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프 오어 피쉬??
“파인애플 학생?”
“네, 네…”
“네, 저는 과일유학원 아무개 대리구요, 여기 좀 계세요. 다같이 모이면 이동하겠습니다.”
“네, 네…”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고 해외에 간다. 나는 바짝 긴장한 채로 유학원 깃발을 무심히 들고 있는 담당자 옆에 붙어 서 있었다. 손에 땀이 차서 트렁크를 자꾸 고쳐 쥐었다. 이미 와서 서 있는 다른 유학생들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나는 안보는 척 하면서 여자 유학생들을 흘깃흘깃 쳐다보았다. 이 중 한 명과 룸메이트가 될 지도 몰라.
“다 모였네요, 자, 이제 출국 카운터 보이시죠? 저기서 짐 검사 하고 261번 카운터로 이동하겠습니다.”
“네에…”
모두 개미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쭈뼛쭈뼛 이동하기 시작했다. 중국동방항공이라는 항공사라고 했다. 한참을 줄을 서 있다가 눈치를 보며 트렁크와 짐을 올려서 검색대를 통과했다. 유학원에서 나눠준 서류를 꼼꼼히 읽은 엄마가 짐을 싸 주었기에 검색대에서는 무사 통과했다. 유학생 한 명은 물 한 병과 매실액 한 병이 걸려서 압수당했다.
”으휴. 그러니까 유학원 서류를 꼼꼼히 읽었어야지. 액체류는 100미리 안된다고 적혀 있었는데.“
나는 우습기 짝이 없는 안도감을 느끼며 공항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심사가 끝나자 유학생들의 표정은 눈에 띄게 밝아졌다. 모두 비슷한 걱정을 했던 듯했다. 검색대에서 뭔가 걸려서 유학을 가지 못하게 되면 어쩌지 하는.
“저는, 면세품 픽업좀 할게요.”
“저도 화장품 뭐 살 게 있어서…”
261번 게이트는 또 지하철 트램을 타고 한참 가야 했다. 공항이라는 곳은 고급진 향수 냄새가 가득한 곳이구나. 샤넬과 온갖 화려한 백화점 브랜드 로고가 가득한. 백화점보다 많이 싼가? 나도 좀 사야 하는 건 아닌가? 나는 힐끗거리며 선글라스 하나를 구경했다. 260달러. 얼마지? 헉 30만원??? 무리야 무리.
나는 일번으로 261번 게이트에 도착했다. 비행기가 출발하려면 2시간이나 남았다. 나는 비행기가 보이는 창가 의자에 앉아 다시금 내 기내용 캐리어를 꼭 쥐었다. 엄마 아빠에게 전화해야겠다.
“피쉬 올 비프??“
”엇? 어…“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스튜어디스가 한참 앞에서 주문을 받으며 걸어올 때부터 속으로 준비했으면서. 입안에서 맴돌던 그 말이 나오지 않아 머뭇머뭇하자 그녀는 다시금 큰 소리로 물었다.
”피쉬 올 비프???“
”어..커커컥… 아이 우드라익…아아니…비, 비프, 플리즈…“
”비프?“
”으,응…“
그녀는 가지런히 펴 놓은 내 간이 탁자 위에 작은 쟁반 하나를 내려놓았다. 네모난 알루미늄 그릇은 딱 봐도 뜨거워 보였다. 이게 말로만 듣던 기내식이구나. 내 인생 첫 기내식이네.
모닝롤은 차가웠다. 나는 처음인 걸 들키지 않으려 애쓰며 나이프를 꺼내 버터를 발랐다. 조심조심 알루미늄 뚜껑을 열자 갈색 소고기 덩어리들이 밥 위에 얹어져 있었다. 한 쪽 구석에서는 브로콜리와 삶은 당근이 매쉬드 포테이토 안에 샐쭉하게 박혀 있었다.
“갈비찜 느낌인데 달지는 않고, 좀 질기기도 하고, 향신료 냄새도 나네.”
이제 그 말로만 듣든 고수의 향인건가? 중국어 초급반에서 ‘부야오 샹차이’는 배웠는데. 나는 하나도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먹어치웠다. 작고 네모난 그릇에 들어있던 양배추 샐러드에는 캔옥수수와 마요네즈가 얹혀져 있었다. 맛있었다.
“이 과일은 뭐지?”
디저트는 과일이었다. 하얀 속살에 군데군데 검은 점이 박혀 있는 과일이었다. 난생 처음 먹어보는 과일이었다. 부드러운 무에 딸기씨가 콕콕 박혀 있는 맛이었다. 멜론 맛이 나는 노오란 과일도 있었다. 이건 뭐지? 둘 다 맛있었다.
“중국의 과일인가 보다. 나중에 이름이 뭔지 물어봐야지. 그런데 누구한테 물어보지?”
배가 불러 오자 아까 그 스튜어디스가 주전자를 들고 다니며 커피와 차를 따라주기 시작했다. 아까의 주문 성공경험으로 신이 난 나는 이번에는 좀 더 자신감 있게 홍차를 달라 주문했다. 그녀가 한 번에 정확히 알아듣고 내 컵에 홍차를 따라주자 기분이 더 좋아졌다.
“별 거 아니네!”
덜덜 떨며 쭈뼛거리던 게 한 시간 전이었는데 어느 순간 나는 으스대는 표정으로 배부르게 앉아 있었다. 그래, 막상 다 해보면 별 거 아니야.
배부름의 힘은 아주 강력했다.
별 거 아니야.
“디스이즈 캡틴 스피킹, 브라브라브라…”
중국 유학생들을 태운 비행기는 이제 베이징 공항에 착륙을 준비하고 있었다.
잘 할 수 있을거야.
별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