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기반이 무엇으로 쌓이고 있는지, 본질부터 얘기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왜 우리는 스스로 한없이 나약하고 불완전하게 느끼는가. 사랑과 불안 사이에 서있는 이유는 뭘까. 자신에 관한 것일까, 아니면 앞으로의 미래일까. 하루에 수십 번도 바뀌는 행동과 생각은 이성적으로 바라보려 해도 자꾸만 흔들린다. 우리는 전에 만났던 사람들과 어떻게 지냈는지, 그 관계로부터 가장 추구했던 것과 중요하게 여긴 것은 무엇이었는지 반추하곤 한다.
마지막 안녕을 두고,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 한 장면을 떠올린다. 떠나온 사람들의 안부를 묻고 또 스스로에게도 묻는다. 사랑에 빠지면 우리는 너무나 많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곤 한다. 이렇게 좋은 게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묻는 동시에 갈 데까지 가보자는 속없는 마음이기도 하다. 나를 필요로 하는 상대가 약함과 부족함마저 감싸줄 수 있는 인연이었다면 — 과연 더 넓고 큰 그릇이었다면, 서로를 이해하는 데, 되돌리고 싶은 장면으로부터 헤어나오는 데 충분했을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허무하게 끝나진 않을 수 있었을까. 함께 세웠던 미래 계획들이 전부 무너지고 없던 것으로 되돌아가는 것, 그것이 관계인걸까.
사랑에 빠지면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한다. 삶의 목표를 꺼내놓기도 한다. 지난 언젠가, 누군가는 히어로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일상적 의미에서 히어로란 우리가 속한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우리는 그 안에서 산업의 톱니바퀴처럼 살고 있으니까. 공장이나 차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큰 틀에서 사람과 산업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 그 안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결국 그것도 어떤 관계를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가 아니였을까. 이런 고민들 가운데서 답을 찾는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이야기하고, 시간은 빠르게도 흐른다. 사실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지 않는가, 사랑이 뭔지를. 다만 언어의 한계 탓에 끝내 말로는 다 담기지 않고 우리는 그 언어의 경계 어딘가에 기대어 글을 쓰거나, 누군가를 붙잡거나 할 뿐.
그런 관계 속에서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두렵고 약해지는 지점을 다 드러내고도 손을 내미는 일이 패배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누구나 더 좋아하면 관계에서 열위를 갖는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구조가 아닐까. 사람과 상황은 늘 다르고, 어떤 관계에서도 힘의 균형은 고정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 하는 것은 우위가 아니라 주체성 그 자체가 된다. 특히 성적인 관계에서 사람은 주체이면서 동시에 대상이 되니까. 욕망은 언제나 방향이 있고, 우리는 상대를 향해, 또 상대로부터 무언가를 취한다.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매번의 관계에서 그것을 조율하고 타협하고 협상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주체성이며, 그 안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없으므로.
문제는 성적 대상화처럼 오직 성적이기만 한 존재로 환원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누군가는 이렇게 주장하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 대상화가 '되어야' 한다고. 대상이 되지 않으면 타인과 관계를 맺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타인의 대상이 되지 않으면, 어떻게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는가. '진다'는 것에 대한 편견, 더 많이 원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고정관념-우리는 저마다 그 안에 발을 담그고 있다.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어쩌면 관계를 대하는 첫 번째 용기일지도 모른다.
관계와 주체성에 대해 몇 단락의 글을 써 둔 지 1년 정도가 지났다. 그 글 속에는 지난 기억들과 정의들, 사람들과의 대화가 마구 엉켜있다. 자신의 경험이 어떻게 쓰이고 읽혀야 하는지는 그 누구도 대신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결국 자기 자신만이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자꾸만 잊는다. 어떤 것이 공이고 사인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사랑이고 기다림인지, 시작인지 끝인지 알 수 있는 날이 오긴 할까.
그래서 사람들이 마주하는 모순은, 사실 서로 모순된 게 아니라는 결론으로 돌아온다. 욕망은 얽혀있고 맞물려 있는 것이 자연스러룬 거니까. 어떤 자연스러움이냐 하면, 특정 종류의 좌절이나 슬픔을 그냥 지루하다고 여기고 흘려보내는 태도와 연결된 자연스러움이다. 자기 안의 복잡한 것들, 특히 욕망과 관계에 관한 것은 꺼내기가 가장 어렵기도 하고. 모순과 갈등,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풀어야 할지 까다롭다.
하지만 우리는 또 관계를 맺기를 멈추지 않는다.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로, 지지 않으려 하면서도 결국 손을 내밀고, 언어가 부족한 줄 알면서도 말을 꺼낸다. 관계의 기반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사랑인지, 두려움인지, 아니면 그 둘이 결국 같은 것인지도. 하지만 우리는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멈출 수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