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사람에 대해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의 인생책을 추천받는 방법은 어떨까.
‘인생책’ 이란 그 사람의 삶 중 가장 큰 영향을 미치거나 가장 최애로 꼽히는 책이란 뜻으로, 요새말 ‘인생드라마’ 나 ‘인생영화’ 처럼, 어떠한 매개체 앞에 붙는 형용사로 쓰인다. 인생책을 추천받는 것을 특정한 사람과 가까워지는 방법으로 꼽는 이유는 이처럼 사람의 가치관, 취향, 지식, 감수성 등이 모두 복합적으로 가미되어 그 사람의 많은 부분을 말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생각나는 지난 인생책들. (현재까지 읽은 책 중에) 꼽는 책으로는 센서티브(일자 샌드),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는 책들(레진 드탕벨), 좋은 이별(김형경), 내 생에 단 한번(장영희), 올 어바웃 러브(벨 훅스), 배움에 관하여(강남순), 정말로 누구나 평등한가?(오즐렘 센소이 등) 등이 있다.
모아놓고 보니 어째 심리, 사회학, 인문학,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관한 조언이 담긴 에세이 등이 주를 이룬다. 상위 1퍼센트의 비밀 같은 자기계발서 또한 손이 잘 가지 않아 평생 읽은 관련 책은 다섯 손가락 안에 접힌다. 소설류 또한 어릴때 읽은 고전 클래식 전집만이 마지막 조우라니. 추천을 받기도하고 슬쩍 내밀기도 하며 책을 통하여 이러저러한 관계를 맺어온 경험은 이렇듯 나를 편협하게 좁히는 방법으로 쓰이기도 하고, 넓혀주는 수단으로 쓰이기도 했다. 많이 읽은 것보다, 얼마나 그 책과 깊게 대화했고 이를 통해 내가 성장했는가를 더욱 중요하게 보는 지금.
김지혜 교수의 선량한 차별주의자 또한 인생책으로 꼽는데, 세상에서 평등을 외치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 혐오와 차별에 대한 책으로 지갑에 현금이 있으면 몇권씩 쟁여놓고 (당시에 교보문고에서 한권에 만오천원이었다) 주위에서 책을 추천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건네주곤 했다. 같이 읽고 밝고 현명한 눈을 갖자는 취지에서 였다. 남성 동료들에게는 여러번 박정훈 작가님의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 부제 -남성문화에 대한 고백, 페미니즘을 향한 연대-와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 를 사서 건네기도 했다. High Education 을 졸업한 친구들과는 교과서로 오즐렘 센소이의 책을 함께 읽기도 하고, 예술사회학에 관심이 있는 뮤지션들과는 그 두꺼운 예술사회학 개론서를 사서, 나눠서, 각각 몇장씩 맡아 읽고 생각을 나눠오기도 했다.
이건 버릴 한 줄 없는 책, 모든 단어와 문장들 하나하나가 보석같은 글. 나의 모든 것을 뒤흔들고 깨어나게 해준 그런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였다. 책에서 얻은 수 많은 것들을, 전부는 아닐지라도 함께 나누고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책을 건넨다. 상대방 또한 나를 생각하며 골라준 책은 그의 내면, 지적 세계를 전부 내게 맡긴다는 의도였을 것이라 믿고 최대한 빨리 읽고 독후감을 써서 보내주거나, 요새는 비대면으로 만나 커피챗을 하기도 한다. 모두 책을 통한 일이다. 이러니 어찌 마음이 책에게, 작가들에게, 소중한 배움의 기회에게 열리지 않을 수 있을까. 열린 자세를 갖추는 것만으로도 배움은 찾아온다.
알라딘 장바구니 보관 가능기간이 넘은 책들... 지우고 또 장바구니에 넣는 일.
나만 그런거 아니죠?
작년부터는 영어로 된 이론서와 프랑스 철학서 등을 읽으며 독서장을 보다 넓게 확장하려 노력했기에, 연구 성격을 띈 책 리스트에서 좀 벗어나자는 취지로 어릴적 좋아하던 케네스 그레이엄 클래식을 다시 읽고 있다. 자기 전 배게 밑에 슬쩍 넣어두고 잘 정도로 영국 고전 문학에 예부터 끌렸었지만 선뜻 시도는 하지 못했던 두꺼운 책들. 알렉산더 밀른이 영향을 받았다는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은 콸콸, 꼴꼴, 찰찰, 왕왕 등 같은 귀여운 효과음이 가득한 숲속 동물 친구들 이야기다. 그들이 내는 움직임을 읽고 있자면 절로 힐링이 되는 기분이 든다. 가끔은 이런 어른들을 위한 동화책도 읽어주자. 그림 동화책도 마찬가지. 텍스트에 조금은 벗어나고 싶은 때 동화책을 펼치면 눈 앞에 꽉 찬 아름다운 그림이 펼쳐질 것이다.
최근 소중한 사람으로부터 추천 받은 책은 닐 도널드 월쉬의 ‘신과 나눈 이야기’. 읽고 인생이 바뀌었다는 이 책은 현재 아쉽게도 번역번으로는 얻지 못해 원서를 구글 북스를 통해 구입해 놓은 상태다. 현재 읽어야 할 책들은 쌓여있지만 최대한 시간을 내 흠뻑 빠져봐야지 생각하고 있다. 전에도 슬쩍 전해 들었던 이 책의 제목은 ‘신과 나눈 이야기’ 지만, 이야기 하는 대상은 가톨릭의 하느님도, 기독교의 하나님도, 불교의 부처님도, 혹은 다른 어떤 특정 종교에서 숭배하는 신도 아니다. 책을 읽어야만 알수 있을 이야기기에 더욱 궁금한 상태.
현재 읽어야 할 저서들은 산 자들(장강명), 페미니즘-교차하는 관점들(로즈마라 파트넘 통,티나 페르난디스 보츠), Teaching community(벨 훅스),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할란 엘리슨), 우리는 왜 이런 시간을 견디고 있는가(강수돌 등) 등이다. 나의 인생책이 되기를 기다리는 셀 수 없는 책들을 리스트에 넣고 부지런히 읽어 매 주, 매 달, 매 년의 키워드를 빈틈없이 꽉 채우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건네 줄 수 있는, 그런 인생책을 찾아나서는 여정을 살아내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