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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된 욕망의 층위

[영화] 세븐 베일즈*, 아톰 에고이안 감독, 2025

by 서희복

세븐 베일즈(Seven Veils)라는 상상의 이미지에 무한한 호기심을 품고 본 인간 욕망의 색깔에 대한 이야기다. 두려운 금기부터 속된 원초적 욕망의 경계를 지나 표면으로 떠오르는 것들에 골몰한다. 순간마다 피부 속으로 뚫고 들어오는 얕은 의도들에 몸을 뒤틀었다.


권력과 욕망이 서로를 흡수하며 영원을 바라보지만 두려움을 희석하려는 의지는 결국 산산이 부서진다. 마지막 남은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절망의 고뇌는 피를 부르는 욕망에 철저하게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성서의 이야기가 인간의 욕망으로 더 깊이 고이면서 억압된 고통이 다시 떠오르고 치유하려는 몸부림이 처절하다.


가장 깊게 무의식에 가라앉아 있던 센슈얼의 고통이 무력한 현실의 외면에 직면하면서 스스로 뚫고 나가려는 결단은 어쩌면 더 위선적 인지도 모른다. 나는 깊은 어둠에 있었고 너는 얕은 쾌락에 있었다는 논리가 어쩐지 너무 비약적이어서 슬쩍 코웃음이 났다. 서로 모르는 서로의 다른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이 순수하지 않다.


억압된 상처의 치유는 어렵다. 어떤 순간에 갑작스럽게 떠오르며 자신을 다른 정체성으로 만든다. 더 고결하든 더 추해졌든 간에 지금까지의 자신을 다르게 바라보아야 하는 고통이 따르게 된다. 서로를 받아들이려면 깊은 상처를 내야 하고 꿰매진 상처와 실밥은 외면하려 해도 꾸준히 바라보아야 하는 형별 같은 삶일 수도 있다.


어떻게 겪어내야 하는가. 가장 무거운 억압의 추가 경계 위로 떠오르고 가장 가벼운 관계의 욕망들이 한 층 한 층 벗겨질 때 씁쓸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웃음과 미소, 그 안의 안타까움까지도 버터내야 한다.


불합리한 인정을 위한 어눌한 몸짓이 카메라에 담기고, 충동적 본능으로 뻗치다가 거부된 찰나에 삶이 초주검이 되고, 예기치 않은 반항과 모멸은 어부지리의 순수를 낚는다. 사실은 네게 올 순서가 아니었단다.


오랫동안 고여있을 지금은 알 수 없는 욕망에 대해 생각한다. 어떤 때 문득 당황으로 다가 올 그런 순간들이 어쩌면 새로 살 힘을 줄 수도 있다. 지금 부끄러운 낯빛으로 세상에 얼쩡거리면서도 반드시 겪어내야 할 어떤 커다란 삶의 미션이 나를 더 살게 할 수도 있다고 막연히 기다리는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단막 비극 오페라 '살로메'로부터 뽑아낸 굵기가 다른 여러 실이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욕망을 아우르는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세븐 베일즈*는 살로메가 의붓아버지인 헤롯 왕 앞에서 춤을 출 때 입었던 일곱 겹의 의상이다. 한 겹씩 벗겨지는 베일, 춤의 마지막에는 모든 베일들에서 해방되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나체가 된다. 근친상간적 결혼을 했다는 헤롯왕의 이야기를 성서에서 가져와 현대적으로 잘 풀어냈다.




▣ 사진: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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