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사랑 영화를 추천해달라고 할 때마다, 나는 외려 묻게 된다. 그 질문이 사실은 "나 지금 위로받고 싶어"라는 뜻임을 알기 때문에. 벨 훅스는 『올 어바웃 러브』에서 사랑을 감정이 아니라 의지적 행위로 정의했다. 느끼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것. 그 책을 읽고, 함께 읽자는 사람들이 모였고, 그 대화들을 묶어 또 한 책을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누군가 사랑 영화를 물어올 때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어떤 영화를 꺼내도 결국 그건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의 상처를 위한 것이고, 나는 그저 서랍을 열어주는 사람으로 남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까. 따라서 되물을 수 밖에 없게 된다. 대체 '어떤' 사랑영화? 인물의 성장 중심, 사랑 서사 중심, 계급, 인종, 위치 및 역사적 배경 중심, 아니면 그리움, 후회, 미련 같은 감정을 따라가는 중심의 이야기? 늘 손이 가는 '아는 맛'의 사랑 영화들은 많지. 하지만 그중 어떤 씁쓸함과 선택을 교차해 욕망을 드러내고 또 감정을 투여하는 주인공들을 따라갈 건지는, 수십 수백 개의 갈래로 나눠지는 일이라 추천해주기 쉽지가 않은 일.
가끔가다 꺼내보고 싶어지는 서랍속의 영화들. 패스트 라이브즈 (2023), 아무르 (2012), 캐롤 (2015), 윤희에게 (2019), 헤어질 결심 (2022), 만추 (2010), 하트스토퍼 (시리즈), 너에게 닿기를 (시리즈), 반쪽의 이야기 (2020), 머티리얼리스트 (2025), 콜미바이유어네임 (2017) 등등 내게 '사랑'을 말하는 비교적 큰 영화관에 걸린 영화들-즉 어느 자리에 가서도 꺼낼 수 있는 보편적인 인지도를 가진 영화들, 누구나 아~ 그거 하는 영화 타이틀 들은 많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감각은 오히려 더 둔해지는 것 같았다. 사랑에 대해 오래 생각할수록 사랑은 더 멀어지는 것처럼. "통제할 수 없는 감정과 도덕적 상황 사이의 갈등을 보여주는 그 씬 있잖아. 에라 모르겠다... 생각이 안 나." 멈추고 말게 되는 적이 종종 있었다.
사랑에 대해 글을 써왔지만, 의도적으로 건드리지 않은 영역이 있다. 모노가미냐 폴리아모리냐 같은, 관계를 구조적으로 정의하는 질문들. 그건 사랑의 형식이지, 사랑의 감각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쓰고 싶었던 건 언제나 그 아래의 것들이었다. 이름 붙이기 전의 감정. 선택하고 나서도 남는 흔들림. "사랑은 타이밍이다"라는 말을 믿고 싶다가도, 타이밍이 맞아도 안 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아왔다.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라는 말도. 돌아오지 않는 경우를 알면서도, 그 말이 어느 날 밤 갑자기 납득될 때가 있는 것처럼. <헤어질 결심>에서 서래에게 "참... 불쌍한 여자네"라는 말이 떨어질 때, 사랑의 깊이를 알아보면서도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사람의, 가장 솔직한 문장을 볼 때. 나는 그런 장면에서 오래 멈추게 된다.
중경삼림의 임청하는 말했다.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나의 사랑은 만년으로 하고 싶다고. 그 말은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사실은 무엇보다 슬픈 문장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싶다. 만년을 바라는 마음과 달리, 모든 사랑은 어느 지점에서 선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계속할 것인가. 내려놓을 것인가. 머물 것인가. 떠날 것인가. 감정은 통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이후에 무엇을 할지는 언제나 선택이다. 벨 훅스가 사랑을 의지라고 불렀던 건 아마 이 지점이었을 것이다. 사랑은 느껴지는 게 아니라, 매일 다시 선택되는 것. 그리고 그 선택이 가능해지는 순간이 있다. 갈수록 모르겠다가, 그러나 어느 날 다시 한 발을 내딛게 되는 순간.
그래서 나는 지금도 사랑 영화를 본다. 정답을 찾으려는 게 아니라, 장면을 모으기 위해. 어떤 영화의 어떤 장면이 내 안의 무언가에 불을 켜는지 확인하기 위해. 사랑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른다. 관계가 어떤 형태여야 하는지도 쓰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 형식에 대해서는 알 수 없을 것만 같다. 다만 한가지,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 멈춰 있던 사람이 다시 한 걸음을 내딛게 만드는 것. 그게 사랑이고, 그게 사랑의 장면이지 않을까. 영화 속에서든, 내 삶의 어느 늦은 밤에서든. 꺼냈다가, 다시 넣는다. 어떤 장면들은 꺼낼 때마다 조금씩 다르게 읽힌다는 걸 알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