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는 경험해야 비로소 안다.

by 레이마망


"내일은 내가 준이 등원하고 출근할게"


내일까지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를 확인 한 남편이 세상 사랑스러운 말을 했다.

남편의 이른 출근으로 등원 당번은 365일, 항상 나이기에 한 번쯤 남편이 등원 당번을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특히 비 오는 날은 더욱 절실하다.

아이 우비, 장화, 우산까지 챙기고 나의 목에는 내 가방과 어린이집 가방을 X자로 올려 매고 낮잠이불을 들고 현관문을 나서면 굳이 우산을 혼자 쓰고 가겠다고 우기던 아이는 아직 손 힘이 없어 이내 기울어지는 우산에 속상해서 울기 시작한다. 한두 번 당하니 나도 나름 노하우가 생겨서 아이의 우산 꼭지를 몰래 잡아 중심을 잡아 주면 혼자서 우산을 들었다고 생각하고 기분 좋아 뛰어간다.

그럼 나도 아이의 속도에 맞춰 우산 꼭지 잡고 뛰어야 한다.

혹여나 차가 급하게 올까 봐 노심초사하며 '조심'이라는 말이 입에서 연이어 쏟아져 나온다.

조금 뛰었을까,

이내 안아 달라고 아이가 두 팔을 벌리면 아이 우산까지 반듯하게 들어주고 안아줘야 되고 우비에 묻은 빗물은 나의 옷에 스며들고 나는 축축 해진다. 정작 우비는 내가 필요하구나 생각했다.

낮잠이불 가져가는 월요일에 비가 오면 더 최악이다. 어쨌든 어쨌든 비 오는 날 등원은 최악이다.


비 오는 날 등원이 너무 힘들었다고 내쉬었던 나의 한숨이 기억났는지 남편은 내일은 회사에 미리 말하고 등원 당번을 하겠단다. 로맨스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을 눈앞에서 본 느낌이랄까. 남편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다음날 아침, 오늘이 되었다.

많은 비는 아니었지만 비는 그치지 않고 내리고 있었다.

오늘은 느긋하게 출근 준비를 하면서 남편에게 몇 가지 팁을 알려주었다.


"준이 우산이 삐뚤어지면 이내 우니깐, 꼭 반듯하게 들어줘야 해"

"내리막길에서는 항상 뛰어가니깐 꼭 손을 잡아"

"첨벙첨벙 놀이를 해줘야 해. 어린이집 앞에 작은 웅덩이가 있어. 안 그럼 울어"


신나게 말하다가 남편 얼굴을 보니 그냥 등원하는 것뿐인데 뭘 유난을 떠냐는 표정이었다.

'당해봐라, 요 녀석'


아빠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아이의 손을 잡고 출발했다.

5분쯤 지났을까.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빨리 나오라는 구조요청이었다.

아빠 품에 안긴 아이의 얼굴은 짜증 범벅이고 아빠는 땀뻘뻘이었다.


아이는 우산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아 가짜 울음을 터트리며 앞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고 이러다간 출근 못 하지 싶은 아빠는 아이를 안으며 아무 생각 없이 우산을 접어버렸다.

접은 우산을 보는 순간 아이의 울음은 진짜로 변해서 난리통이었다.

준이는 우산을 접으면 제일 좋아하는 아기 상어가 보이지 않아 없어지는 줄 알고 대성통곡을 한다.

그리 당부를 했건만.

자기 편인 엄마가 도착하니 승리감을 느낀 아이는 울음을 그쳤고 구세주를 본 것처럼 나를 반기는 아빠의 얼굴은 좌절 그 자체였다.

아이의 가제수건을 남편에게 주었다.

비 보다 더 많이 내리는 땀을 닦는 남편을 보니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엄마와 아빠가 함께 있으니 기분이 좋아진 아이는 더 재미난 놀이가 생각났는지 접힌 우산을 쓱 가져가더니 우산을 땅바닥에 통통 찍다가 질질 끌면서 저만치 사뿐사뿐 걸어가고 있었다.


어린이집 앞에 있는 물 웅덩이를 보자마자 아이는 달려가더니 역시나 첨벙첨벙 놀이를 했다.

남편에게 먼저 출근하라고 손짓을 보냈다.

남편은 생각했던 것보다 등원이 오래 걸렸는지 시계를 보고 한숨을 쉬며 저 멀리 오는 버스를 보자마자 뛰어갔다. 나도 등원을 무사히 끝내고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준이는 어린이집 잘 들어갔어. 나도 출근"

"아침에 장난 아니네!"


남편의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이 떠올랐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평소 심술부렸던 친구를 골탕 먹인 아이의 기분이랄까. 같은 편끼리 이러면 안 되지만 웃음이 나왔다.


오늘 하루 힘들었다고 말하면 남편은 항상 고생했다며 다정하게 어깨를 토닥여 주지만 뭔가 모르게 허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겪은 하루를 '고생했다'라는 그 한마디로 줄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더 열심히 설명하려고 했었고 별것 아닌 일에 투정 부린 것 같기도 해서 마음이 항상 답답했는데 오늘 하루는 그동안 체기가 속 시원하게 내려간 것 마냥 기분이 가벼웠다.


'그래 백번 말하면 뭐해. 당해봐야 알지'

이전 05화오늘도 참 잘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