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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일라 May 28. 2020

학교를 싫어했던 어른이의 배움, 글쓰기


    미국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학생들에게 에세이 쓰기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나의 생각과 주장을 키워나가는 데 중점을 두면서 자아를 단단히 기르는 방법으로 글쓰기만큼 효과적인 훈련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종류의 글쓰기를 가르치는 것은 물론, 자료를 이용해 관련된 리서치를 하며 점점 글의 완성도를 넓히고 다지게 하는데에 적지 않은 시간과 품을 들인다. 수업에서 다루는 부분은 대부분 재미와 감동을 주는 문학적인 글짓기, 효과적인 의사전달을 위한 실용적인 글쓰기 등을 통해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능력을 기르며 콘텐츠를 깊이 있게 다루는 식이다.



    학생들은 처음 학교에 입학해 연필을 잡을 때 부터 구조 (structure) 과 형식 (style) 즉 문장 배치와 에세이의 구조를 배운다. 자신만의 문체를 기르는 과정에서 글쓰기 지침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생각하고 많이 읽고 많이 써야 함은 무엇보다 자명한 부분이며, 쉽고 정확하고 간결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선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끌어내는 일-브레인스토밍 (brainstorming) 하는 방법부터 체계적으로 배워야 한다. 학교에서 이를 반복된 훈련을 통해 다져주는 것이다.



⟪ 에세이 쓰기의 기본 틀 ⟫ 

Step 1. 주제에 대한 아웃라인을 그린다 
Step 2. 그에 대한 자세한 마인드 맵을 생성한다 = Brain Storming 
Step 3. 구체화하여 정리한 후 문장으로 만든다 
Step 4. 문단 단위로 자연스럽게 문맥상 연결하고 나의 주장, 사실근거, 의견 등을 추가한다. 
Step 5. 다 쓴 후에 다시 처음부터 읽고 전체적 맥락을 수정한다.



    이러한 글쓰기를 가르침은 물론, 올바르고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자세를 갖도록 하는 것이 수업의 중심이라고 볼 수 있다.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단계별로 아이들의 적응력을 살피고 맞춤 지도 학습을 펼쳐야 하기에 커리큘럼과 수업의 디테일은 늘 조금씩 변화해왔다. 지난 몇 년 간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을 상대로 글쓰기 수업을 이어왔고, 점점 더 구체화되고 세분화되는 학교 과제와 사회에서 민감하게 다뤄지는 이슈의 흐름 등에 편승해 학생들과 함께 발전을 이뤄왔다. 



     나 또한 글쓰기에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하는지라, 에세이를 완성하고 나면 늘 학생들과 공유한다. 서로가 쓴 글을 돌려보고 같이 소리내 읽는 작업은 상대방과 내가 동등한 위치에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준다. 독자로서 감상평을 장려하게 되면서 읽는 법, 쓰는 법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셈이다. 물론 글을 읽고 나서 감상평이 필요치 않을 때도 있다. 이미 소리내 읽는 것으로부터 자신의 글이 어떻게 써졌는지 귀로 들리는 경험을 하면서 글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기르며 동시에 느끼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위에 써놓은 에세이 쓰는 기본적인 틀이 글에 적용되려면 정교하고 세세한 디테일 작업들이 동반되어야 한다. 여기서 선생이 할 수 있는 일은 적절한 어휘표현을 통해 나의 생각과 주장을 구분하여 끼워넣는 과정, 문장을 흐름에 맞게 적절히 배치하는 방법 등을 놓치지 않고 지도해주는 것. 하지만 글쓰기에 있어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다름아닌 바로, 글 쓸 주제를 정하는 일이다. 한국의 주입식 교육의 틀 안에서 보낸 아이들의 대다수는 선택지 앞에서 내가 '뭘 원하는지'부터 알지 못하고, 글 쓰기 주제 선택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에세이를 쓰는 시간이 만약 60분이라면, 첫 10-20분을 뭘 쓸지 '정하는' 과정에 할애할 정도다). 이러한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정해져 있는 답만을 요구하고 성적을 매기는 경쟁구도 방식의 교육은 답답한 상자와도 같이 느껴졌다. 이는 분명 학생을 틀 안에 가두어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평소 자신이 어떤 것을 원하는지, 특정 행동을 '왜' 하는지를 자각하고 이에 대한 질문을 가질 수 있도록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는 데 중요성은 에세이 '주제'를 정하는 과정에서부터 드러난다. 글을 남들보다 잘 쓰거나 많이 써왔다고 자부하진 않지만, 중학교 과정에서부터 강조받았던 '메모하기'가 그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임을 깨달았다. 무엇이든 돌아서면 금방 까먹곤 했던 나는 늘 잡다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내가 보고 느낀 것, 듣는 것, 입는 것, 먹는 것 등은 나를 둘러싸고 나를 구성하는데 직,간접으로 영향을 준다는 것을 몰랐으며, 늘 앗! 하면 사라져버리는 뜬구름같은 망상을 흘려보내곤 했다. 



     다행히도 메모하기의 중요성은 깨우쳤으나 목적은 딱히 없었던 중학생 시절을 흘려보내고 고등학생이 되었을때, 이러한 생각들을 다지고 뭉쳐 글쓰기로 승화시키는 방법을 지도해주는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에 대해 아직도 기억나는 점은 얼마나 글쓰기에 대한 가이드와 지지를 (열렬한 지지는 당연하고) 보내주셨는지다. 수업을 통해 나의 생각과 이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마주하고 생각하며 이야기 하는 과정으로부터 나 자신을 더욱 면밀히 파악할 수 있게 되었고, 이로 인해 많은 것이 달라졌다.


    학교에서 받는 배움을 떠올려보면 생각보다 그리 대단하거나 어려운 과목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읽는' 훈련을 반복적으로 그리고 꾸준히 행할 뿐이다. 일주일에 책 한 권 완독은 물론, 그 책에 대한 기본 지식, 저자에 대한 정보, 책에 담긴 (quote) 인용이나 주장에 맞는 챕터에 대해 발표, 관련 풀이 숙제까지 한 책을 탈탈 털어 이해하고 분석하여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방법 또한 요긴히 쓰이곤 한다.



    예를 들어, 현재 가르치는 학생 중 한명은 마고 리 셔털리의 'Hidden figures' 책으로 한 학기 (프랑스는 년 중 세 학기를 보낸다)동안 리서치 하는 법(Investigation plan), 주장과 근거 찾기(Support theme), 책 인용문 찾기(Finding Quote) 등 한 책으로 할 수 있는 갖가지 활동을 다양하고 유익하게 해왔다. 책 속, 인종차별(Racism) 과 성 불평등(Gender Inequality) 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한 학기동안 얼마만큼의 자료와 주장을 끌어낼 수 있는지에 중점을 둔 학교 수업은 학생들이 사회적 이슈에 편견 없이 그리고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도록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학생들의 학생의 숙제와 글쓰기를 동시에 봐주면서 수업동안 든 생각은 '이토록 논리적인 지점을 통해 책의 내용을 분석하고, 비판하고, 나의 생각 지점과 연결하여 구체적으로 글을 쓰는 훌륭한 훈련을 내가 이 학생의 나이 때부터 받았다면 나는 지금쯤 어떻게 변했을까?'였다. 엄청난 수업의 질과 양에 학생들이 힘들겠다 싶으면서도, 동시에 부러움이 고개를 들었다.



    교육의 질에 대해 고찰한지는 기껏 해야 4-5년 남짓하지만, 지난 학창시절 학교에서 배운 것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인 나는 성적이 교육보다 그 무엇보다 우선시 되는 시간을 거쳐왔고 그 속에서 배움에 대해 흥미를 잃은 흔한 케이스다. 많은 연구를 통해 알려진 바로는 시험을 통해 받는 성적을 위한 공부가 아닌, 스스로 무엇을 배우는지에 대해 관심이 생기고 연구의지가 불타오를때 이루어진 공부만이 몸과 머리에 오랫동안 남는다고 한다. 연구 결과처럼 성적을 위한 공부는 일시적이다. 하지만 그를 통해 아무것도 건진 것이 없다면 사실이 아니며, 물론 배우는 것은 있다. 그 배움이 나의 얼마나 오랫동안 내 삶에 남아 나를 형성하는 가치가 될 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실제로 성적을 통한 상대평가와 교육 체계가 비난을 받는 이유는 학생들을 평가하는 효율성에만 맞춘 교육은 성적을 잘 받는 훈련을 통한 학생들만이 길러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학교는 학교는 배움 그 자체 그리고 배움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환경보단 성적을 우선시하는데, 기본적으로 내가 '무엇을' 그리고 '왜' 배우고 있는지 정확히 인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고 생각하는 사고를 가로막고 차단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있다.




실천적 지혜



    이러한 교육에 대한 관련 기사와 논문 등 다양한 소스를 자주 찾아보는 편이다. 그 중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 커뮤니티는 온더레코드 'ON THE RECORD' . 이는 다음세대가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배움을 다루며, 교육자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온라인 콘텐츠를 만드는 동시에 공간을 운영하는 곳이다. 교육자들을 위한 서재, 미래학교 컨퍼런스 등을 열며 학생의 가능성을 넓히는 배움의 환경을 지향한다. 다음 세대가 필요로 하는 교육이란 분명 현재와는 다를 것이라고 보고, 이 곳에선 그에 대한 활발한 논의와 대비가 이루어지고 있다. 교육자는 선생 뿐만이 아니라 모두임을, 배움의 길을 걸어가는 동료란 얼마나 값진 것임을 알려주고 있기에 자주 들여가 보는 공간이다.



    온더레코드의 브런치 매거진 '지금 우리가 주목하는 배움' 에서는,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실험하며 토론하는 학생들과 그에 맞게 고루 갖춰진 배움의 환경에 대한 기록이 나와있다. 또한 학생 스스로 만드는 조직 거꾸로 캠퍼스, 분류되는 문화들을 사유하기, 배우는 법을 배우는 수업 등 틀에 갇혀있던 생각들을 현실화 시킨 소중하고 값진 경험들에 대한 주옥같은 내용이다. 매거진을 구독하면서부터 아련하게 생각해왔던 형상들을 조금씩 구체화시킬 수 있었기에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또한 교육에 대한 대략적인 개념을 설립하기 위해 접했던 책 중 하나로, 지난 책모임에서부터 읽어 오고 있는 벨 훅스 시리즈 '비판적 사고 가르치기',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 'Teaching Community:A Pedagogy of Hope' 등은 남녀노소 나이불문 추천하는 책이다. 민감하고 중요한 주제인 '가르치기' 에 대하여 사유를 멈추지 않은 벨 훅스는 책 속에서 다가가기 쉽고 계목적인 글로, 오늘날 교실 안팎에서 가르치는 교사들이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그녀의 글과 말을 접하고 나서부터 그가 강조하는 실천적 지혜는 그동안 내가 그토록 바라왔고 꿈꾸는 것이 되었다. 모두가 함께 배움의 학습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일, 실천적 지혜를 통해 교수와 학생 모두가 이뤄나갈 미래의 실마리는 모두 책 속에 담겨있다.



    우리가 그려야 할 교육이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나아가야 할까. 교육이란 꼭 교실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아이들에게만 제한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평생 배우고 실수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란 존재를 이토록 찾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걸까. 하지만 주위를 잘 둘러보면, 내가 배움을 주고 있는 대상은 누구이며, 내가 배움을 얻고 있는 대상은 누구인지를 성찰하게 된다. 경쟁 구도 시스템도 무작위도 아닌, 실천적 지혜를 추구하고 진정한 배움을 갈망하는 이로운 교육을 나누고 함께할 모두가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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