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 884
거긴 아무것도 없어
없음과 부재가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날이다 그가 없다고 한 거기를 향해 나의 부재를 그에게 떨구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그에게서 우두커니 서 있는 나와 마주한다
언제나 마지막이었는걸
이거 다 챙겨 먹고
응
빈속에 술 먹지 마
응
돌아오겠다는 다짐을 받으려는 의미를 안다 층층 과일 야채를 쌓을 수 있는 그깟 투명한 피크닉 그릇이 중요해서 그런 말을 하는 건 아니라는 것쯤도
그가 없는 곳에 무엇이 있을까 사회적 제약으로 맺어지지 않았어도 항상 있어야 할 자리다 우물쭈물 답답한 열기에 먼 하늘을 헤매는 방황을 눈치채고 그가 가만히 말을 건넨다
다녀와
응
죽지는 말고
...
언제든 더 좋은 곳으로 날아가도 된다더니 부재를 없음으로 바꾸지 못하는 그의 불치병을 어쩌려는지
그가 나를 담고 있는 마음보다 내가 그를 더 가득 가지고 있어서 아직은 보내지 못한다는 허무한 역설에 딱 그 차이만큼 돌아오지 않을 거라며 가만히 뒤돌아 걷는다
백미러 안에 우두커니 바라보는 그를 두고 무엇이 기다릴지 알 수 없는 시간을 밀어낸다
뜨거운 아스팔트를 지나 다리를 건너 숲으로 가는 길은 산소를 채우는 진공의 판타지다 나무를 지나 차분히 걸린 구름을 비켜서서 폭신한 흙 속에 발을 묻는다
말하지 못한 눈물과 비겁한 두려움을 같이 묻는다 덕지덕지 묻은 삶의 찌꺼기에 비가 내리면 엉성한 공간들이 촘촘히 서로에게 집착하며 나의 몸을 삭힌다
간질거리는 발바닥에 새싹이 틘다 새싹을 따라 조금씩 줄어드는 고뇌의 그을음, 작아지는 부피로 자연으로 돌아가 공기가 되고 물이 되고 흙이 되고 세상이 되고
아스팔트가 된다
술 취한 빈 속이 된다
집 마당 빨랫줄에 걸려 깨어난 나는 어디를 헤매다 왔는지 모두 까맣게 잊고 발이 떠 있는 공간만큼 그의 부재를 꿈꾼다 아직은 그의 없음을 견딜 수 없으므로
거긴 아무것도 없다니까
그래
아직은