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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일라 Apr 23. 2020

SNS 피드로 읽는 우리의 삶

    살다보면 자연스레 멀어지는 사람도, 찾아왔다가 금새 사라지거나 우연한 기회에 만나 친해져 오랫동안 이어오는 만남 또한 존재한다. 스쳐지나간 인연을 두고 곱씹는 아쉬움 가득한 20대를 지나왔거 곧 서른을 앞두고 있지만, 생각해보니 후회는 없다.



    며칠 전, 우연히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친구계정의 포스팅에 달은 댓글을 보고 클릭해 그의 피드를 보게 되었다. 한때는 꽤나 왕래했고 친했지만 이제는 잘 기억나지도 않는 여러 이유로 교류가 끊긴 사이였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지난 날에 나를 스쳐지나간 인연을 다시 보게 되니 잘 살고 있나 불쑥 궁금증이 올라와 몇분간 그의 피드를 정독했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SNS Feed 피드로 나의 관심사, 가치관, 일상 등을 표현한다. 중요한 소통 수단이 되어버린 현대인의 매개체 SNS 는 ‘Social Networking Service’ 의 줄임말이다. 나를 어떤 사람으로 내 보일지 ‘선택적’으로 설정하는 Facebook, Instagram, Twitter 등 다양한 플랫폼들을 지칭한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네트워킹 망 안에 존재하는 셀 수 없는 사람들, 그 속에 과연 내가 남긴 향을 간직하고 사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어떤 방식으로든 내게 한 인상을 남기고 떠난 사람들의 삶은-나도 그렇듯이-전과 크게 달라진 점이 없어 보였다. 그 친구의 피드레선 사실 정독할만한 흥미로운 점도 찾지 못한데다가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또는 그렇게 보이는 모습을) 봤으니 됐다, 싶어 내리던 피드를 멈추고 핸드폰 화면을 껐다. 나 또한 매일 무너지거나 일어나고 되풀이되는 일상을 살아내며 그 중 떨어지는 부스러기 같은 조각들을 모아 포장해 피드에 올리곤 한다. SNS속 보여지는 모습으로 한 사람을 온전히 평가할 수도 없으며 해서도 안된다는 주의다.



페이스북이 내가 8년 전 올린 사진이라며 회자(?)시켜주었다. 이런 신박한 시스템이라니!


    돌이켜보면 20대에 휘둘리고 또 불안했던 나와 타자와의 관계 사이엔 무수한 상처가 존재했다. 제대로 곁을 내어 주고 보듬어줄 방법을 알지 못했던 서로는 말 한마디에 쉽게 떨어져 나갔고 돌이킬 수 없는 회복불가능의 사이가 되는가 하면, 오히려 엉뚱하게 숨은 마음을 열고 지금까지 사유를 함께 나누고 응원하는 돈독한 사이가 되기도 했다. 좁고도 넓은 내 지인 울타리망 안에 있던 몇십명의 사람들을 얘기하자면 말이다.



    프랑스로 유학을 오면서 사실 왠만한 얕은 관계들은 알아서 정리가 된 운 좋은(?) 케이스여서 그런지,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몇 사람들과 카톡 하나로 연락을 주고 받으며 지난 몇년간의 세월동안 바다를 넘어 특별한 정을 나눴다. 겉치례로 연락하던 사이나 눈에서 멀어지니 마음도 멀어진 사이, 일하며 오다가다 만난 동료들 등은 대부분 내가 소심이 뜸하자 자연스레 연락이 끊어졌고, 일명 ‘Toxic relationship’이라 불리우는 ‘중독적 관계’ 였던 사람들과도 미련없이 단절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운 좋을 만 했다. 바다를 건너오면서, 넘쳤던 관계의 홍수 속에서 진정으로 나를 돌아보지 못하고 결국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한 상황으로까지 이어졌던 지난 날들을 성찰할 기회를 손에 쥔 것이다. 지금도 실수를 하거나 대화 속 포용하지 못하는 부분을 마주하는 일도 종종 있지만 (당연하게도), 덕분에 담백하고 가벼워진 관계의 지갑은 현재 더욱 사랑과 의리로 나날이 살이 찌고 있다. 며칠 전 걸려온 친구의 따듯한 안부 전화에도, 넘어지길 반복하는 내 마음에도 그렇듯이 말이다.



    나의 피드에 드러나는 선택적인 글과 사진으로 타자와 소통하는 방법을 취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SNS 앞에 무릎을 꿇었던 작년이 지나고 지금은 또 다시 중독 전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시도때도 없이 피드를 열어 시간을 낭비하는 수준은 아니라 해도 가끔 올리는 나의 게시글에 대한 반응은 궁금하기 때문에 꽤나 자주 핸드폰에 손을 대는 편이다.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된 SNS속 타인들의 삶을 구경하거나 함께 소통하는 일은 생각보다 즐거운 일에 속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지나가는 시간 속 존재했던 나와 타자간의 간극은 사실 그리 깊지 않았지만, 아쉽게도 스무살의 나는 알 수 없었던 듯 하다. 나와 어떠한 연결고리로 이어진 모든 사람에게는 내 곁을 아낌없이 내주어야 한다고 믿었고 또 실제로 상처받는 한이 있더라도 나의 시간과 마음을 다해 애썼다. 결국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흘러 좀 더 자란 당신이 해결해 주는 것 이였을수도, 아니면 그대와는 인연이 아니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실패하잖아. 누구나 돌아설 때가 있어. 우리는 각자를 견디며 사는 거야. 괜찮아.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의 무게를 억지로 짊어지고 갈 필요는 없어. 구질구질해지기 전에 떠나는 것도 괜찮은 거야.” 어디선가 읽고 기억하는 문구다. 특정한 사람에 대한 마음의 빚을 가지고 있다면, 그를 추억함으로서 나의 미련을 살짝 내려놓는 것도 방법이다. 그렇다고 그 관계가 실패한 것은 아니니 걱정하지 말자. 관계에 ‘온전함’ 또는 ‘불완전함’ 이 어디 있겠는가. SNS에서 크게 기대하는 것은 없지만,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이면중 한 '면' 을 들여다보는 일을 나 자신을 비추는 도구로 삼는다면 언젠가 이를 통해 또 다른 관계가 시작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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