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일라 Mar 04. 2020

경계의 시선을 넘어

“Votre attention s’il vous plaît,…”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 기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퍼진다. “Il y a des pickpockets dans la derniere voiture, attention à vos effets personnels.” 지하철 맨 뒤 칸에 소매치기범들이 타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안내방송이다. 방송을 들은 사람들은 일제히 주위를 둘러보고 가방을 끌어안으며 가벼운 경계태세를 취한다. 나 또한 주머니에 귀중품이 들었는지 확인하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지하철에서 핸드폰을 잘 꺼내지 않는 편이지만, 만에 하나를 대비해 가방 안쪽 깊숙이 넣어두는 편이다. 파리의 지하철 Metro는 소매치기가 많기로 악명이 높은 편이다.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신문인 르 피갸로 Le Figaro는 2019년 신고된 소매치기는 2018년과 대비해 59% 늘었다고 보도하며, 매년 느는 추세의 소매치기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접수된 신고에 따른 통계니, 신고되지 않고 매일 심심찮게 파리 내에 발생하는 크고 작은 소매치기 모든 사건을 포함하면 몇 배의 수에 달할 것이다. 집 근처 역까지 몇 정거장 남지 않은 터라 고개를 들어 현재 정거 중인 역을 확인했다. 그때, 마주 앉은 여성과 눈이 마주친다. 메고 있던 가방의 자크를 이리저리 살펴보던 중, 나와 따스하고 미묘한 시선을 교환한다. 싱긋 웃어 보였더니 함께 웃으며 어깨를 으쓱한다. 또한 내 옆에 서 있던 한 남성, 방금 지하철에 탄 할머니에게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 하며 자리를 내준다. 소매치기의 출현으로 지하철 칸에 탄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이는 그 순간. 방송이 한 번 더 울려 퍼진다.



     “Votre attention s’il vous plait,…” 


    소매치기 무리가 아직 지하철에 타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였다. 다들 조용히 무언의 눈빛을 주고 받는다. 덜컹덜컹, 지하철이 움직이는 소리 외에는 들리지 않을 정도의 적막이 사람들 사이를 통과한다. 마침 종점에 도착한 지하철은 서서히 속도를 늦추고,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릴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파리에 살면서 가끔 겪는 일이긴 하지만 스릴 넘치는 경험임을 부정할 수 없다. 



    파리에 10년 이상을 거주했지만 어이없게도 버스에서 지갑을 털렸다거나 길거리에서 집시에게 핸드폰을 갈취당했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전해 듣는다. 소매치기 없는 유럽의 도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강도나 소매치기 발생 통계에 따르면, 파리는 곳곳에서 조심해야 할 사항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기에 특히나 조심해야 한다.



     이처럼 파리 여행을 하는 관광객들에게 가장 부담되는 것은 언어나 비용이 아닌 바로 안전일 것이다. 기차역 또는 지하철역의 교통 이용권 판매 창구와 출구 근처에 자리 잡은 소매치기와 강도 무리는 관광객을 타깃으로 삼는다. 대중교통은 물론, 백화점 혹은 대형 매장 등 또한 그들이 선호하는 지역이며 식당과 카페는 말할 것도 없다. 가끔 이런 부당하고 온전치 못한 일을 겪는 사람을 본다면 망설이지 말고 도와주어야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종종 길을 묻는 사람들이나 무거운 여행용 가방을 이끌고 계단을 올라가는 사람들을 마주하는데, 매번 기꺼이 도움을 내밀면서 그들의 안전에 조그마한 힘을 보태곤 한다. 여러 번 소매치기와 강도의 위험에 노출되었던 경험을 떠올려보면 늘 주위 사람들에게 따듯한 도움의 손길을 받았고, 덕분에 경황없는 마음과 몸을 추스를 수 있었다. 남을 도우는 것은 바로 나를 도우는 일이다. 



    함께 살아감에 대하여 같이 고민하고 씨름하는 과정에서 새겨야 할 키워드는 '환대' 이다. 우리가 서로 돕고 협력하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은 사회를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 것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희망의 메시지로 여겨진다고 한다. 경계의 시선을 넘어 모두가 서로를 향한 따스한 시선을 잃지 않는 것이 인간됨을 만드는 출발점이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유학중 건강 챙기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