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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일라 Mar 09. 2020

당신의 보물창고, 브로컹트

Brocante 

    화창했던 주말의 끝자락. 17구에 볼일이 있어 버스를 타고 개선문을 지나가는데 브호컹트 Brocante, 바로 골동품 상점이 즐비한 길이 눈에 띄었다. 프랑스의 주말엔 두 종류의 시장이 서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는데, 하나는 벼룩시장 Vide-grenier 즉 개인이 시장에 물건을 파는 시장과 나머지는 골동품상 Brocante 또는 장인이나 업체나 소상인 Artisan 들이 여는 시장이다. 



    자주 집 근처에서 벼룩시장이 크게 열려 집의 잡동사니들을 한번 들고 나가서 팔아볼까 생각하고 있는데, 수익을 위해서라 기보다는 그냥 참여를 하는 것만으로 얻는 것이 많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주민들이 참여한다. 아침부터 이웃들이 모두 나와 1유로, 2유로에 실랑이 벌이는 장면이나 손때묻은 다양한 물건들을 가지고 나와 늘어놓는걸 구경하는 것은 사람 냄새 나는 재미가 가득한 일이다. 



    한국에서 느꼈던 재래시장의 느낌이 이곳 파리에도 물씬 난다고 해야 할까. 그중 내가 가장 찾는 곳은 CD와 레코드판을 파는 상점이다.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다양한 판들이 많은데, 이런 곳에서 희귀 판을 발견하는 행운을 경험할 수도 있으니 보물을 찾는 심정으로 열심히 뒤적거린다. 마침 여태까지 본 적 없는 규모의 큰 시장이 열렸고, 80년대를 대표하던 뮤지션들의 얼굴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는 낡은 엘피판들이 구석에 눈에 띄었다. 



    재작년, 사망하면서 프랑스 전국으로 추모의 물결을 이룬 조니 할리데이 Johnny Hallyday 와 수많은 샹송의 업적을 남긴 찰스 트레넷 Charles Trenet 등 그 시절을 주름잡던 유명인사들의 음악이 오랜 시간을 품은 채로 진열대 위에서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뜻하지 않던 곳에서 이런 보물을 찾으면 기뻐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은행 잔액에 얼마가 남아있나 곰곰이 계산하던 나, 끝내 조니 할리데이의 눈빛을 저버리지 못하고 결국 주머니를 탈탈 털어 CD 두 장을 구매했다. 



    덕분에 저녁을 걸러야 할 판이었지만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른 구매란 이런 것이 아닐까. 흡족한 마음으로 돌아 서려는 찰나, 상점 주인이 나를 부른다. “마드모아젤, 그거 딱 하나 남은 건데, 아주 운이 좋았네요. 고전 샹송을 좋아하나 봐요.” 나이가 지긋한 베레모를 쓴 상점 주인이 나를 바라보며 다정히 말을 건낸다. 골동품 시장에 오래전 시절을 대표하는 상징인 샹송이 빠질 수 있겠냐며, 우연히 들렸지만 좋아하는 음반을 발견해서 굉장히 기쁘다고 대답해 주었더니 유쾌하게 껄껄 웃으며 뒤쪽 진열대에 서 바스락 무언가를 꺼낸다. 내게 조심스레 건네는 그의 손에는대중음악에서 가장 알려진 앨범 중 하나인 세르지오 갱 스부르그 Serge Gangsbroug 의 <Histoire de Melody Nelson> 앨범이 들려있었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갱스부르그의 이 명반을 여기서 볼 줄이야. 내가 꼭 들어봤으면 좋겠다며 사양하지 말고 내 손에 들려주던 아저씨. 연신 고맙다는 말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 그 날 저녁, 창문을 열어 놓은 채 센느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밤새 그의 음악을 들었다. 샹송, 대중음악에 대한 사랑과 열정 은 어디 상점 주인뿐만 가지고 있겠는가. 한시대를 풍미했던 록 가수 조니 할리데이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전, 현직 대통령도 참석하는데다 그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오토바이(할리 데이빗슨)을 타고 나와 퍼레이드를 펼친 파리의 시민들. 



    그저 말뿐만이 아니라 정말 가슴 깊이 예술을 사랑함을 알 수 있는 다양한 장면들을 파리 에선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브로컹트엔 엘피판 외에도 다양한 시대의 소설, 에세이 등 여러 종류의 책 또한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곳의 또 다른 묘미는 책들을 잘나가는 작가, 배경, 이야기 등 순으로 배열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진열대 위에 올려놓는 것인데 그 속을 뒤적이며 책을 고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마음씨 친절한 상점 주인 할아버지를 만나 뜻밖의 즐거운 경험을 선사 받은 그날 이후 에도 파리는 종종 내게 많은 깜짝 선물을 주곤 했는데, 브호컹트 속에서 발견한 많은 보물은 모두 몇 년 후 파리를 추억할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 되지 않을까. 매주 구, 동네마다 열리는 브호컹트는 날짜와 시간이 각각 다르니 파리를 방문한다면 한번 눈여겨보자. 기대하지 않았던, 파리가 당신을 위해 숨겨놓은 보물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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