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걸어도 걸어도 by 고레에다 히로카즈, 2009 & 2025
걸어도 걸어도 (步いても 步いても, 아루이떼모 아루이떼모), 히로카즈는 지금도 걷고 있겠지. 계속 걸어라, 내가 가만히 따라갈 테니.
이시다 아유미의 블루라이트 요코하마 전주가 나올 때 영화관 의자가 푹 꺼지는 것 같았다. 내가 어렸을 때 의미도 모르고 따라 불렀던 그 노래라서, 그 노래를 평생 마음에 슬프게 품고 살았던 한 어머니에 대한 영화라서, 찌글찌글한 군상들이 그래도 뚜벅뚜벅 살아가는 삶에 대한 보고서라서.
어머니, 토시코가 가만히 노래를 틀며 혼잣말처럼 건네던 그 순간, 멈칫했다. 현재가 아닌 아들을 업고, 지금까지 꾸준히 같이 해 온 남편의 옛 시간을 서늘하게 들춰내는 다정한 그녀의 웃음과 목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뒤돌아 사는 내내 한 줌의 재로 남아 있었을 그 노래는 잘 갈아둔 칼날이다.
어머니들은 그런 한이 응어리진 순간들을 움켜쥐고 사는가 보다. 아주 조용하게 소리 없이 타고 있는 불씨 위에 쪼그리고 있다가 꾸물거리며 흘러내린다. 과거를 끄집어 내 바싹 태워 그 진회색의 재를 현재에 고스란히 되돌려준다. 영화라서 그런 거야 하면 난 응, 그렇구나 할 거다.
타인을 위해, 휘발된 뜨거운 흔적을 놓지 못하고 그렇게 말없이 눈감고 살아낼 수 있을까. 피는 그렇게도 진한 것인가. 속내가 드러나는 순간들이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도려낸다는 것을 알고도 남기에 더 잔인하다. 무섭도록 고요한 순간들.
아버지의 순진한 반골 기질과 어머니의 차분한 욕망을 그대로 떠안아 버린 나는, 매일매일 낡아버린 반항과 욕망을 갈아 치우느라 모자란 시간을 산다. 응어리들을 쌓아두면 농이 흘러 고이고 썩어 문드러진다. 문드러지지 않으려고 걸어도 걸어도 흔들흔들 하지만 그게 삶이니까, 아루이떼모 아루이떼모...
스스로 응어리를 다독일 줄 아는 사람들이 여전히 걷고 있다. 나도 그래야 한다.
▣ 사진 from IM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