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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로메*처럼

[초단편소설] 3177

by 서희복

슬픈 이야기인지 행복한 결말인지 왔다 갔다 했다. 다 읽은 얇은 책 하나를 끼고 다니면서 우울한 마음이 영 가시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다가도 그 사이를 비집는 뜨거운 열기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집착증 환자 같게만 보였던 살로메를 이해할 수 없었다. 오스카 와일드는 제정신이 아닐 거라는 짧은 극 대본을 쓴 저자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고 책장 한 편에 가두어 두었던 책이었다.


다루었던 금기 때문에 결말이 슬퍼지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키스하고 싶어 하는 게 금기일까. 하지만 살로메가 선지자, 요카나안을 사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광기에 가까운 그 열망이 짧은 시간의 점화로 가능하냐는 거에서 살로메를 이해하는 것을 포기하곤 했다.


근친상간의 부모를 둔 자에게 내리는 역병 같은 벌일까. 자유로운 욕망의 발화에 너무 당황해서 가라앉아있던 내 욕망의 찌꺼기는 금방 불면 날아가는 가벼운 회색의 재처럼 느껴졌다.


아무도 거부하지 않았던 그녀의 유혹에 철저히 뒤돌아있던 요카나안을 용서하지 못한 집착의 흔적이라면 살로메는 실패한 사람이었다. 그저 복수하는 여인으로 치부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녀의 광기, 그 깊은 색깔은 달라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게 자신의 처지로 돌아서면 그녀가 선지자 요카나안을 사랑하고도 남을 시간일 것도 같았다. 오래전 길을 가다가 훅 흘려진 체취에 문득 서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는 지나갔지만 그가 지나간 길에는 그가 계속 진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그가 뚜벅뚜벅 사라져 간 자리에 진한 향기가 흩날리고 있었다.


아득히 어두운 곳을 지나 살로메가 눈을 맞추던 요카나안은 그런 향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보이지 않는 향에도 매혹될 수 있으니 살로메가 실제로 보고 있던 그 선지자에게 빠질 수도 있지 않을까. 몇 개의 풀리지 않는 질문을 가득 안게 된 건 순전히 우연히 다시 마주친 그 향 때문이었다.


심각한 듯 결과를 보더니 새로 추가한 처치가 있다는 의사를 무심히 지나쳐 병원 로비로 나간 바로 그날이었다. 커다란 병원 로비를 영혼 없이 터덜거리며 지나고 있었다. 거기에서 그 이전 어느 때 분명 지나갔던 그 향을 다시 만난 것이었다. 향수도 아니고 오일도 아닌 비누향 같은 풋풋함이었다.


이미 지나쳐 가버린 몇몇 사람의 뒷모습을 멀뚱이 바라보았다. 그런 향을 가진 사람의 눈은 어떤 빛을 가졌을지 상상하며 그날 오랫동안 로비에서 떠나지 못했다. '당신을 어서 찾고 싶어, ' 그 말이 밖으로 새어 나와 귓전으로 흘러들 때 흠칫 놀라서 처치실이 어느 방향이었는지 감각을 잃어버렸다. 정말 그를 만나고 싶었다, 간절히.


가만히 살로메를 다시 읽으며 사랑과 욕망과 갈망과 갈증에 대한 여러 갈래의 길이 만나는 곳에서 그녀에 대한 측은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아무에게도 마음을 줄 수 없어 비난과 욕망의 대상이 되는 익숙함을 벗어나는 길을 택한 걸 지도 몰랐다. 요카나안의 성난 저주와 거부가 그녀를 더 키스에 집착하게 했을 수도 있었다.


요카나안이 비난했던 헤롯왕의 아내가 된 어머니의 반대에도, 뿌리치는 선지자를 얻기 위해, 그의 키스를 가지기 위해, 의붓아버지의 숨은 욕망을 채우는 춤을 추었던 살로메의 삶에 내 눈물이 고였다.


왕인 아버지의 처절한 간청에도 살로메는 요했다. 살로메가 일곱 개의 베일을 차례로 벗으며 나체가 되는 춤을 출 때 의붓아버지 헤롯왕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헤롯왕의 마지막 양심을 담은 분노와 절규에도 요카나안의 머리를 쟁반에 요구한 그녀의 광기는 그의 잘린 목을 따라 흐르는 피를 그대로 내게 흠뻑 뒤집어 씌웠다.


정기적으로 오라던 병원을 비정기적 일정으로 마음대로 바꾸던 나는 이상한 향기와 그 향기가 흔드는 키스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 의사 말을 잘 듣는 환자가 되었다. 올 때마다 의사와의 상담이나 신약이라는 주사를 맞는 시간보다 로비를 어슬렁거리며 그 향을 찾아내는 일에 골몰하고 있었다. 어디쯤에 있는 걸까. 있기는 한 걸까.


집착하던 그 향은 실체 없는 꿈이 되어 몽롱한 행복이 되었다. 그를 만났다. 볼 수 없었지만 느낄 수 있었고 나 또한 그에게 살로메가 되어가고 있었다. 허무처럼 사라지는 향기가 공허하게 닿지 않는 갈증으로 이어져 피가 바라지듯 내 삶의 끝에 다다르고 있었다.


전이된 암세포의 파편들이 온몸을 싸돌아다니는 중에도 그에 대한 키스의 갈망은 살로메의 그것보다 더 강렬한 것이었다. 매일 더 긴 꿈으로 세상에서 내 존재의 흔적을 기쁘게 지우고 있었다.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적 키스 따위는 이미 너무 시시해져 버렸다. 마치 내가 바라는 꿈 속에서만 진실한 키스에 다가갈 수 있을 거라는 허망함에 다다르자 나는 긴 공황의 터널 속에 오랫동안 나를 가두고 말았다. 모두 헛된 꿈이었어.


나를 소멸시켜 가는 검은 세포들이 헛된 꿈은 집어치우라고 내 안에서 비명을 지르며 웃고 있었다. 아마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마지막 지탱할 끈이 필요한 건지도 몰랐다. 어리석었지만 행복했다.


식지 않은 피가 여전한 선지자의 생명 없는 머리를 안고 끝내 키스를 하고 죽게 되는 살로메는 내 삶의 끝 길에서 내가 읽은 가장 마지막 텍스트가 되었다. 짧은 극을 거부당해 방황하며 감옥에서 보냈던 오스카 와일드는 아마도 자신의 욕망을 그렇게 실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존재를 스스로 새기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고스란히 오스카 와일드에게 당한 셈이었다. 그가 비극 단막극 대본으로 쓴 이야기 속에서 희극적 희열을 맛보게 된 내 삶의 마지막 순간들을 축복이라는 핀으로 꽂아 둔다. 그렇게 나를 세상에 남겨둔다. 남은 내 영혼의 향기를 향해 마음을 쏟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옆을 걸을 것이다, 볼 수 없는 향으로라도. 내가 그렇게 로비를 헤매며 그를 느꼈던 것처럼.


매달리던 꿈이 내 것이어서, 꿈속에서 여전히 얼굴도 눈빛도 마주친 적 없는 그를 사랑하게 되어서, 키스를 갈망하던 그 순간들로 내 죽어가는 세포를 하나씩 위로할 수 있어서, 나는 마침내 해피엔딩으로 마지막 장을 끝낼 수 있는 것이다.


실체 없이 사랑했던 그로 인해 꿈꿀 수 있었다. 꿈꿀 수 있었으므로 그의 현실적 부재에도 나의 초라할 뻔한 마지막 모습을 다독일 수 있었다. 타인의 동정으로 마치는 삶보다 나 자신의 충만을 마주하며 끝을 맺는 시간은 나를 이어가는 무한의 겹으로 다시 탄생될 것이다.


선지자가 걷는 그 길에 살로메가 태어난다. 나의 통증은 사라지지 않는다. 키스를 꿈꾸었던 시간을 지나쳐 간다. 영혼의 자유를 얻으며 당신을 조용히 따라가고 있다. 그 하얗게 바라지는 빛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살로메(Salome)』 by 오스카 와일드(1891), 오브리 비어즐리 그림(1894), 임성균 옮김, 지만지드라마,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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