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똑같은 평일 저녁,
세탁을 마친 빨래를 건조기에 넣고 거실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보면서 남편이 말했다.
"나 다했는데 이제 쉬어도 되지?"
"응, 쉬어. 난 이것만 하고..."
나는 아이의 어린이집 등원 가방에 준비물을 챙겨 넣고 아침에 먹일 볶음밥도 미리 만들어야 되고 체력이 좀 남는다면 거실 걸레질도 좀 하고 자야겠다.
휴, 오늘따라 주방 싱크대 물때는 왜 이리 거슬리지.
나는 아직 남은 집안일이 한가득인데 소파에 누워 쉬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 오늘따라 왜 이리 거슬릴까.
물때에게 괜한 화풀이를 하며 주방일을 마무리했다.
나와 남편은 매일 출근과 퇴근을 하는 직장을 다니고 있다.
남편의 출근 시간이 조금 더 빠른 탓에 밤에 갑자기 깬 아이를 달래주며 옆에서 애벌레 잠과 등원은 나의 몫이다. 나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곤히 자고 있는 아이가 깰까 봐 최대한 무소음으로 조심스럽게 씻고 나와 대충 옷을 갈아입고 아이의 등원 준비를 한다.
7시가 좀 지나 곤히 자고 있는 아이를 깨워 씻기고 아침밥을 먹이고 옷을 갈아 입혀서 어린이집까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간다. 마을버스 도착 예정시간을 확인하며 아이를 안전하게 어린이집까지 데려다주고 정신없이 뛰어간다. 간신히 정각 출근을 하고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한 모금은 세상 제일 시원하고 맛있다.
등원 전쟁을 끝내고 나면 하원 전쟁이 기다리고 있다.
남편은 하필 이른 출근 늦은 퇴근을 하기에 하원 역시 나의 몫이다.
상사의 눈치보다는 아이의 울음이 더 무섭고 두렵기 때문에 6시가 되자마자 번개처럼 퇴근을 했다.
1초만 늦게 일어나도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고 다음 차례를 기다려야 하기에 서둘러야 한다.
회사 정문 밖으로 나가자마자 미친 듯이 뛰어 지금 막 출발하려는 버스에 올라탔다.
종일반에서 홀로 엄마를 기다릴 아이를 생각하면 단 1초라도 조금 더 일찍 도착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숨을 가다듬고 어린이집 벨을 누르면 어린이집에 혼자 남아 있었던 아이의 시무룩한 얼굴이 마음에 콕 박힌다. 아직 말을 못 하는 아이는 엄마를 보자마자 울먹거리고 그런 아이를 꼭 안고 집으로 돌아간다.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온 엄마의 마음을 모르는 아이는 오늘따라 더 많이 보채고 울기만 한다.
아이를 겨우 달래고 씻기고 옷을 갈아 입히고 놀아주면서 저녁밥 준비를 하고 있으면 나의 숨통인 남편이 집에 도착한다. 남편 역시 대충 씻고 옷을 갈아입고는 아이와 놀아준다. 나는 시원한 냉수 한 잔 들이켜고 저녁밥을 마무리한다. 우린 입으로 넣지만 콧구멍으로 먹는 저녁밥을 먹는다. 이렇게 하루가 또 지나간다.
하루살이처럼 하루를 보내다 보면 어느새 주말이다.
늦잠을 자고 밥도 대충 먹고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싶은 그런 주말이다.
나에겐 평일과 똑같은 주말 아침이지만 남편은 늦잠을 잘 수 있는 주말 아침이다.
아이에겐 주말이 없다. 오히려 평일보다 더 일찍 일어나 울음으로 나를 깨운다.
아이도 오늘이 주말임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았다. 엄마와 아빠랑 함께 놀 수 있는 주말을 기다렸나 보다.
잠이 덜 깬 몽롱한 상태에서 아이를 데리고 거실로 나와 놀다가 아이의 아침밥을 먹인 후 남편을 깨운다.
5분만 더 자겠다는 남편에게 한파보다 더 혹독하고 매서운 눈빛을 날리며 주말의 육아 전쟁이 시작된다.
나와 남편은 똑같이 직장인이고 아이의 부모이다.
세상은 나에게 워킹맘이라는 꼬리표를 하나 더 붙여주지만 그 누구도 아빠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여자가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을 다니는 것이 생소했던 시기에 생긴 신조어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암묵적으로 똑같이 직장을 다녀도 엄마의 육아 지분이 여전히 크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다.
나에게 워킹맘이란 꼬리표는 엄마니깐 육아를 더 열심히 하라는 강요같았다.
그래서 나는 워킹맘이라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도 그냥 엄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