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일라 Mar 13. 2020

Acronym, 두문자어란

  

일상에 물음표를 붙이는 순간 배움은 시작된다. -강남순


    누군가에게 한 개념 Idée 를 설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나는 그 이데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이 말을 몸소 실천하기 위해서 내 생활 속 모든 일을 하나하나씩 파헤쳐 보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단어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첫째로는 자주 쓰는 용어의 뜻 찾아보기다. 오래전부터 쓰던 수많은 정확한 뜻을 알지 못하고 짐작만 하던 수많은 용어, 외래어, 한국어, 한자어, 또는 아크로님들이 있었다. 한번 정리해보고, 두 번 읽으면 세 번째에는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내 주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말들로는 주로 음악 관련, 컴퓨터 관련 용어가 많은 편이었다.


    Ph.D 는 예전부터 닥터까지는 알고 있었으나 어느 닥터인지 몰랐다. Doctor of Philosophy. 여기서 Philosophiæ는 본래 의미인 철학이 아니라 중세대학의 4학부 중 기초학부를 지칭하는 독일어인 Philosophische Fakultat에서 기인한다고 한다. 현재 석사 학위를 가리키는 단어 master도 본래 doctor와 비슷한 뜻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doctor가 더 높은 수준으로 대우받게 되었다고. 지금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친구들도 정확한 유래는 위키를 찾아보고 알았다는 건 비밀이다.



    PDF는 의외로 주위에서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Portable Document File의 아크로님이다. 비슷한 용어로 JPEG 가 있는데 바로 Joint Photograph Experts Group의 약자로, 제이펙이라고 발음한다. 늘 제이피지라고 읽었었는데.. 역시 아는것이 힘이다. 매일 쓰는 MIDI 미디는 무슨 약자일까. 바로 Musical Instrument Digital Interface 라는 용어를 줄임말이다. 현재는 쓰지 않지만 시디롬이라고 예전 데스크톱의 본체에서 시디를 넣는 부분을 일컫는 말이 있었는데, 이것또한 약자. Compact Disc read-only memory 콤팩트 디스크 (읽는 용) 이라는 뜻이다.



    전에 가르치던 학생에게 레이저가 사실은 Light Amplification by Stimulated Emission of Radiation의 아크로님이라고 알려줬더니 충격을 받던 모습이 기억이 난다. 내 생활 속 수많은 용어가 사실 잘 알지 못한 채로 방치되어 있다는 걸 알면 공부가 재미있어 진다는 사실.


    미국에서 제일 많이 먹던 초콜릿 브랜드인 M&M도 사실 창립자인 Mars & Murrie’s 의 이름은 딴 것이었고, IKEA도 창시자인 잉바 캄프라드가 그의 이니셜을 따 (I.K.) 를 먼저 세웠고 그 후에 Elmtaryd(E) 를 붙인 후 마지막으로 그가 자란 동네의 이름인 Aguannaryd(A)를 붙여 이케아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명절 때 의례 선물 받는 스팸도 돼지의 어깨살이라는 뜻으로 Shoulder of Pork and Ham 줄여진 말이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한때 붐이었던 야후 Yahoo! 도 신날 때 내는 소리가 아니고, Yet Another Hierarchical Official Oracle의 아크로님이다. “야 후~~우우!”로고 멜로디가 엄청나게 캐치해서 부르고 다녔던 기억도 나고. 펩시도 원래는 “Brad’s Drink”라는 이름이였으나, 사장이 더 나은 이름 Dyspepsia (소화불량)이라는 단어에서 펩시를 고안해 냈다고. 이건 바로 소화불량일 때 먹는 음료야! 하고 정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BMW는 미국에서 흔히 내 창문을 깨줘-Break My Window 라고 불린다는 유머가 있는데, 독일과 관련해 좋지 않은 이미지 때문이 아닌가 싶다. 확실하진 않아 미국에 있는 몇 친구한테 물어보니 들어본 것 같기도 하단다. 프랑스 기업 중 꽤 큰 규모를 자랑하는 랑콤 Lancome 은, 프랑스 시골에서 휴가를 보내면서 방문한 Le Chateau de Lancosme 성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고 한다. 회사 상징인 장미에 대한 그의 영감은 성 주변에서 자라는 많은 야생 장미들이었다고.


    또 한 가지로 예상하기 쉬운 이름으로는, 작은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나타내는 영어 낱말로 만들어진 트위터 Twitter가 아닐까? 상징 자체도 작은 파랑새가 날아가는 모습이니까. 타임 매거진도 ‘시간’을 나타내는 뜻이 아니라 The International Magazine of Events의 아크로님이라고 하니 이쯤 되면 영어로 불리우는 모든 사물의 이름들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되는 거였나 싶다.



    사실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약자로 SOS가 떠올랐는데, 찾아보니 아무런 뜻이 없었다. 3 가지 점, 3가지 점선, 3점의 모스 부호 표현에 대한 고민의 신호로 선택되었다는 설명이 있다. 역시 언어는 내 주위 모든 사물과 다방면으로 직접 연결되어 있었고,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던 나의 수준이 심히 부끄러워진다. 당연하게 흘러가는 것들을 붙잡고 내 주변을 돌아보면 생각보다 많은 의미와 역사가 점선처럼 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공부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외에도 수많은 아크로님을 찾았는데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단어를 얘기하자면 ‘LOVE’ 사랑이다. 사랑은 한가지 뜻이 있는 것이 아니다. Life's Only Valuable Emotion 삶의 가장 가치 있는 감정, Living One Vibrational Energy 살아있는 하나의 진동 에너지, Let Our Violence End 우리의 폭력(전쟁)을 끝내자, Look- Observe-Verify-Enjoy 보고, 관찰하며, 확인하고, 즐겨라, Living Our Values Everyday 매일 우리의 가치를 지키기 등 수많은 뜻으로 해석된다.



    이 같은 두문자어를 통해 내가 평소에 사용하는 언어의 종류와 그 참 뜻을 진정으로 깨닫게 되었을 때, 특히 다같이 알면 (더) 좋으니까, 지인들과 나누었더니 신선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재미있는 대화 주제이기도 해 몇 번 모임에서 다들 할말이 떨어졌을때 꺼냈더니 다들 신이 나 경쟁하며 다른 단어들을 찾아보기까지 했다. 



    글을 쓰기 전 끼고 며칠 내내 읽었던 '한글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것'(책과함께) 에서 찾은 재미있는 사실. 세상에는 5000여 개의 언어가 존재하는데 (이것부터 놀랍다) 그중에서 문자를 갖고 있는 언어는 100여개에 지나지 않다. 그 중 한글처럼 창제자와 창제연도, 창제목적이 분명한 언어는 많지 않다. 재미있는 점 하나를 추가하자면,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용비어천가' 가 처음 한글 가사로 쓰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1445년에 한문 가사로 편찬되었고, 1447년에 이를 한글로 번역해 한문 가사와 함께 엮어졌다고. 



    이 처럼 문학쪽으로 세세히 나눠지는 언어의 여러 면을 역사적으로 바라보면 얻는 것들이 많다.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지, 누가 왜 만들었는지 하는 것들 말이다. 현재는 한글로 글을 쓰고, 프랑스어로 주로 말을 하고, 독서모임에서 읽는 책은 영어 원서이다. 음... 총체적 난국이란 말은 이런 때 쓰는 건가 싶지만 뇌는 어떻게든 힘을 쥐어 짜내 굴러간다. 도중 종종 막혀 사전을 끼고 살아야 하지만, 다국어를 사용하는데는 분명한 장점이 존재한다. 



    일단, 다양한 형태의 문자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그만큼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세계의 바운더리가 넓어진다는 점을 말해준다. 각기 언어를 쓰는 그 나라만의 문화와 정서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언어는 그의 역사와 쓰임새를 공부할수록 심층으로 파고들 수 있다. 물론 일시적인 관심으로가 아닌, 꾸준히 행한다는 전제 하에 언어력은 서서히 발전하는 법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건강을 지켜줄 10가지 수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