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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맥으로 가는 길목에서

[영화] 브링 허 백 by 대니 필리푸 감독, 2025

by 서희복

받아들여야 하는 그 처음을 놓치고 나면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되는 다른 세상이 있다. 붉고 뜨거운 생명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처연히 마음을 늘어뜨리고 나면 잘디 잘게 늘어선 혈관을 헤매고 다니다가 끝내 아름다운 정맥의 끝에 고이게 되는 것이다. 제대로 숨 쉬지 못하는 순간을 쌓으며 생명으로 건너가는 길목을 찾는다.


무게는 같지 않다. 피로 이어진 그 온도를 잇기 위한 광기의 갈증은 생명의 그릇들을 고르고 분류하고 길이를 재며 완벽한 은신처를 준비한다. 혼을 굶주리며 온전히 건너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은 동맥혈을 받아내기 위한 순수한 노력이다. 널 수 있다는 희망은 소름 끼치도록 아름다운 미소 속에 흠뻑 고여있다.


매끄럽게 흐르다 멈추게 되는 그 꼭대기에서 코르크 마개 같은 푹신한 소름을 하나하나 뽑아내야 한다. 상처 있는 생명을 떼어내기 위한 거짓에 넌더리가 나면서도, 보이지 않는 삶에 형상과 색깔의 냄새를 입히며 더듬게 한다. 장을 얼어붙게 하는 순간순간들, 조금씩 금이 가며 서툰 피가 흘러나올 때 더 많은 고통이 기다린다는 것을 감지한다.


엄마의 피가 딸에게 흐르고 딸의 망막을 되가져간 빗물은 고여도 고여도 다시 그때의 산소가 풍성한 물이 아니다. 죽음으로 퍼지다가 하나의 몸으로 살아나려는 기운은 호락하게 모아지지 않는다. 컬트가 아니라고 나오는 영화의 첫 화면, 그 텍스트는 검붉은 비린내가 진동하는 맹목의 미신과 다름 아니다.


모성의 집착은 컬트 그 이상이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피를 모으기 위해 타인의 피를 비우는 것은 반드시 이 두 관계에서만 가능하다. 타인을 서슴없이 도려내는 대범함은 붉게 솟구치지 않는다. 빛을 내며 그대로 조용히 움직이며 유유히 퍼지는 것만으로도 전율한다.


이빨 사이로 갈라지는 두 세상, 잇몸을 드러내는 괴기스럽고 너덜한 살점에 부서질 만큼 이를 악물게 된다. 자신으로 향하는 최면 같은 저주의 순간들 사이사이로 드러나는 간절한 바람과 저항 속에 몸서리로 빳빳하게 얼어 있다 나왔다.


언데드 다루는 법(영화, 2024)과 방향이 반대다. 가라앉혀야 하는; 돌아와야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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