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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일라 May 22. 2020

차(茶)에게 빚을 진 사람


     차는 내게 군더더기 없는 빚이었다. 20대 중반 즈음부터 접했던 차는 우연이였지만, 점차 그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다. 차가 내 입에 머물다 식도로 흘러 내려가는 그 느낌, 다도, 즉 차를 달이거나 마실 때의 예의범절이 좋았다. 찻잔의 밑을 공손히 왼손으로 받쳐 들고 조금씩 음미하듯이 차를 마시는 태도 또한 몸에 밸수록 좋다. 군더더기 없는 선을 그리며 차를 우려내고 따르고 버리고 하는 과정을 수십 번 반복하다 보면 차의 향에서 점차 느껴지는 단맛이 좋다.



     처음엔 차에 대한 올바른 정보와 지식이 없던 나는 체계적으로 배우면서 점차 차에 대한 애정을 늘리기를 택했다. 커피가 아닌 차의 매력에 빠진 것은 당연하게도, 지인이 연습실에 찾아오면 (합정역 근처에 연습실을 꽤 오래 가졌었다) 대접으로 내어줄 수 있는 것으로 차만 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대학 시절 커피와 관련된 각종 음료들을 뚝딱 제조하곤 했었는데, 커피머신을 다루다 보면 움직이는 동작의 보폭이 꽤나 커지는지라 늘 팔을 휘적대곤 했었다. 이는 다른 음료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칵테일 제조에는 ‘쇼’라는 명칭이 붙고 전문직을 요할 정도로 기본기가 필요하며, 셰이커 믹싱 틴을 신나게 흔드는 셰이크 앤 스트레인 기법으로 만들어지는 달코 알 싸름 한 술과 차는 사람의 손을 거치는 과정과 방법부터가 다르다. 차를 우리는데 가장 품이 큰 동작은 물을 따르는 정도니까.



     연습실에 구비해두곤 했지만 딱히 비싸거나 오래 묵힌 차를 낼 형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늘 찾아오는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가지는 데 있어서 차의 가격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타인을 위해 고안해 낸 차에 결정적으로 내가 빠지게 되었고, 이후 차를 마시는 일은 하루를 시작하는 중요한 루틴이었다. 아,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는 질보단 양이였던 듯 하다. 그만큼 자주, 많이 마셨다. 오전엔 조용히 혼자 마셨고 오후엔 찾아온 친구들과 함께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요즘 대세인 보이차는 70~80년대 산이라고 하는데, 내가 마셨던 차는 몇 년 산이였을까. 년도, 품질 등을 따질 수 있지는 못했지만 한 가지 제대로 경험했던 것은 바로 차를 준비하고 마심으로써 정화되는 자신이었다. 이는 상담도, 약도, 잊지 못할 밤도, 연애도, 음악도 정화시키지 못한 영역이었다.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올라오는 감정들에 차는 무게추를 달아 천천히 가라앉게 하는 중후한 힘이 있었고 나는 종종 그 힘을 이용해 시끄러운 생각들로부터 멀어지곤 했다.



     보이차는 차나무 잎을 발효시킨 중국 운남성 보이현에서 만들어진 전통 발효 차이다. 찻잎을 가열한 후, 수분을 적당히 머금게 한 다음 대나무 통이나 상자에 넣어 미생물을 번식시킨다. 이후 미생물이 분비하는 효소에 의해 차가 발효된다. 처음엔 보편적으로 보이차 (생차, 숙차) 등을 마셨지만 히비스커스로 점차 넓혔고 편하게 마시게 되면서 양을 점차 늘렸다. 아침에 일어난 후 스트레칭을 하고 나서 급한 이메일, 연락들을 처리하고 나면 가장 먼저 차로 손이 갔고, 이를 몇 년 동안 반복하고 나니 그동안 마신 양을 가늠해보면 꽤 많은 편이다. 연습실에 들어서면 늘 차의 향긋함이 늘 퍼져있었기에 (지인이 향초를 선물해 주었는데 켜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점점 차를 마시러 넘어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1차로 밥, 2차로 술, 3차로 다른 술집의 무한반복 궤도를 돌던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의 만남을 지향해왔기에, 같이 차를 같이 나누는 시간이 그렇게 좋았나보다.



     ‘정신문화’로 통하는 차는 마시는 법이 따로 없다. 물론 우려내고 마시는 행위의 순서와 방법은 존재하지만, 나는 분위기보다는 차를 마시는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더 좋았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한 공간에서 내 앞에 앉아있는 사람과 함께 차를 마시고 기운을 나누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었기 때문인데, 그도 그럴 것이 찻잔을 기울이고 덥히고 또 따르고 하면서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매번 상대방과 일정 부분 통했다. 늘 편안했다. 복잡한 갑정의 찌꺼기가 올라와도 차를 기다리다 보면 서서히 가라앉아 균형 있는 태도로 대할 수 있었고, 찻잔이 비진 않았나, 차의 온도는 괜찮은가 등을 생각하다 보니 배려가 몸에 점차 배었던 것이다.



     차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지인들도 찬물에 우린 차를 입에 담아 혀로 굴리는 느낌으로 음미하는 기쁨, 특유의 감칠맛을 즐기게 되는 것 등을 만끽하게 되면서 연습에 지치면 내 방을 찾아오곤 했다. 솔로가 너무 그지 같다, 밴드를 때려치워야 하나보다, 계속 박을 저는데 한의원에 가야 하나 등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찻잔을 잡고 멘탈을 진정시키곤 했다. 힘든 시기를 버틸 수 있게 도와준 것은 다름아닌 차 였던 셈이다. 연습실을 몇 번 옮기면서 분위기에 따라, 사람들에 따라 차를 내어주기도 못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차는 내 추억이자 고마운 인연들을 한데 묶어주는 고마운 매개체였다.



   가끔  차를 걸러야 할 정도로 바쁜 날엔 다음 날 마실 차를 생각하며 일정을 버텼고, 카페가 아닌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을 섭렵해 알아보고 약속을 잡기 시작했다. 과거에 만났던 남자 중 한 명은 차를 마시는데 필요한 도구들을 세팅하고 우리고 마시는 데까지의 기다리는 과정을 어려워하는 사람이었는데, 나를 만나면서부터 점점 차에 빠지게 되었다. 얼죽아 ‘얼어 죽어도 아이스커피(아메리카노)’ 였던 한 사람의 취향이 바뀌는 것을 목도하고선 차의 힘을 실감했다. 차를 마시는 시간이 그 정도로 좋았던 걸까.






     슬픈 반전은 프랑스로 넘어오면서부터다. 비자를 준비하고 어학원을 등록한 후 점차 세부적인 것들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점점 시간을 내야만 마실 수 있는 차는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났고, 처음 몇 번의 실패와 반복된 시도로 파리에 정착하는 데 성공했으나 조촐한 행색을 유지하는데도 벅찬 나는 도구들을 매번 가져오자 다짐만 하고선 정작 행하지 못했다. 차를 사곤 했던 구입처로부터 좋은 차가 들어왔다 (카페에 알림이 뜨기에)는 글이 올라오면 가끔 들어가서 읽기는 하지만, 더 이상 차는 나를 깨워주는 요소가 아니게 되어버렸다.



     가끔 그런 날이 있다. 침대에 누운 지 한 시간 째 머릿속 떠다니는 생각들이 도저히 진정되지 않을 때. 창문 밖 거리에서 미묘하게 들려오는 소음에 잠에 들기가 어려웠는데 어이없게도 아침에 깨는 것은 순식간인 날. 잠을 잔 건지 잠시 눈을 감았다 뜬 건지 모르겠는 쿰쿰한 기분의 날. 수면은 하루를 이루는데 필요한 다른 어떤 요소보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편이라 덜 민감하게 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수면 상담, 처방, 수면 등, 침실 배치, 화이트 노이즈 등 내가 할 수 있는 조치는 전부 해봤지만 그때뿐, 실질적으로 효과가 있는 처방은 없었다. 한 번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인터넷 네이버 지식인 창에 ‘잠에 잘 드는 법’이라고 쳤더니 뭐가 나왔느냐면, 몸 근육을 풀어주고 잠에 잘 들게 해주는 것 중 자위만 한 게 또 없단다. 네이버 지식인에 올라온 답변이라고 해서 과학적 증거나 연구가 부족하다는 편견은 갖고 있지 않지만 내가 봐도 좀 터무니없어 보였다.



     여하튼, 이런 잡다한 지식(이라고 할만한 건지는 모르겠지만)을 찾아볼 정도로 나는 절박했다. 몇 년 전부터 시작된 불면증은 여러 복합적인 원인들을 거치고 발전해 작년 11월 말쯤 고조되었다. 어떻게든 푹 잘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에 대한 글도 쓰고 연구를 찾아보고 책을 읽고 자문을 구하는 등 여러 사례를 거쳤지만 도움이 되는 것은 딱히 없었다. 그러 던 중 올해 신정이 되기 전, 친구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시인이자 승려, 독립운동가였던 선생님이 생전 거주하셨던 한옥이다. 초대를 몇 번 받았지만 한국에선 일정이 워낙 빠듯하기도 하고 미안해서 고려하지 못하다가 친구가 차를 내어주겠다는 말에 이끌리듯이 응하게 되었다.



     오늘은 잠을 잘 수 있을까. 내일 일정은 뭐였지. 출판 관련 미팅을 미뤄야 하나. 그 기획 데드라인은 언제였지? 파리 집에 물이 샌다는데 (당시 친구가 집을 맡아주고 있었기에) 불러서 잘 처리했나?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하는 오만가지 생각이 집요하게 날 따라다녔다. 이런 복잡한 머리를 들고 가서 과연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기에 가는 길에 큰 숨과 날숨을 계속 내쉬어야 했다. 친구의 집에 도착해 인사를 하고 안내해주는 대로 거실에 가보니, 테이블이 좌식이었다. 친구가 건네준 방석을 펴고 앉았다. 그러자 멀쩡하고 자연스럽게 다도가 시작되었다. 처음엔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퍼지는 차의 향에 몸속 세포들이 깨기 시작했다.



     아, 한국에서 다시 차를 마시게 되다니! 그것도 한옥에서! 기분이 새로웠지만 익숙한, 만난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쭉 알고 지냈던 사이 같은 편안함을 느끼며 친구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대화 주제를 준비해 간 것도 아니었는데, 실로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는 차의 힘이었다. 이를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의 집에서 돌아온 후 다시 이리저리 일정을 조율하다가 침대에 누웠다. 잠에 들기 전 코 끝에 남은 차의 향을 기억해내려 애쓰다 보니 문득, 내가 파리에 차를 가져가지 않은 이유가 떠올랐다. 물론 딱히 한 가지를 꼽을 수는 없었다. 이유는 수만 가지였다. 매번 다른 위치와 이슈에 따라, 흐름과 정황에 따라 달라지는 삶의 레퍼런스를 감당해 내기 어려웠던 나는 차를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살았다. 별 것 아닌 이유였지만 나열해놓고 보니 이제 알겠다. 차를 생각할 수 있을 만한 여유를 가지지 못했던 거였다.



     무엇이 '진정한' 차인이며, 정확한 다도는 무엇인지 평가하는 것은 당시엔 불가능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차를 마실 때만큼은 좋았다는 것. 적절한 사회생활 태도를 신경 쓰는 일로부터,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해준 것은 다름 아닌 차였다는 것. 구멍에 빠져도, 겁을 내더라도 나 자신부터 챙겨야 했다는 것. 불화와 불운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정신이라는 것. 사람들은 원래가 대다수 형편없고, 20대 초반에는 더더욱 형편없다는 정세랑 작가의 말처럼 휘몰아치는 감정과 사건들 때문에 나 자신을 자책하지 말아야 했다는 것 등을 배웠다. 차를 마시면서.



     그 날 나는 푹 잤는지, 도중에 나쁜 꿈을 꾸어 깨지는 않았는지 기억이 나진 않는다. 하지만 희미하게 지펴진 차에 대한 애정은 그 후 꽤나 자주 길어 올려졌고, 그럴 때마다 코 끝에 남아있는 차의 쓴 향은 나를 일깨워주기에 충분했다. 내가 얼마나 차를 좋아했는지. 차를 마시는 시간을 얼마나 좋아했으며, 차를 따라주는 상대의 눈과 입과 귀를 얼마나 오랫동안 바라보았었는지. 그리고 나 또한 상대방의 눈길에 얼마나 오랫동안 데워졌었는지를.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의 정희진 작가는 감정은 최종 정치학이라 했다. 한 사물에 대한 의미를 재구성하는 것만큼 최종적인 행위가 있을까. 차에 대한 감정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머물다 간 차의 향을 잊지는 않을 테다. 그때 그 시간들도, 나를 붙들어준 차의 힘도 그리고 사람들까지 모두. 다시 차에게 빚을 져야 한다면 아마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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