내게 효자 과목이었기 때문에 주변 친구들에게도 곧잘 설명해주곤 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나를 "생신 (생물의 신)"이라고 불렀다.


생신이 생물학과 아니면 어딜 가겠는가. 당연히 생물학과로 진학했다. 나중에 뭘 해 먹고살을지는 나중 문제였다. 일단은 내 성적으로 갈 수 있는 가장 좋은 학교를 가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데 막상 대학교에 와보니 생물이 너무 재미가 없었다. 사실 내가 진학했던 과는 그냥 생물학과가 아닌 "분자"생물학과였다. 그렇다, 생물학적인 현상들을 분자의 레벨에서 관찰하고 탐구하는 학문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전공 공부는 어려웠고 진심으로 이걸 배워서 어디다가 써먹지?라는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당연히 학점은 바닥을 쳤고 나는 강의실 안에서보다 강의실 밖에서의 재미에 더 이끌렸다.


그래서 경영학과로 전과를 생각했다. 당시 이과에서 문과로의 전과, 특히 경영학과로의 전과는 굉장히 쉬웠다. 거의 서류를 접수하고 면접만 가면 어지간해서는 떨어지지 않는다고 들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나는 면접 날짜를 까먹는 바람에 경영학과 전과에도 실패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분자생물학과를 다녀야 했으나 이대로 가다간 꼼짝없이 대학원을 가야겠구나 싶어서 경영학을 복수전공으로 신청했다. 대학원을 가기 싫었던 이유는 영어로 된 논문을 읽어야 하는 곳이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나는 원어민 수업에서 C+를 받았을 정도로 영어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경영학을 빼어나게 잘했던 것도 아니었다. 마케팅에서 역시 C+를 맞았다.


그런 내가 지금은 독일에서 영어로 대학원 공부를 마치고, 바이오텍 회사에서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 이과를 나오면 이과 쪽 직업으로 밥을 벌어먹고 살고, 문과를 나오면 문과 쪽 직업으로 밥을 벌어먹고 살 거라고 철석같이 믿어왔지만, 나는 지금 이과와 문과, 그 중간 어디쯤에 서있다.


이 이야기는 가장 직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나이에 했던 결정 때문에 얼떨결에 생물학과에 표류해있었던 한 20대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또한, 과학을 좋아하긴 하지만 생물학자가 되고 싶지 않았던 생물학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독일어를 하지 않고서도 독일 회사에서 영어만으로 마케팅 일을 하고 있는 한 마케터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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