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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락 Sep 10. 2023

서른여섯, 직업 바꾸기 딱 좋은 나이

찐 문과생, 데이터 사이언스에 도전하다

나는 찐 문과생이다. 한마디로, 수학을 극혐했다.

수학 때문에 재수를 했는데, 수학만 빼고 나머지 모든 과목의 점수가 다 올랐다. 대학을 어문계열로 가면서, 이제 더 이상 수학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너무도 행복했다.


그런데 10여 년이 지난 지금, 친구들과 가장 자주 하는 말은 “문송합니다”이다. 내 전공은 학교 다닐 땐 너무도 재미있었지만, 사회로 나와보니 너무도 빠르게 바뀌어 가는 세상을 살아가기엔 한계가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할 때도 힘들었지만, 말 그대로 문과 직무로 가다 보니 계속해서 한계에 부딪혔다. ‘이 직업은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최근 몇 년 사이 정말 많이 했던 생각이다.


작년에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대학원을 가기 위해 다른 전공을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도, 여전히 물음표는 남아 있었다. 공부는 이번에도 재미있었지만, 이걸로 석사를 나온 뒤 어떤 직업을 가질 수 있을지는 불확실했다. 가고 싶었던 세부 전공은 사회과학이긴 했지만 역시 국내에선 문과 계열이다 보니 교수, 연구원 말고는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는 직업이 없었다. 그래서 막연하게 ’나는 교수가 될 거야!‘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학령 인구까지 줄어가는 상황에서 교수 되는 것 자체가 하늘의 별따기이거늘, 삼십대 중반에 이제야 석사를 시작하고 미국에 가서 박사까지 한 뒤 교수가 되겠다는 포부는 현실적으로 무모했다. 그저 “하면 되지!”라는 생각만으로는 뛰어넘어야 하는 한계가 너무도 많았다.


데이터 사이언스를 다음 진로로 생각하게 된 건 퇴사한 지 일 년이 넘어가고, 대학원 전기 입시를 한두 달 여 앞둔 시기에 본질적인 진로 고민을 한 후다. 내가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나를 문과라는 틀에 가둔 건 정작 나 스스로였다는 점이다. 문과를 나온 나를 받아주지 않는 세상을 원망만 할 게 아니라, 바뀌어 가는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끊임 없이 배우고 노력했어야 하는데, 나는 처음부터 불가능만 떠올리고 문과라는 영역 안에서만의 커리어 전환을 생각했다. ‘나는 문과라서 이과 쪽은 갈 수 없어’가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분야를 생각해봤어야 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문과임에도’ 데이터 분야로의 진출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고, 나의 노력 여하에 따라 못 할 것도 없었다. 다행히도 나는 대학원을 준비하며 기초 통계 공부를 했고, 의외로 고등학교 때 생각했던 것보다는 해볼 만하다는 걸 깨달았다.(물론 앞으로는 기초가 아니라 고급 통계와 수학, 컴퓨터 언어를 공부해야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아예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래서 나는 지난하고 긴 고민 끝에 내년도 미국 데이터 사이언스 대학원 진학을 위해 준비하겠다는 진로 수정을 거쳤다. 대학원 코스를 밟은 뒤, 미국에서 몇년 간 일하다 나중에 한국으로 다시 오든, 괜찮으면 계속 거기서 일하든 해보기로 했다. 돌아 돌아 왔지만, 그리고 앞으로도 쉽지 않은 길이겠지만, 해내보려 한다. 내 인생은 늘 쉽지 않았지만 난 항상 어떻게든 잘 극복하고 버텨왔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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