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자아 성찰, 자기 반성이라는 키워드를 조금 덜 생각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물론 생활 전반에 자연스럽게 배어든 성찰의 습관 덕분인지, 의식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어느정도는 스스로를 돌아보는데 익숙해졌다는 생각이 조금은 들어서였다. 하지만 감정적인 사고와 머리속으로 떠올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미디어에선 사람의 캐릭터의 특성으로 용감, 유능함, 관대함, 꼼꼼한 등의 형용사를 쓴다. 이 중에서 나를 나타내는 한 가지로 골라야 한다면 난 감히 지혜로움을 선택할 것이다. 모든 것을 아우르는 지혜로움을 갈고 닦아 선한 영향을 가진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면야, 영혼이라도 팔 수(이것부터 전혀 지혜롭지 않지만) 있을 것 같으니까. 그만큼 늘 바라오기도 했던 형용사였다.
일리이즘 (illeism) 이란?
생각의 전환에 평소 관심을 두던 차에, 이에 관한 연구를 발견했다. 작년 8월에 페퍼민트 뉴스에 게재된 기사로 떠올려보자면 여러 연구들이 율리우스 시저가 좋아했던 수사학인 '일리이즘 (illeism)', 곧 자신을 3인칭으로 표현하는 방법이 자기 반성에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이 용어는 시인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가 1809년 라틴어로 '그, 그것'을 의미하는 '일레(ille)를 이용해 만든 단어라고 한다.
일리이즘 방법으로 생각하는 것은 간단하다. 내가 겪었던 일 또는 처한 상황을 속으로 '나는 어제 숙제를 하지 않았다' 가 아닌, '영미는 어제 숙제를 하지 않았다...', '영미는 어제 친구와 싸워서 기분이 나빴다...' 고 타자처럼 상황을 바라보고 성찰하는 것이다. 나 자신을 3인칭을 두고 상황을 정리한 후 다시 설명하는 일은 여러 연구를 통해 의사 결정 능력을 높여주고 더욱 겸손해지며 다른 이의 입장을 더 잘 고려하게 된다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진정한 지혜로움이란 무엇일까. Covid-19 바이러스가 대륙을 쓸어버린 이후로 현대 키워드는 상대의 입장에 서기(taking the perspective of others)가 된 오늘. 전 세계가 실천하고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는 나 자신의 건강이나 일상을 위해서가 아닌 내가 감염 시킬 수 있는 이웃, 가족, 친구 즉 타자를 위한 일로 귀결된다. 기사에서처럼 다양성을 포용하기, 나의 권리를 내세우기 전에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하기, 대안을 찾는 능력 등-아마도 지혜로움엔 이러한 요소들이 들어간다는 것에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지금이야 100% 원격 레슨을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 나는 늘 방문 레슨으로 아이들과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의 말문을 여는 처음 단계는 늘 안부 묻기다. 얼굴을 마주하고, "안녕! 수진이는 어제 뭐했어?" 를 묻는다. "선생님! 저는 어제 엄마와 떡볶이를 해서 저녁으로 먹었어요. 선생님은 주말 어떻게 보내셨어요?" 어렵지 않게 이처럼 서로의 일상을 묻는 것이다. 간단하고 채 몇 분 걸리지 않는 이러한 대화 속에서 나는 종종 일리이즘을 떠올리곤 했다. 바로 어제 일어난 일 조차 감정의 찌꺼기를 가라앉히지 못해 붕 떠다니기 일쑤였던 일상이, 상대방과 주고 받는 안부 속에서 비로소 정리가 되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실제 이러한 방법을 씀으로서 감정 조절 능력과 정서적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 연구를 통해 드러났고, 한 실험에서는 3인칭 관점으로 일기를 썼던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더 정확하게 예측하고 스스로 부정적인 감정을 감출 수 있었다고 한다. 이는 곧 다른 이와의 관계에도 더 잘 대처하게 만들었다는 결과가 있다. 일리이즘을 이러한 개인의 성찰이라는 맹목 하에 쓰인다면, 이 방법만큼 지혜로워 질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는 것 같다.
"선생님은 사실 어제 읽고 싶었던 만큼 책을 읽지 못했고 운동도 하지 못했어. 그렇지만 저녁에는 맛있는 저녁을 차려먹고 긍정적으로 하루를 돌아보고 기운을 냈던 것 같아." 연구에서처럼, 감정을 통제하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나 자신을 3인칭으로 생각하면 이러한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생각하는 만큼, 원하는 만큼, 보는 만큼 나 자신은 더욱 크게 자란다. 나 자신을 돌아보는 방법으로, 나의 감정과 행동을 더욱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리이즘의 방법을 알게 된 후 나의 삶은 훨씬 더 긍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쪽으로 변화했다. 나를 아는 것만큼 확실한 승리는 없다. 나의 한계를 긋지 않고 더욱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에 도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