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허수아비 일식돈까스

눈치없는 여자와 눈치없는 남자

by 찬란

“파인애플, 너 소개팅 해볼래?”

바야흐로 소개팅의 계절이었다. 대학교 신입생들은 고등학교 때 했던 공부에 대한 한풀이에 미쳐 있는 듯 했다. 누군가는 토할때까지 술을 먹었고, 누군가는 동아리에서 율동을 하거나 악기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소개팅과 미팅이 지상 최대 과제인 이들도 있었다. 나는 아직까지도 삼삼오오 모여 남자들 얼평을 하는 데 익숙하지가 않았다.

“우리 반 애들은 왜 다 오징어야?”

“경제학과에 그 잘생긴 애 봤어? 나랑 눈 마주쳤잖아.”

“어머어머! 세상에. 야 말 좀 걸어봐...”

MT를 다녀 올 때마다 반 안에 커플들이 생겨났다. 술을 먹다가 둘씩 짝지어 산책을 다녀오는 식이었다. 커플들은 투투라며 백일이라며 싸이월드에 둘이 찍은 사진을 올리곤 했다. 하지만 나와는 먼 이야기였다. 나는 눈치가 없었지만 대놓고 맘에 드는 이에게 들이댈 용기도 없었다.

더 이상 나를 특별대우 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고 연애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강렬한 것도 아니었다. 고등학생 티를 못 벗은 외형이 문제인가. 나는 처음으로 미샤와 더페이스샵에서 화장품을 사 화장에 도전했다. 파운데이션과 마스카라의 세계는 정답도 공식도 없었다.

”왜 화장을 하는거야? 도대체 이해 안 돼.“

이런 말들을 늘어놓았던 고등학생 시절의 나를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누가 나에게 화장하는 법 옷 고르는 법에 대해 설명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도 그런 건 해주지 않았다. 나의 붕 뜬 파운데이션과 떡진 마스카라는 안쓰러움의 대상이 되기에 딱 좋았다.

“어머나 파인애플! 이리 와봐, 내가 좀 고쳐줄게..”

글린다들이 알파바를 아무리 꾸며 봐도 초록 피부는 초록 피부였다. 글린다들은 무해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맞는 옷을 이리 저리 찾아주었다. 그래 봐야 크게 다를 건 없었지만 난 잠자코 골라주는 대로 입어보곤 했다.

이 세계는 내가 잘 모르는 규칙들이 있었고, 그 규칙을 잘 아는 사람들로 가득 찬 것 같았다. 그들은 샹들리에 밑에서 화려한 옷을 입고 익숙한 듯 내가 모르는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파티장 문 옆에서 서서 바쁘게 자리를 찾다가, 엉거주춤 그 춤을 따라 춰 보는 사람이었다.

“나 아는 동아리 후배가 있는데 소개팅 해볼래?”

“어?.....정말요??”

“응 조용한데 괜찮은 친구야. 둘이 어울릴 거 같아.”

그 와중 수업시간에 알게 된 언니가 나에게 소개팅을 주선했다. 어쩌면 나에게도 봄날이? 좋은 시절이 다가오는 것인가.

머잖아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다. 약속을 잡는 문자가 오갔다. 우리는 학교 앞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두근거렸다.




카페에서 만난 감귤은 훤칠하고 잘생겼지만 숫기가 없어보였다. 말 한번 시키면 더듬거리며 내 눈을 피했다. 그렇다고 할 말을 안하는 건 아니었다. 중얼거리듯이 얘기를 하고 황망히 시선을 둘 곳을 찾는 식이었다.

“그래서 난, 중국어를 공부하러 중국에 가고 싶어. 지금 듣는 수업도 재미있긴 하고..”

“...그렇구나.”

그리고 나는, 침묵이 흐르면 그 침묵을 메꾸기 위해 뭐라도 말해야 하는 성격이었다. 어색함이 이초라도 흐르면 나는 필사적으로 새로운 화제를 찾아냈다. 내가 재잘재잘 떠드는 걸 감귤은 조용히 바라보았다. 간간히 고개를 끄덕이거나 대답하는 게 전부였다. 정말 조용한 사람이었다.

<잘 들어가>

문자도 담백하다 못해 맹맛이었다. 애프터는 없나보다, 한숨을 쉬며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런데 문자가 왔다.

<돈까스 먹으러 갈래?>

이것이 말로만 전해듣던 애프터인가? 데이트 신청? 내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눈을 열심히 굴리면서 몇 분 있다가 답장을 해야 하나 생각했다. 나의 글린다 친구들이 나를 앉혀놓고 연애 코치해 주기로는, 남자에게서 문자가 오면 십오분은 있다가 답을 해야 한다고 했다.



감귤은 종로구에서 만나자고 했다. 유명한 돈까스 집이 있었다. 허수아비라는 일식 돈까스라고 했다. 난생 처음 먹어 보는 것이었다. 나에게 돈까스는 엄마가 집에서 튀겨주는 얇은 돈까스에 케첩을 뿌려 먹는 것이었는데. 김치랑 곁들여서.

“여기.. 깨를 갈아야 해.”

“이 절구로?”

“응.. 여기 양배추 리필 좀 해주세요.”

“양배추 리필도 해줘?”

실처럼 썰린 양배추 위의 노란 소스에서는 깨 맛이 났다. 눈이 번쩍 뜨이는 맛이었다. 두꺼운 튀김옷은 겉보기와 달리 파삭하면서 부드러웠다. 깨를 간 후 섞은 갈색 소스에 돈까스를 찍어먹자 절로 탄성이 나왔다. 미소 된장국을 후루룩 마시며 감귤에게 웃어보였다.

”나 일식 돈까스 처음 먹어보는데 정말 맛있다.“

”맛있어?... 여기 양배추 리필 좀 해주세요.“

감귤은 양배추 매니아인듯 했다. 감귤이 양배추를 세번째 리필하자 앞치마를 맨 아주머니가 입을 삐죽였다. 감귤은 전혀 개의치 않고 네 번째 리필을 부탁했다. 아주머니는 뚱한 표정으로 양배추를 식탁에 내려놓았다. 그릇이 식탁에 부딪혀 쾅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양배추 좋아하나봐.“

”응, ... 좋아해.”

계산대에 선 감귤이 20퍼센트 쿠폰을 내밀자 카운터에 서 있던 아주머니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우리는 신촌의 거리로 나왔다. 감귤은 여전히 내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고 다음 장소에 대해서도 정하지 못하고 꾸물거렸다.

“이제 어디 갈까?”

“어......”

그러나 나는 이상하게도, 정말 이상하게도 눈 앞의 이 감귤에게 호감이 생기고 있었다.

나보다 더 눈치 없는 남자라니.

내가 느끼는 건 기묘한 안도감과 편안함이었다.

셀든을 바라보는 에이미처럼

로스를 바라보는 레이첼처럼

나도 모르게 쿡쿡 웃었다.

어쩌면 우리는 잘 맞을지도 모르겠다.

돈까스와 양배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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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희귀병으로 하반신마비가 된 가장의 재활을 돕는 곳에 기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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