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유학생들의 양꼬치

어딜 가나 결론은 가십

by 찬란

한국인 유학생 모임에서 문자가 왔다.


“파인애플씨, 지금 반 동기들끼리 모여있는데 조인할래요?”

“엇 203반 동기들이요? 갈게요 어디로 가면 되요?”

“학교 문 앞의 ‘샤오주푸’로 오시면 되요.”

“고맙습니다!”

북경 남자 기숙사에서의 파티 후 터덜터덜 걸어가던 나에게 희소식이었다. 같은 반 한국 동기가 술자리에 초대해 주다니. 한국인들이 한데 모여 양꼬치에 맥주 한 잔씩 하고 있다고 했다. 반가웠다. 매일 아침 스스로에게 한 ‘한국인들과 어울리지 않겠어’ 란 다짐이 무색했다.

하지만… 이렇게 불러주는 데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

‘샤오주푸’도 가보고 싶었는데 용기가 나지 않았던 식당이었다.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걷던 방향을 틀었다. 멀리서 럭비공처럼 이 남자 저 남자 사이에서 패스되던 일본 여자 친구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파인애플씨, 여기 앉아요.”

“아, 여기 다 계셨네요? 안녕하세요!”

한국인 유학생들이 다같이 모여 양꼬치를 먹고 있었다. 기름이 자글거리는 양꼬치는 하나에 1원이었다. 한국인 유학생들은 옆에 수북히 쌓인 꼬치 옆 칭다오 맥주를 들이키며 킬킬 웃고 있었다. 문을 바라보는 자리에 앉아 있던 남학생이 자기 옆자리를 가리키며 앉으라 권했다. 옆 학생들이 조금씩 움직여 자리를 내 주었다.

“푸우위엔! 판즈 이거! 칭다오 피지우 이거!“

”파인애플씨 자리 편해요? 괜찮아요?“

아까 기숙사 파티와는 확연히 분위기가 달랐다. 종업원이 내 맥주와 그릇을 가져다주자 옆자리 사람들은 내 자리를 세팅해주며 따뜻하게 말을 걸었다. 교실에서만 만나다가 이렇게 보게 되니 사람들이 더 다정하고 새로워 보였다. 이런 사람들과 거리를 두었다니 괜히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기숙사에 있다가 나왔어요?“

”아, 아뇨, 알프레드가 초대해 줘서 남자기숙사 잠깐 들렀다 왔어요.“

”흐음? 둘이 사귀어요?“

”아, 아뇨?? 사실 알프레드랑은 거의 얘기도 못했고.. 거기 기숙사 구경이나 하다 왔어요. 하하…“

”알프레드 걔가 하루카? 걔랑 사귀지 않나?“

”맞어 저번에 둘이 부둥켜 안고 가던데?“

한국인 유학생들은 외국인들 사이에서의 가십과 관계도에 매우 빠삭했다. 자기들끼리만 몰려다니는 것을 고려했을 때 퍽 놀라운 일이었다. 알프레드가 저번에 러시아 여자애 누구랑 만났었는데, 저번에는 보니 일본 하루카랑 껴안고 다니더라는 둥. 하루카는 근데 다른 남자 있지 않았냐는 둥. 나는 전혀 몰랐던 그들의 연애사를 한국 유학생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우와, 꽤나 복잡한 관계도네요. 하하…“

”걔네들은 원래 좀 그래요, 복잡해…“

옆자리 얼굴이 발그레한 남학생이 나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뭔가 비밀스러운 할 얘기가 있는 듯했다. 나도 모르게 같이 몸을 기울였다. 귀를 쫑긋 세웠다.

”파인애플씨도 그 일본에 하루카 알죠?“

”어, 알죠. 방금 걸어오면서 교정에서 마주쳤는데…“

나는 하루카를 떠올렸다. 럭비공 그녀였다. 남자들 사이에서 깔깔 웃으며 이리 저리 패스되고 있었던.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웃으며 술자리에 초대했다. 그녀는 그 어떤 남자와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분명히 영어도 중국어도 잘하겠지.

”하루카 걔가 유명해요, 이 남자 저 남자 다 만나고. 아주 XX라고.“


나는 얼굴이 확 달아올랐지만 태연한 척을 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 그렇구나… 뭐 연애를 많이 하는 건 좋죠. 영어도 중국어도 배우고.“

”그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한국 감성이랑은 안 맞아요.“

남학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 수도 있겠지. 한국 유교걸 유교보이들이 보면 식겁할 만한 장면이긴 했으니까. 그들은 한참을 럭비공 하루카 그녀의 과거 연애사에 대해 늘어놓았다. 내가 하루카의 연애 이야기를 들으며 놀라는 게 재미있어 보였던 듯 했다. 그러나 이내 그들은 재미가 시들해졌다. 화제는 다른 이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래서, 여기 계신 분들은 중고등학교 때 중국으로 유학오셨어요? 중국어 완전 잘 하시겠네요?“

”뭐… 안 죽으려면 해야죠.“

”부러워요, 저도 빨리 중국어 배우고 싶어요.“

”저 형은 이번에 교문 쪽에 집도 얻었잖아요. 기숙사 구리다고.“

집을 얻었다고 한 덩치 큰 남학생 한 명이 씨익 웃었다. 군대를 다녀온 후 중국으로 유학왔다고 했다. 나이가 제일 많았기에 그 그룹의 리더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옆에는 여리여리해 보이는 앳된 여학생이 새초롬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나랑 같이 수업을 듣긴 하지만 말 한 번 섞어 본 적이 없었다.

”직접 방을 얻으셨다고요? 우와…부동산 통해서 거래하신 거에요? 대단하다…“

”뭐…어쩌다 보니. 기숙사보다 훨씬 집 컨디션이 좋아요. 이 친구도 챙겨야 하고…“

덩치 남학생이 앳된 여학생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의미심장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자 그 자리의 모두가 다같이 킬킬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앳된 여학생은 여전히 새초롬한 표정이었다.

”어……“

”저희 둘이 같이 살기로 했거든요.“

”아……! 어머 두 분이 사귀시는 구나, 축하드려요…“

”어쩌겠어요, 제가 이 친구 챙겨야지…“

26살의 덩치 남학생과 19살 앳된 여학생은 그렇게 북경에 집을 얻었다고 했다. 덩치 남학생은 집을 구한 과정을 무용담처럼 풀어놓기 시작했다. 앳된 여학생은 끝까지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여러 의미로 머리가 띵했다.


덩치 남학생은 분명 얼마 전 술자리에서 한국에 두고 온 여자친구가 그립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난 기억나는데.

갑자기 하루카가 초대한 술자리에 다시 가고 싶었다.

하루카가 보고 싶었다.






화, 금 연재
이전 18화베이징 외국인 파티의 미지근한 맥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