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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일라 May 26. 2020

무언가에 '덕후' 였던 적이 있나요?

 

    지난 세월과 과거 군데군데 박혀있는 기억의 조각들을 꺼내봤을 때 '덕후'라고 칭할 만한 시절은 찾을 수 없었다. 덕후 한 분야에 깊이 빠진 사람을 의미하는 일본말 '오타쿠'를 한국식 발음으로 바꾼 '오덕후'의 줄임말이다.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대상을 발견해 몰두하며 전문성을 쌓는 덕후는 현재 특정 분야의 취미를 가진 사람을 수식하는 단어로 쓰인다. 이들은 자신과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정보를 교류하고 활동한다.



     '덕후'를 향한 시선이 과거엔 어떤 의미를 가졌는가 생각해보면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다. 최근에 들어서야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취향에 부합한 대상을 찾고 그에 집중적으로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아졌다. 오타쿠 문화를 자유롭게 밝힐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짐에 따라 점차 마니아, 준전문가 수준으로 그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 열정적인 사람을 뜻하는 단어로 형통되기 시작했다. 덕후질을 시작하는 단어인 입덕, 성공한 덕후라는 성덕, 덕질을 알리는 덕밍아웃, 심지어는 탈덕까지... 이 말이 쓰이는 문화적 배경엔 무엇이 존재할까? 



모든 덕질은 자유로우며 그 취향과 분야에 있어서 평등하다.
-세계 덕질 선언 1조


     과거의 나는 내적 갈등과 자아 탐구력이 강한 아이였다. 남들이 다 한다는 걸 따라 하거나, 대중적인 흐름에 편승하거나 하는 일은 드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무언가에 대한 정보를 수시로 찾아보거나 아카이빙 하는 작업만큼은 집요하게 해왔다. 마치 정보의 '양'이 내 뇌 용량을 대변할 수 있다고 굳건히 믿는 듯했다. 학사 때는 transcribe 한 음원과 악보를 차곡차곡 모으고 일일이 붙인 나만의 폴더를 만들었고, 청강했던 모든 수업을 필사하여 PDF로 저장해 iCloud에 저장했으며, 보컬 리얼북 1,2에 있는 스탠다드 곡을 전부 (330곡 정도 된다) 시벨리우스로 악보화 한 뒤 내 키로 바꿔 렐라 재즈 북을 만들어냈다. 이쯤 되면 조금 심한데? 싶을 것이다. 



     물론 아카이빙이 딱히 음악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내가 흡수하고 받아들이는 모든 지식, 그중에서도 문서화할 가치가 있는 것들을 분류하여 따로 저장해왔다. 뿐만 아니라 독후감, 책모임, 에세이, 강의 등 모든 종류의 배움은 기억이 닿는 데까지 가능한 한 기록으로 남겨두는데 시간과 품을 아끼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핸드폰과 머리끈을 찾으러 다니는 안타까운 기억력을 가진 내가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지금까지 배움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아카이빙 작업의 습관화 덕분이지 않을까. 차곡하게 정리된 문서들을 보면 내 머릿속도 깔끔히 정리가 되는 듯했고, 결정적으로 형상화 imagery 작업에 큰 도움이 되었으니까.



     긍정적으로 승화되긴 했지만, 이러한 작업에 집착이 지나쳤음은 알고 있다. 하지만 무언가에 그토록 심취하고 덕후라고 불릴 수준의 '취미'는 아니었기에 특정 대상을 향한 덕후의 기질을 가졌다고 보긴 어렵다. 주변을 보면 떠오르는 샛별, 펭수의 덕후도 많고 (온갖 굿즈를 구매하고 영상을 매일 본다) 아이돌 공연, 뮤지컬 배우, 아티스트, 피규어, 만화, 영화(해리포터, 스타워즈 같은 시리즈물) 등 덕후의 기질을 발휘할 많고 넓은 분야는 널려있다. 하지만 나를 덕후의 세계로 끌고 들어갈만한 것은 여태 찾지 못했다.



극장판 홍보대사가 된 도라에몽 '덕후' 배우 심형탁씨 ©스포츠서울



     내가 덕후인지 아닌지를 테스트하는 질문이 몇 개 있길래 자문해보니 대충 이런 것들이었다. 무언가를 바라보거나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무언가에 돈을 쓸 때는 상한선이 없다. 무언가 앞에서 논리나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는다. 초인적인 집중력이 생긴다. 무언가에 관해서 계획, 다짐을 어겨본 적 없다. 무언가에 대해 무제한 토론이 가능하다. (!) 이 중 4가지만 "예"라면 덕후 유망주란다. 이전까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이토록 심오한 덕후의 세계를. 최소 이 정도는 돼야 덕후라고 불릴 수 있는 거였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나 자처해서도 안 되는 듯.



     어느 날, TV를 켜 두었다가 한 사람이 "나는 남편 덕후예요"라고 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남편과 하는 것, 남편에 대한 모든 것, 남편과 보내는 시간이 너무나 좋다고 하는 말을 듣고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덕후질의 대상은 비대중적인, 아니 평상적인 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보편적으로 공인이나 우러러볼 수 있는 대상만을 꼽아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에. 그렇다면 (당시 만나던 애인이 있었기에) 나도 연애하는 대상을 덕후질 한다고 볼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좋아하던 작가의 책은 모조리 사고 북 토크가 열리면 날짜를 기웃거리는 정도는 되었어도, 즐겨 듣는 아티스트의 공연을 한 두 번 가는 정도는 되었어도, 젤리를 좋아해 하리보의 다양한 맛을 즐겨 찾는 정도는 되었어도 과연 덕후라고 불릴 수 있나, 생각해보면 아니었다.



     '덕후'에 대한 고찰이 깊어지면서 자신의 경제력으로 특정 대상에게 넘치는 열정과 돈, 시간, 무엇보다 애정을 쏟고 또 그에 따른 만족감을 성취하는 모습을 부러워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분명 이러한 행위를 함으로써 자신이 가져가는 물리적, 정신적 전취물이 있을 테고, 그것은 내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회일 테니까. 이에 대한 판타지 같은걸 갖고 있다고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도 덕후의 세계에 언젠간 들어갈 수 있을까 막연하게 생각만 하는 중이다.



     결론을 내리자면, 아마도 덕후의 발끝에 겨우 닿는 수준의 취미가 있다고 하면 그나마 책이 아닐까 싶다. (책 덕후라는 용어가 있긴 하지만 내게 적용하기엔 낯설다) 범위가 일정 부분에 한정되긴 했어도 책을 모으는 일은 늘 즐거웠고, 한달 우러급 중 가장 큰 지출은 책 구매이며, 읽고 싶은 책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웃음이 났으니까. 생각해보니 구독한 유튜브 채널 대부분이 북튜브, 즉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채널이고 즐겨찾기로 등록된 사이트도 전부 저널 위주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활자를 읽고 쓰는데 시간을 보낸다. 책을 읽고 노션에 카테고리별로 저장한 후 독서노트를 필사하는 데까지 작업도 나름 빠른 속도를 갖고 있다. 



     누군가를 만날 때, 사회적 자아 이상을 넘어 더욱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단계가 있다. 그럴 때면 꼭 인생 책, 요새 읽는 책, 추천하고 싶은 책 등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서로의 기준에 기본소양으로 치는 책들을 주고받기도 하며. 이를 통해서 상대방을 알아가는 일은 더할 나위 없이 기쁘기에, 언제든 누구를 막론하고 지향할 일이 되었다. 책에 관한 교류라면 나눌수록 좋으니까.



      본질적 의미는 부정적인 뜻이 컸을지라도 현대 사회에서 쓰이는 덕질은 분명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점이 많다. 대상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그로부터 배우고 삶의 긍정적인 원동력으로 삼는 미덕을 발휘할 수 있는 멋진 덕후가 되고 싶다. 사람이든 물체든, 탈을 쓴 펭귄이든 말이다. 다양한 매체와 형태로 메인과 서브컬처 전부를 향유할 수 있는 시대인 지금, 아묻따(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의 줄임말)로 심대한 지지를 보내고 애정을 가질 수 있는 대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특별한 일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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