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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일라 Aug 13. 2021

EP 1. 독일어를 몰라도, 독일 유학

독일에서 영어로 공부하는 석사과정

독일에 대한 동경은 없었다. 독일에서 만난 몇몇 사람들이 독일을 파라다이스처럼 묘사한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나는 이에 별로 동감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아마 그럴 것이다. 어느 나라든 먹고사는 문제는 항상 존재한다. 나라가 부유하고 인프라가 잘 되어있고, 국민들의 시민의식이나 윤리의식 등이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높아도, 그래도 어디든 문제는 존재하고 모든 것이 다 좋을 수는 없다. 또 독일이라는 나라가 아무리 살기 좋기로 유명해도, 독일인에게 살기 좋은 것이다. 외국인, 이방인의 입장에서의 삶은 자국민의 삶과는 다르다는 것이 수년간 외국생활을 하면서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독일이 인종차별이 심하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영어를 쓰는 사람들이 많다고는 알려져 있지만,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서 사람들이 영어에 많이 오픈되어 있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독일 유학을 선택했던 이유는 학비가 없기 때문이었다.


나보다 20년은 먼저 독일 유학을 하셨던 내 학부 교수님은 독일이 학비가 없는 이유가 독일 사람들은 고등교육을 받는 사람들이 결국에는 사회에 환원을 하게 되어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이 사람들이 기부를 한다거나 하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 이렇게 학자나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 자체가 결국에는 국력이 되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공부를 더 하겠다는 사람을 사회가 지원해준다는 개념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이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확실히 우리나라와는 "대학"을 대하는 자세가 다른 것은 분명하다. Statista에 의하면 2020년, 우리나라 학생들의 대학교 진학률은 70%에 달했다. 10명 중 7명이 대학교를 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30-40%의 학생만이 대학교에 진학한다. (독일 학생들이 우리나라 학생들처럼 70%가 대학교를 가고자 한다면 더 이상 학비 없이 운영하기는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러한 학비 무료 제도가 자국민이나 EU 시민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더 놀랍다. 독일의 일부 주에서는 외국인 학생들에게 학비를 다시 요구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많은 주에서는 학비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대학원 과정에서는 독일어를 하나도 몰라도 영어만으로 공부할 수 있는 코스들이 있다. 유학에 몇천만 원을 쏟아부을 재력이 되지 않지만 외국에서 살고 싶고, 영어로 공부하고 싶었던 나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내가 이 대학원 과정들에 대해 알게 된 것은 2017년 영국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서였다. 당시 나는 2년짜리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가지고 에든버러에 있는 한 옷가게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생전 처음 살아보는 유럽, 생전 처음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게 된 영어, 한국과는 전혀 다른 문화 등 영국은 나를 설레게 하는 것들로 가득했다. 그래서 나는 영국에 더 있고 싶었다. 영국을 가기 전에는 내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한국에서 자랐다는 이유로, 앞으로도 한국에서 당연히 살 거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하지만 워킹홀리데이를 하면서 만난 전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은 저마다 제가 살고 싶은 곳을 찾아 떠나왔고, 또다시 떠나갔다. 이 경험은 내게 "나도 내가 살고 싶은 곳을 정할 수 있다."라는 희망과 의지를 심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는 영국이나 미국 유학을 알아봤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찾아봤지만, 학비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누구나 영국이나 미국 유학을 가고 싶어 하기에, 또 누구나 공짜를 좋아하기에, 장학금을 타기 위한 경쟁은 너무 치열했다. 그러던 와중 독일 유학을 알게 된 것이었다. 독일에는 학비가 없고, 영어로 공부할 수 있는 석사 과정이 있었다.


이리저리 각을 재 본 결과, 내가 내린 결론은 "가능성이 있다"였다. 제출해야 하는 서류들, 영어 성적, 학점 등등 모든 요건들을 하나하나 따져봤을 때, 잘만 하면 가능성이 있었다. 그토록 살고 싶었던 영국은 아니었지만, 뭐 어때, 같은 유럽인데.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영국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두 달 정도 남았지만, 마음이 급해졌다. 얼른 한국에 가서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하고 지원서를 제출하고 싶어 졌다. 여느 때처럼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에든버러에서의 평범한 하루였지만, 이 날 이후로 내 인생에는 또다시 한차례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에든버러에서 지냈던 작은 플랏. 처음 독일 유학에 대한 가능성을 깨달았던 바로 그 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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