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회] 눈치 먹지 마, 넌 그냥 너야.

다 하나씩 안고 사는 게 있어

by 찬란


“파인애플씨, 엄청 열심이네요?”

“아, 하하. 씨에씨에.”

“근데 너무 열심히 하시는 거 아니에요?“

”아…네.“


같이 중국어 수업을 듣는 한국인 유학생 무리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일부러 거리감을 두고 혼자 앉고 수업을 들어서 인 것 같았다. 그들은 우루루 몰려다니며 교실 맨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중국어로 대화는 얼추 하는 것 같았지만 읽기 쓰기 시험 성적은 바닥이었다.


한 번은 담임선생님이 ‘사형제도’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중국어로 준비해 오라고 시켰다. 준비해 온 사람은 나와 영국인 톰, 미국인 에반스, 일본인 하루카였다. 한국인 유학생들은 선생님이 콕 찝어 발표하라고 하지 않는 한 절대 나서지 않았다. 우리는 둘 씩 마주 보고 앉아 사형제도에 대해 찬반을 나누어 토론을 진행했다. 엉망 진창 중국어가 난무했다.


”그래서…통계에 따르면 사형제도의 효과가…“

”아니…아우 잇 이스 소 하드!“


영국인 톰이 가슴을 두드리며 답답함을 호소하자 모두 웃음이 터졌다. 수업 종이 울리자 우리는 서로 깔깔 웃으며 교과서를 집어들었다.


”이봐 파인애플, 아주 변호사인 줄 알았어.“

”하하, 고마워. 넌 사형에서 감면해 줄게.“

”내일 봐.“


가방을 정리하는데 인기척이 느껴졌다. 스냅백 모자를 쓴 한국인 유학생이었다.


”파인애플씨, 열심이시네요?“

”어? 어…네.“

”근데 그 말씀하신 UN 통계는 잘못된 거 같아요.“


내가 뭐라 대답할 새도 없이 그는 휘리릭 걸어가 버렸다. 그는 총총 걸어가 멀리서 그를 기다리던 한국인 유학생들에게 합류했다. 그들은 나 쪽을 흘깃 쳐다보고는 그냥 서둘러 교실 밖으로 걸어나갔다. 옆 자리 톰이 나를 보며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뭐래? 저 남자가 뭐라고 한거야?“


나는 쩝 소리를 내며 침을 삼켰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네…“






이상하게도 그 날 이후로 나는 한국인 유학생 그룹이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그들이 있거나 말거나 상관 없었는데. 은평구 헤르미온느 짬바를 가지고 발표도 제일 열심, 숙제도 제일 열심이었는데. 그들이 한국어로 말을 걸어도 중국어로 대답할 정도였는데. 이제는 나도 모르게 움츠러드는 순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 각자 문화권에서의 명절에 대해 이야기 해봅시다. 먼저 해 볼 사람?“

”엄…“


다른 나라 학생들의 과제 수행은 실로 창의적이었다. 자기 손 사진을 찍어 슬라이드에 띄운 뒤 자기 손과 대화하는 호주 친구도 있었고, 성탄절에 루돌프들이 모여 어떻게 ‘체력 단련’을 하는지 강의하는 미국 친구도 있었다. 나는 눈동자를 반짝이며 진지하게 최대한 아는 걸 다 쏼라쏼라 설명하며 웃고는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한국 유학생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어…그래서, 한국에서는 추석에 특별한 떡을 먹어요.”

“그게 아니라, 송편이라고 해야 하는거 아닌가?”


스냅백 한국 유학생은 큰 소리로 지적했다. 중국어 선생님이 그를 바라보며 중국어만 사용하라며 주의를 주자 그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 옆에 앉아 있던 다른 한국인 고등학생 남녀가 귓속말을 주고 받았다.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어…네. 이것으로 끝입니다.”

“좋아요. 파인애플 학생 앉으세요.”


뭐라 말하기 힘든 기분으로 자리에 앉았다. 기분이 묘했다. 스냅백 학생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그냥 어린 나이에 유학온 철없는 아이일 뿐이었다.


나는 왜 이 상황에서 눈치를 보는 걸까?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머리로는 잘 알고 있는데.






“파인애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몰랐네.”

“어, 기분이 이상했어. 정말로.”


부쩍 친해진 영국인 톰과 에반스, 조쉬는 내 이야기를 매우 집중해 듣고 있었다. 우리는 엉터리 중국어를 사용하면서도 꽤 친해졌다. 두어 달 만에 우리는 온갖 이야기들을 꺼내 놓을 만큼 끈끈해졌다. 나는 한참 동안 한국의 ’눈치를 보다‘ 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뭘 본다고?“

“그러니까 ’눈치를 보다‘, 일종의, 주변 사람들의 기분을 읽어내는 거야.”

“눈취를 보드아?”

“어. 나는 사실 어렸을 때부터 그거에 많이 약했어. 눈치가 없는 편이었지…”

“도대체 무슨 소리야?”


미국 친구 에반스가 빵 터지며 배를 잡고 웃었다. 그를 비롯한 친구들은 모든 문장에 욕지거리를 넣어 양념쳐럼 쳐대고는 했다.


“파인애플 너는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도 그 퍼큉 ’누운취‘를 잘 먹는 사람인데.”

“어? 그런데 그건 먹는게 아니라 보는 거…”

“어떤 상황에서 ’눈취‘를 먹어야 해? 잘못했을 때?”

”음, 아니 그것보단 내가 남들과 다를 때.”

“내가 남들과 다르면 ’눈취‘를 먹어야 해?”

“어…남들이랑 다르면 좀… 슬퍼져.“


톰은 킬킬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다정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난 말이야…“


톰은 어깨를 으쓱했다.


”게이고, 웨일스 출신이야. 여기 같이 온 대학 다른 친구들이랑은 좀 달라. 누군가는 무시하기도 해.“


옆 에반스도 거들었다.


”난 유태인이고 키 작은 데다 운동도 안 좋아해서 늘 ’눈취‘를 봤지.“


조쉬도 웃기 시작했다.


“난 키가 너무 크고 나이도 많아. 어려운 말을 쓴다고 같은 반 친구들이 싫어해. 괴짜라더라고.”


톰은 씨익 웃으며 내 어깨를 탁탁 두드렸다.


”다들 다 그런거 갖고 살아. ’눈취‘ 먹지 마. 넌 그냥 너야. 그냥 이렇게 하면 돼…이렇게.“


그는 과장된 몸짓으로 어깨를 크게 으쓱해 보였다. ’어쩌겠냐‘는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우리 모두는 빵 터졌다. 우리는 키득키득 한참을 웃었다.


이제서야 깨달았다.


나는 눈치가 없는 게 아니라

눈치를 너무 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냥 나야.

그냥 나.



서울 은평구에서 북경까지 안고 온

내 안의 무언가가 훅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서울에서 먹었어‘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화는 에필로그로 찾아오겠습니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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